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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Dec 16. 2024

야경과 평양냉면

부다페스트


판노니아 평원을 가로질러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빈 중앙역 플랫폼 중간중간에 설치된 부스는 흡연실이 아닌 금연실이다.

탁 트인 야외 플랫폼에서는 담배를 피우고, 비흡연자는 연기를 피해 실내로 들어가라는 배려다.

신선하다.

그리고 뭔가 합리적이다.

난 비흡연자다.


지도를 보니 빈 동쪽은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 개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빈 역을 떠난 지 30분 만에 통신사 변경 알림 메시지가 떴다.

그와 동시에 객실 내 무료 와이파이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대부분 웹사이트가 먹통이다.

그 와중에 와이파이 안테나는 최상의 컨디션을 가리키고 있다.

기가 막힌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먹구름이 두껍게 끼었다.

음울한 하늘 아래 헝가리의 벌판은 곳곳에 잡초가 무성하다.

객실 창문 너머로 언뜻 본 농가의 마당은 진흙과 잔디가 뭉개져 뻘밭을 보는 듯하다.

때 타고 갈라진 목책 너머 오두막은 낡고 쇠락했다.


빈을 떠난 기차는 두 시간 삼십 분만에 부다페스트 동역에 도착했다.

객차에서 내리니 도떼기시장이다.

역사 건물은 플랫폼과 바로 연결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승객과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 잡상인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다.

높게 솟은 철골 구조로 된 천정 아래 사람들 소리가 메아리쳐 초행길인 여행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국제선 열차가 멈추는, 헝가리에서 가장 큰 역으로 알고 왔는데 규모만 좀 큰 시골 역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먼지가 잔뜩 뭍은 옷을 입고 찌든 표정으로 오가는 노동자들이 꽤 많다.


부다페스트 시내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사람들은 이쯤은 비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비를 맞고 다녔다.

한 아가씨가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흔들며 개와 함께 산책 중이었다.

개나 사람이나 비에 젖어 어딘가 우울해 보였다.

거리에는 무단 횡단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줄을 서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거운 표정이지만 무례하지는 않았다.

딱딱한 표정으로 서로 양보하며 지나다녔다.

표정만 봐서는 알 수 없는 태도다.


시내를 지나는 동안 본 건물들은 하나같이 고풍스럽고 기품이 있었다.

비록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외장이 떨어져 벽돌이 드러난 건물도 많았지만 그마저도 세월의 흔적으로 여겨질 뿐, 낙후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프라하와는 비슷하면서도 상반된 느낌이었다.

좁은 골목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개구리 주차를 전제로 만든 노상 주차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럽 어디를 가도 그렇지만 옛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기 때문에 생활의 편리성은 상당히 떨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부킹닷컴에서 예약한 아파트 주소를 보고 찾아갔으나 엉뚱한 곳이 나왔다.


"거긴 옛날 주소다. 이사했는데 부킹닷컴 주소가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됐다. 내가 데리러 간다"


매니저와 통화했더니 직접 데리로 오겠단다.


차로 데리러 오는 줄 알았는데, 15분쯤 후에 잘 생긴 총각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리고 트램을 같이 타고 다시 10분쯤 달려 이사 간 아파트로 우릴 안내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파트는 천장이 높고 넓었다.

욕조와 드럼세탁기까지 완비한 욕실은 꽤 컸고 깨끗했다.

침실은 세 개였는데 생각보다 넓었다.


숙소는 각 방에 한 팀씩 손님을 받고 거실과 욕실을 공유하는 아파트였다.

예약할 때는 분명 단독으로 봤는데 당황스러웠다.

클레임을 걸기엔 피곤했고,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 그냥 눌러앉았다.

지쳐서 사진을 못 찍은 건 좀 아쉽다.

여행이 길어지니 숙소 사진 같은 건 잘 안 찍게 된다.






부다페스트에서 첫 끼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유럽을 여행하며 음식점을 고를 때는 트립어드바이저가 진리다.

가격대와 후기를 잘 조합해서 고르면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다.

좀 피곤해도 10분만 검색하는 수고를 하면 된다.

그 10분이 귀찮아서 대충 들어갔다가 여러 번 피를 봤다.

여행 한 달 만에 깨달았다.


그러한 기준에 따라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을 들어갔다.

평은 끝내주게 좋았는데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었다.

