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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Dec 30. 2024

기도하라

자그레브



자그레브의 첫 느낌은 건조했다. 
사람들은 남녀 불문하고 기골이 장대했다.
표정은 무뚝뚝했고, 다들 바삐 움직였다. 

상인들은 웃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에는 자다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등 기라성 같은 관광도시들이 해안을 따라 늘어섰다.

그곳으로 향하는 단기 여행자들은 자그레브를 스쳐 지났다.

장기 여행자들은 잠시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한 후 남쪽으로 향했다. 

자그레브는 그렇게 관문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니 굳이 자그레브에 오래 머물 이유는 없었다. 

단,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머물렀다. 








숙소에서 자그레브 중심가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스톤게이트'를 지났다.

얼핏 봐서는 다리처럼 보이지 않는 건축물 아래 제단이 있는, 자그레브의 유명한 성지다.
게이트 아래 새까만 철창 너머에는 성모 마리아 이콘(성화)이 걸려있다.

성화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둘러 서 있다. 

이유가 있다.


1731년 자그레브에 대화재가 났다.

시내 곳곳이 불바다가 됐고 성벽까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스톤게이트에 걸려있던 이콘만은 그을린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기적을 목도한 자그레브 사람들은 이곳을 성지로 여겼다. 

신자들은 이곳에서 감사 기도를 올리고 '흐발라(Hvala)'라는 단어를 새긴 대리석을 벽에 붙였다.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어느 종교든 이런 행위를 할 때는 기복의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기복이 아닌 감사의 의미가 담겼다.
과거 어느 신부님께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다. 대화할 때 맨날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하면 듣는 사람이 널 어떻게 생각하겠냐? 필요할 때만 하느님 찾지 말고 네 일상을 하느님과 공유해라. 감사할 일이 있으면 기도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기도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기도하고. 근데, 기쁠 때도 기도해라."






스톤게이트를 지나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자그레브의 랜드마크인 성모승천대성당이 있다. 

1102년 완공됐으나 전쟁, 지진, 화재 등 수많은 재해를 겪었다.
1906년 보수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는데, 첨탑 두 개의 높이가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꽃보다 누나'에서 고 김자옥 씨가 이 성전을 둘러보다가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감수성이 좀 많이 예민한 분이구나' 생각했다.
'그림을 만들기 위한 연기일까?'라는 생각마저 했다. 

아니다. 가보면 안다.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신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예전 본당 신부님을 만났을 때 들었다.


"가톨릭 신앙이 힘을 잃어가는 유럽에서 여전히 독실한 신자들이 많은 곳이 바로 크로아티아입니다"


성전 안에서 성체조배하는 사람들은 경건했다.

고요한 그들의 뒤태는 무겁고 차분했다. 
성전은 건축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기도하는 이들의 진심이 공간을 성화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배낭여행객들이 배낭을 멘 채 장궤틀에 꿇어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홀린 듯 그 분위기에 빨려 들었다.

거대한 공간에 울리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웅성거림이 차츰 잦아들고 서서히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어떻게든 예민한 성격을 맞춰 보려는 아내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한번 기억에 남으면 좀처럼 잊지 못하는 나는, 아내에 대한 불만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반대로 아내는 그 순간이 지나면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저 사람은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은 나의 독단이었다.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같이 피곤한 사람을 상대로 잘도 버티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몸이 떨렸다. 

성전 한가운데 발가벗겨진 채 던져진 기분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성전 앞쪽에, 나와 멀리 떨어져 앉은 아내의 작은 뒷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여행 전 계획을 세울 때, 자그레브는 그냥 지나쳐갈 곳이었다. 

번잡한 도시 풍경은 관심 밖이었다.

두브로브니크로 빨리 가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아무리 관심 없는 곳이라도 최소 이틀은 머물러야 기억에 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마침 아내는 당시 유행하던 '한 달 살기'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숙소는 가능한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 같은 민박을 먼저 찾았다. 

자그레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숙소는 자그레브 북쪽 산기슭 전원주택 단지에 있었다.

넓은 거실과 방 3칸, 주방과 세탁실, BBQ 시설이 있는 넓은 마당이 딸린 집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숙박비는 1박에 6만 원이 채 안 됐다. 

숙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옵션과 사진을 발견했고, 홀린 듯이 결제했다. 


주택단지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친절한 호스트는 매일 전화로 불편한 게 없는지 물었다. 

집 앞에는 창고형 대형 마트가 있었다. 

중심가인 반 옐라치치광장까지는 트램과 버스를 갈아타고 30분 정도가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햇살 따뜻한 거실에 앉아 갓 구운 빵과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마치 출근하듯 시내로 나가 도시를 돌아다녔다. 

가로등에 불이 켜지면 여행객들은 화려한 일리차 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는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들어가는 길에 장을 봐서 저녁을 차렸다. 

식탁에 촛불을 켜고 만찬을 즐기다 보면 어둠이 내렸다. 

그러면 거실로 나와 와인 한 잔과 함께 길게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면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아내의 무계획을 키득거리며 놀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항상 그랬다.

자다르에서도, 스플리트에서도, 두브로브니크에서도 그랬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마치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 경험이 모든 걸 바꿨다. 


인생 2막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 초반 아내와의 갈등은 생각보다 거칠었고, 격렬했다.

인생 2막은 이혼으로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거의 매일 들었다.

하지만 깨질 것 같던 관계는 참고 버티자 조금씩 단단해졌다. 

서로에게서 도망갈 곳 없는 이역만리에서 강제로 반성하고 성찰해야 했다. 

천행이었다.

반복된 갈등은 일상이 됐다. 

내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긴장하던 날들은 희미해졌다.

오늘을 돌아보고 감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자 잊고 있던 아내의 장점이 보였다.

어느새 나의 일상은 이 사람이 완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상의 힘이 갈등을 봉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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