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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향기와 장사익 선생님

찔레꽃 향기 가득한 세상 신년 정모

by 오리아빠

초창기엔 숫자를 헤아리는 맛도 있었는데, 이제는 정신 사나워 몇 번째 정모라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94년에 데뷔하셨지만 대중음악에 파묻혀 선생님 작품을 아는 사람들이 없던 시절, 시를 노래하는 장사익 선생님 노래가 세상에서 더 많이 불리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답답했던 몇 사람이 스스로 한 발 더 내밀어 만든 팬카페 '찔레꽃 향기 가득한 세상'

카페는 더 일찍 만들어져 있었지만, 2001년 모여보기로 작정하고 첫 모임을 만든 후 매년 두 번, 여름과 겨울을 기록하며 정모를 이어왔다.

많은 사람을 만났으나 떨어진 인연도 있다. 바쁘게 먼저 귀천하신 분도, 사고 치고 속 썩이다 스스로 부러진 사람도, 때론 가지를 놓은 사람도, 서운함에 관계를 멀리했던 이도 있었다. 그러나 타클라마칸 사막이 수천 년 불교 역사를 묻은 것처럼, 서로에게 상처되는 성냄과 서운함을 묻고 꺼내지 않았다.

과거엔 운영자였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음악 외 관심사가 전보다 많아져 카페엔 거의 들어가지 않는데, 대장 누나가 와야 한다고 세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고향집 방문하듯 따뜻한 마음으로 잠을 설쳐 정모에 참석했다.


시간 맞춰 반가운 분들이 도착했고, 작년에 작성해 보관해 놓은 타임캡슐이 있었는지, 읽으며 그때 품었던 희망을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다.

누구는 책을 냈고, 누구는 손주를 얻었고, 현명한 늙은이를 꿈꾸던 이는 꿈을 이룬 것 같았으나 로또를 번번이 실패했다는 이야기에 손뼉 쳤다. 또, 아팠다 다시 돌아온 회원과 감 씨앗을 심어 생명을 싹 틔운 회원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상 받는 모습, 다들 선생님처럼 멋있게 익어간다.


'나에게 꽃을 준다' 악보가 돌았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신곡, 선생님은 음악 선생님이 되셨고 우리는 학생이 되어 선생님 선창에 음을 따라가며 노래를 배웠다.

홀연히 왔다가
사람 만나 살면서
사랑한다 꽃 주고
위로한다 꽃 주고
미안하다 꽃 주고
세상에 안긴 꽃
너무나 많은데


돌아보니 나에겐
꽃 준 적 없네

황청원 작가의 시가 선생님을 만나 노래가 되었다. 타인에게 도리를 다 하고 품위를 유지하며 너그럽던 우리는 정작 자신에 야박한 무지렁이로 산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거의 모두 일 텐데, 어떻게 시를 찾으셨으며 만드셨는지, 선생님께 직접 이야기 들었다. 앨범으로 발표만 되면 공감을 얻는 건 시간문제리라.


악보를 처음 받고 모두 초견인 상태에서 발표가 있었다. 까형의 장난에 삐죽거리며 나가 배운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께 칭찬받았다. 한정판 LP도 선물 받았다. 연습해 다듬으면 모임에서 옆구리 찔렸을 때 부를 노래가 하나 더 생길 것 같다.

선생님도 노래하셨다. 아주 많이 하셨다. 반달, 모란이 피기까지는, 기차는 간다, 미사의 종, 두메산골, 대답이 없네, 봄날은 간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곧 은퇴를 예고하며 하늘에서만 살았는데 이제 세상에 내려와 살 꺼라 했다는 어느 스타의 이야기를 하셨다. 대중의 극성이 때론 무섭기도 했겠구나 싶었다. 그럼에 있어 버스, 지하철 자주 타시는 선생님은 적당히 유명하시고 적당히 흔하게 생기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세상 속 나 같은 무지렁이들과 살아 주셔서 감사했다.

유한한 시간의 개념을 잊고 풀피리 불며불며 노래하면서 너와 살리라라고 부르신 노래처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는 날까지, 선생님은 노래하시고 나는 그 소리 즐기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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