육류는 전혀 없는 식당.

아내는 싱글벙글했지만 난 뒷골을 잡았다.


헝가리 음식의 특징은 파프리카다.
유럽에서는 '헝가리' 하면 파프리카라는 인식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파프리카가 아니라 고추에 가깝다.

파프리카를 팍팍 쓴 요리 덕분에 헝가리 음식은 우리나라 음식과 맛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음식은 단연 '굴라쉬'다.

소고기 국이라고 보면 되는데, 파프리카 팍팍 썰어 넣은 굴라쉬는 육개장과 기가 막히게 비슷하다.
통풍 때문에 맛만 봤는데, 한 술 뜨자마자 밥 생각이 끓어올랐다.
페이스북 친구 중에 미국에 계신 분이 내 포스팅을 보고는 댓글을 남겼다.


"헝가리 출신 동료 하나가 한식당에서 육개장 먹더니 '고향의 맛'이라며 한식당에 출근하더라. 이직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근처에 한식당 어디인지 확인하는 거였다"


납득이 가는 맛이다.








부다페스트는 시 중심을 관통하는 다뉴브 강을 기준으로 왕족, 귀족들이 살았던 서쪽 부다 지구와 상공인들이 살았던 동쪽 페스트 지구로 나뉜다.

역사적 배경 탓에 부다 지구를 돌아다녀 보면 부티가 난다.

페스트 지구는 좀 더 대중적이고 상업시설이 밀집한 듯하다.


부다 지구가 있는 다뉴브강 서안은 경사가 급한 언덕이다.

반면 페스트 지구는 사방으로 넓게 뻗은 평지다.

강 폭이 제법 넓고 강을 건너자마자 급경사의 언덕이 나타나기 때문에 부다 성을 공략하는 입장에서는 꽤 골치 아픈 지형이다.

헝가리 왕국이 이곳에 성을 지은 이유다.

참고로 헝가리어의 '부다'는 언덕, '페스트'는 평지라는 뜻이다.

부다 성 북부에는 '어부의 요새'라는 성채가 있다.

과거 어부들이 이곳에서 도시를 방어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도시의 정체성을 맛보려면 우선 그 도시의 랜드마크를 훑어야 한다.

시 중심인 영웅광장으로 향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첫날과 달리 하늘은 청명했고 날도 따뜻했다.

광장은 소박했다.

헝가리 역사 속 위인들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광장 너머로는 건국 1000년을 기념해 지은 바이다후냐드 성이다.

성 내부는 농업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라는데, 그보다는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는 공원 같았다.

맹견 셰퍼드를 풀어놓은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개도 사람도 평화롭다.

아니다. 개는 말 그대로 '개신났다'.

한참 풀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숨을 헐떡이며 주인 곁에 드러누웠다.

푸른 잔디밭 위에 위에 개도 주인도 한가로웠다.







부다페스트 여행의 핵심은 단언컨대 부다 성에서 바라보는 야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곳이 헝가리, 부다페스트다.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그림 같은 국회의사당 건물과 부다 성, 어부의 요새가 시립 했고, 투박하지만 웅장한 세체니 다리가 불을 밝힌다.

몇 년 전 유람선 침몰 사고로 한국 관광객 7명이 숨진 곳이기도 하다.


부다 성에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유럽의 트램은 각 나라마다 독특한 개성이 있다.

자그레브는 파란 트램, 프라하는 '이게 움직이나?' 싶을 정도로 더럽고 오래된 트램, 그리고 부다페스트는  노란 트램, '빌라보시'다.

부다페스트의 상징이지만 승차감은 매우 안 좋다.

하지만 온통 칙칙한 잿빛 도시 사이를 뚫고 지나는 노란색 트램은 눈이 부시게 화려하다.


트램을 타고 세체니 다리로 가는 동안 왼편으로 부다 성이 보인다.

세체니 다리 입구에 '혀 없는 사자 상'이 있다.

왜 혀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조각가가 까먹고 안 만들었느니, 정치인들에게 쓸데없는 설전을 줄이라는 의미라느니 여러 견해가 있다.

나름 부다페스트의 명물인데, 재미있게도 부다 성 안에는 '혀 있는 사자 상'이 있다.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모르고 지나치기엔 아쉬운 이벤트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 야경의 상징이다.

그러나 대낮에 보면 볼품없다.

