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 sLOVEnia
부다페스트에서 류블랴나 가는 기차는 하루 한 대, 오전 8시경에 있다.
빈에서 부다페스트 까지 약 2시간 반 걸렸다.
비슷한 거리인데 부다페스트에서 류블랴나 까지는 무려 9시간이 걸린다.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기차를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수중에 헝가리 돈 1000 포린트가 남아있었다.
크루아상 2개, 물 한 병, 조각 피자 하나를 샀더니 돈이 딱 떨어졌다.
9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니, 차내에서 먹을 점심식사였다.
그리고 아내는 빵봉투를 들다가 조각 피자를 그대로 땅에 떨궜다.
점심식사가 날아가 버렸다.
돈도 없고, 먹거리를 살 곳도 없다.
뜬금없이 가난을 체험한다.
발차 시간 20분 전이 되자 류블랴나행 기차 탑승 사인이 떴다.
특이하게도 류블랴나까지 가는 사람들 좌석은 열차 맨 끝 칸에 몰려 있었다.
시설은 옛날 무궁화호를 보는 듯했다.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객차 내는 대부분 빈자리였다.
듬성듬성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행객인 듯했다.
발차 시간이 되자 기차는 정확히 출발했다.
사람이 적은 차량 안이 어수선해 일어나 보니, 차장이 표 검사를 하며 뭔가 설명해 주고 있었다.
수도와 수도를 연결하는 열차라 당연히 직통일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사명감 넘치는 차장은 이 내용을 모든 승객에게 1:1로 설명 중이었다.
승객은 대부분 외국인이었고, 차장은 영어로 힘들게 설명하고 있었다.
조용한 객차 내에 차장 목소리만 떠다녔다.
내용을 대충 파악한 승객들이 모두 일어났다.
보아하니 나만 몰랐던 게 아니다.
차장은 '차라리 잘 됐다'는 표정으로 객차 끝에 서서 승객들에게 부다페스트까지의 여정을 설명했다.
중간에 'Ajak'라는 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탄 후, 다시 이름 모를 어떤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Ajak 역에서 탄 기차는 좌석 지정이 안 됐다.
심지어 늦게 타면 자리도 없다.
짐 넣을 짐칸도 부족해 차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철도 강국의 열차만 이용하다가 헝가리 기차를 타니 20년 정도 타입슬립한 기분이었다.
갈아탄 기차는 한없이 여유롭게 달렸다.
때로는 철길 옆을 달리는 자전거와 보조를 맞췄다.
지나는 간이역마다 서는지 수시로 속도를 줄였다 높였다.
그래서 차로 4시간 반이면 갈 구간을 9시간이나 걸려 움직이는 것이었다.
국경을 통과하자 기관실을 교체했다.
류블랴나행 객차 두 칸을 끌고 온 헝가리 기관차가 분리되고 빨간색 슬로베니아 기관차가 객차 앞으로 붙었다.
한동안 덜컹대는 소리와 기계음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 무장경찰이 올라와 여권을 확인했다.
과거 유럽을 가로지르는 열차들은 이런 식으로 움직였나 보다. 재미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판노니아 평원은 광활했다.
눈 닿는 데까지 지평선이 이어졌고, 그 끝에서는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멋지긴 하지만 느려터진 기차 때문에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지평선 끝에 시선을 붙잡는 산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율리안 알프스에 기댄 풍경은 강원도 산골을 보는 듯했다.
소담스러운 산자락 군데군데 빨갛고 노란 오두막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슬로베니아는 국토 70%가 산지다.
어느새 기차는 산속으로 접어들었고, 철로 옆 계곡에는 에메랄드 빛 계곡이 따라붙었다.
물가는 또다시 울창한 수풀이다.
류블랴나 역에 도착하니 해질 무렵이었다.
오후 6시의 햇살은 반질거리는 돌 길 위에 금빛으로 빛났다.
햇빛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은 입체적으로 보였다.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아련했다.
노천카페에 앉은 사람들 앞에 놓인 맥주잔에 떨어진 햇빛은 탐스러웠다.
숙소 근처로 가니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동양인이 흔치 않은 듯했다.
선생님을 따라 어디론가 가던 초등학생 무리에 섞여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여기저기서 우리를 보고 수군거린다.
그중 씩씩한 놈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Hello~ How are you?"라고 인사를 건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라고 했더니 녀석은 친구들을 쳐다보며 씩 웃었고, 다른 꼬마들은 "우와! 대화가 된다!"며 호들갑이었다.
30년 전 동네에 살던 외국인에게 처음 인사를 건넸던 일요일 아침이 떠올랐다.
그날의 햇살, 주차해야 하는데 골목을 틀어막은 다른 차 때문에 짜증 났던 금발 청년의 한숨 소리, 안고 있던 곰 인형의 감촉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류블랴나는 작은 도시다.
수도지만 인구는 30만에 불과하고, 면적은 163.8㎢로 서울의 1/4 정도다.
그나마 여행자들이 갈 만한 곳은 시 중심 류블랴나 성 반경 2~3km 안에 몰려 있다.
숙소를 구도심 외각에 잡아도 걸어서 10분이면 닿는다.
덕분에 느긋하게 다녀도 하루 반나절이면 얼추 돌아볼 수 있다.