다리는 대책 없이 좁아 언제나 주차장을 보는 듯하다.

그 옆으로 보행로를 놨는데, 걸어서 다리를 건너다보면 매연 때문에 목이 매캐하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회의사당이다.

부다 성과 국회의사당을 놓고 보면, 누구라도 국회의사당이 성이라고 생각한다.


해가 지는 시간을 기다리며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이 많긴 한데 파스타 아니면 샌드위치다.

그중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이 하나 보였다.

길거리에 전시한 메뉴를 보니 비싸지도 않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안에서 나오던 노파가 말을 걸었다.


"여기 끝내 준다. 음식이 환상적이야. 절대 후회 안 할 거야"


음식에 매우 감동받았는지 호들갑이 심했다.

결국 낚였다.


내가 주문한 요리는 오리다리 요리였다.

맛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플레이팅은 그럴싸한데 노파의 말대로 눈이 돌아갈 맛은 아니다.

그 할머니, 혼자 당할 수는 없었다는 심보였을까?


해가 넘어가니 여기저기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다들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두세 번씩 치켜든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화려하지 않다.

색온도가 높은 할로겐 등 위주의 조명이다 보니 따뜻한 느낌이 강하다.

식당에서 만난 노파의 호들갑이 복선이었을까?

생각보다는 감흥이 덜했다.

그리고 하나 더.

웹에서 찾아본 사진들 너무 믿지 않는 게 좋다.


"속지 말자 사진빨, 믿지 말자 포샵빨"









투어의 마지막은 헝가리 역사박물관이다.
원래는 아내만 들어가 구경하고, 난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웬 걸. 아내가 들어간 사이 팸플릿을 보다 보니 궁금증이 동했다.


오늘날 헝가리의 주류인 마자르 족이 유럽 역사에 등장한 것은 9세기말이다.

어디서 왔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에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기마민족, 마자르족은 전 유럽을 헤집고 다녔다.

유럽 각국 역사서에는 마자르 족의 침략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마자르 족의 깽판을 짐작할 수 있다.


부족 연맹체였던 마자르 족은 국가라고 할 세력,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유럽 전역에서 분탕질을 치고 다닐 뿐이었다.

그러나 독일 오토 대제에게 대판 깨지고 난 후 기세가 꺾였다.

이후 헝가리 국왕 이슈트반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헝가리 왕국 수립을 선포한 후, 마자르 족은 정식으로 유럽 역사에 편입하게 된다.

세계사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서유럽 관점에서 봤을 때 헝가리는 오랑캐였다.

복식을 봐도 그렇고, 생김새를 봐도 그렇고, 언어와 문화를 봐도 여타 유럽 국가들과는 매우 이질적이다.

어떤 이들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초래한 훈족을 마자르족의 선조로 추정하지만 근거는 미약하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유럽은 인종적으로 게르만족 계열, 슬라브족 계열, 라틴족 계열이었다.
그에 비하면 헝가리 사람의 외모는 매우 이질적이다.
한때 서유럽 곳곳을 침략하고 중부 유럽을 호령했던 강자였지만, 인종과 문화, 지리적 여건 때문에 결코 주류일 수는 없었을 듯하다.
그러다 보니 서유럽 중심 시각으로 필터링된 헝가리는 신비로운 동방의 제국으로 치장됐고, 나 역시 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는 결국 승자의 역사가 아니던가.

그렇게 형성된 세계관 속에서 유럽과 중국을 잇는 중간 지역, 중동과 중앙아시아는 미지로 남았다.
그 호기심이 어린 시절 실크로드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났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구름'이었다.

광활한 판노니아 평원에 세워진 나라답게 부다페스트의 지평선은 끝이 없었다.

그 위에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구름은 거대하고 장엄했다.

원경과 근경에 펼쳐진 구름은 두터웠고, 무거웠다.

마치 도시를 짓누를 듯한 압도적인 규모였다.

영웅광장의 동상 뒤로 펼쳐진 구름은 마치 마자르족이 유럽을 휩쓸 때 기마부대가 피워 올린 먼지구름인 듯도 했다.

하지만 딱히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다.

목표로 삼은 슬로베니아로 가는 중간 지점이라 놓치기 아쉬워 들렀던 탓일까?

왠지 남들이 맛있다고 극찬해서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고 다음 행선지인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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