도시만 작은 게 아니라 건물도, 골목도 작고 아담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슬로베니아의 도시 표어는 'Lovely sLOVEnia'였다.
관광버스에도, 관광지에도, 시내 곳곳에도 이 표어가 붙어있었다.
볼 때마다 감탄이 터져 나왔다.
도시의 정체성을 이렇게 잘 표현한 표어가 있을까 싶었다.
당시 서울의 표어는 'I Seoul You'였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 류블랴나성은 밋밋한 외관과 달리 제법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난간 아래는 옥외 감옥이다.
중세시대 마녀사냥 때 마녀로 몰린 죄수를 감금했다고 하는데, 죄수가 뻥 뚫린 천정으로 쏟아지는 눈비와 강렬한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구조다.
고개를 들면 강한 햇살을 등에 업은 간수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육신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효과만점일 듯했다.
옥외 감옥에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마녀로 몰린 죄수를 심문하는 상황극이 펼쳐졌다.
관광객을 위해 영어로 연기하는데 마녀 역을 맡은 여배우 연기가 소름 끼칠 정도로 실감 났다.
마지막에는 간수가 마녀를 잡아끌고 관광객들 사이를 지나 성 안으로 사라진다.
새된 여자의 비명 소리는 끔찍할 지경이었는데, 구경하던 관광객들은 손뼉 치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관람객에게도 예의가 필요하다.
첨탑 위 전망대에 가려면 끝없는 나선 계단을 걸어 올라야 했다.
아내는 벌벌 떨면서 위에 오르더니, "이제 됐다. 내려 가자"며 나를 독촉했다.
못 들은 척 전망대로 나가 도시를 내려다봤다.
때마침 산을 넘어온 비구름이 류블랴나 시내에 비를 뿌렸다.
도시 절반은 소나기에, 절반은 구름에 덮인 희한한 풍경이었다.
10여 분 간 폭우가 쏟아지더니 거짓말처럼 날이 갰다.
고층건물 하나 없는 류블랴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비가 걷힌 도시는 온통 푸르렀다.
붉은 지붕과 녹색 나무가 번갈아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류블랴나 자체가 숲 속에 지어진 도시 같았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이 나쁠 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슬로베니아에 있는 동안 만난 사람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슬로베니아에서는 류블랴나와 블레드 호수만 들러볼 예정이었다.
블레드 호수는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 국경지대에 있는 호수다.
율리안 알프스의 절경을 배경으로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그리고 그 섬에 있는 성모승천성당이 상징이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신혼부부가 몰려든다.
블레드 호수는 슬로베니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휴양지다.
100여 년 전 약초를 캐러 왔던 식물학자가 이 동네 풍경과 채집 가능한 약초를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호숫가에 호텔을 만들고 약물 스파, 건강식을 즐기며 요양할 수 있는 요양원을 지었다.
이 사업이 대박이 나서 지금까지도 유럽 전역에서 휴가를 즐기거나 요양차 이곳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5월 초순인데도 호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우중충한 먹구름이 낀 절벽 위 고성을 배경으로 까마귀 떼가 날아다녔다.
여기가 블레드 성인지 영화에서 본 드라큘라 성인지 구분이 안 됐다.
반나절 사이에 해가 몇 번이나 숨었다 나왔다.
성 내부는 역사박물관으로 운영 중이었다.
중세 시대 인쇄소, 대장간 등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딱히 인상적인 경험은 아니었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 순서를 기다리며 호숫가 카페에서 시간을 때웠다.
호수에서 바라본 풍경은 기가 막혔다.
주위를 흐르는 공기가 느렸다.
찬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동시에 느껴졌다.
살짝 한기가 느껴질 만하면 포근한 햇살이 몸을 녹였다.
구름 사이로 언뜻 햇살이 비칠 때면 호수의 색깔이 시퍼렇게 살아났다.
매일 이렇게 호수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고 싶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비싼 돈 들여 먼 길 어렵게 날아간 뜨내기 여행객이었다.
돈보다 시간을 소비하는 게 더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관광객이었다.
그래서 슬펐다.
블레드 호수에 다녀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류블랴나 도착 당시 숙소에서 보내준 콜택시로 이미 지났던 길이었다.
혹시나 싶어 구글 맵을 켰다.
이걸 본 택시 기사는 껄껄 웃더니 한 마디 한다.
머쓱해서 구글맵을 껐다.
그래놓고 택시 요금은 10유로가 나왔다.
도착한 날 콜택시로 부른 프리우스는 3유로, 류블랴나를 떠나는 날 부른 벤츠 E클래스 요금은 5유로였다.
미터기를 조작한 듯하다.
어쩌겠는가. 이것도 여행이다.
아내는 피식 웃었다.
함께 여행을 한 지 어느새 40일이 넘었다.
폭풍 같았던 갈등의 시간은 지났고, 마음에 여유가 찾아들었다.
슬로베니아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작은 깨달음을 얻고 드디어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찍은 곳으로 향했다.
버나드 쇼가 지상낙원이라 찬양했고, 고대 로마 황제들이 사랑했던 그곳.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던 두브로브니크가 있는 그곳.
아드리아해의 진주 크로아티아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