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르 Zadar
크로아티아 북부 해안의 작은 항구도시다.
크로아티아어로 자다르는 '선물로 지어진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유적과 바다 오르간의 신비한 소리로도 유명하지만, 자다르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석양이다.
해 질 녘 바다오르간 위에 앉아 고래울음소리 같은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으면서 주황색으로 번져가는 석양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황홀경에 빠져든다.
이건 개인적인 감상이고, 여행 책자 등에서 소개하는 자다르는 고대 로마 유적인 '포룸'이 가장 먼저 나온다.
로마시대의 열주 광장인데,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받아 박살이 났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기둥뿌리와 거대한 돌조각들이 광장에 산재해 있고, 사람들은 그 위에 걸터앉아 햇살을 즐기거나 담소를 나눈다.
우리가 크로아티아를 여행하기 몇 해 전, <꽃보다 누나>가 방영됐다.
그 사이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다녀간 건지 렌터카 회사에 한글 안내문이 비치돼 있었다.
심지어 대여해 주는 내비게이션이 한국어 메뉴를 지원했다.
여기저기 상처가 난 골프를 빌려 크로아티아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자그레브를 떠나 자다르까지 가는 길 풍경은 환상적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지루할 틈 없이 수시로 바뀐다.
관목이 자라는 초원지대를 지나면 구름을 걸친 설산이 나타난다.
터널을 지나 조금만 더 달리면 거대한 호수가 창문 아래로 펼쳐진다.
'돈을 더 주더라도 자동 변속기 차량을 빌리고 아내에게 운전을 맡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자다르에 닿은 날은 일요일이었다.
숙소에 짐을 부려놓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숙소 바로 옆 식당은 트립어드바이저 평점 1등을 한 식당이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서빙을 보는 주인장은 조증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유쾌했다.
거침없이 농담을 던지며 자리를 안내했다.
얼핏 무례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농담이었는데 의외로 싫지 않았다.
피식 웃음이 났지만 주인의 추천대로 주문했다.
와인과 오렌지 주스가 먼저 나왔다.
목을 축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대가족 두 팀이 레스토랑을 절반씩 점령했다.
주일 오후라 가족 외식을 나온 모양이었다.
가정의 수장인 할아버지가 상석을 차지했고, 그 옆은 할머니였다.
긴 테이블의 좌우측은 아들과 며느리, 혹은 딸과 사위들이 앉았다.
자리 배치부터 가부장적인 가족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들들은 각을 잡고 앉아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었다.
이를 지켜보는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젠가 이탈리아 남부 등 지중해 연안 지역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하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낯설지 않은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5월 중순이었다.
4월 초에 독일 북부에서 시작한 여정은 어느새 한 달 보름이 지나고 있었다.
그 사이 알프스를 지나 꾸준히 남쪽으로 달렸다.
크로아티아에 들어선 이후 더 이상 쌀쌀한 공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차가운 날씨에 목도리를 둘둘 감고 다녔는데 자다르는 이미 한여름이었다.
작렬하는 아드리아해의 햇빛에 팔과 얼굴이 순식간에 익어버렸다.
백색에 가까운 회색 도시는 강렬한 햇살 아래 빛났다.
새하얀 대리석을 깔아놓은 골목마저 눈부셨다.
검푸른 바다 위에 떨어진 햇살은 별빛처럼 반짝였다.
도시 전체에 생기가 흘러넘쳤다.
파도를 타듯 골목에 떠다니는 활기를 타고 바닷가에 닿았다.
자다르의 명물인 바다오르간은 돌계단 아래에 구멍을 파고 물길을 만들어 놓은 구조다.
파도와 함께 공기가 드나들며 오르간 소리를 낸다.
고래 울음소리 같다고들 표현한다.
음률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몽롱한 느낌을 준다.
선원을 홀리는 세이렌의 노래인 듯 절로 기분이 나른해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돌계단 위에 한참 늘어져 있었다.
피부가 따가워질 때쯤 문득 이질감이 들었다.
뭔가 이상한데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구시가지를 돌아보려고 자전거를 빌렸다.
3시간에 우리 돈 1만 원.
하지만 자다르 구시가지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30분 만에 북서쪽 끝에서 남동쪽 끝까지 다 돌아보고 자전거 가게로 돌아갔다.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대리석 보도블록 마냥 빛나는 대머리를 한 주인장이 시원하게 웃었다.
보는 사람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드리아해의 항구도시는 짠내가 나지 않았다.
바닷가 특유의 찝찌름한 느낌도 없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마저 상쾌했다.
중부 유럽까지의 여정은 중세 유럽을 돌아본 느낌이었다.
고딕 양식 성당과 목골구조 건물들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봤던 그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다르에서부터는 고대가 느껴졌다.
목조 건물은 사라지고 눈 닿는 사방이 모두 대리석이었다.
로마 황제들이 너도나도 별장을 짓는 바람에 로마의 흔적이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적을 보존하지 않고, 유적에 기대어 살았다.
지금도 유적의 일부를 기초로 건물을 짓고, 유적 안에 상점을 열고 생계를 꾸린다.
자다르뿐만 아니라 이후 지나게 될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모두 마찬가지다.
자다르의 로만 포룸(Roman Forum)은 그런 크로아티아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랜드마크인 성 도나트 성당을 중심으로 펼쳐진 광장에는 고대 로마 건축물 잔해와 유적이 산재했다.
그리스 아고라처럼 고대 크로아티아인들은 이곳에서 회의를 하거나 집회를 열었다.
서기 1세기 경 세워진 로만 포룸은 로마 멸망 후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받아 주요 구조물이 모조리 날아갔다.
포룸 앞 노천카페에 잠시 앉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점심에 마신 와인 탓이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온 음악 소리가 나를 깨웠다.
음악 소리를 따라가니 성 도나트 성당 앞에 간이 제대가 차려져 있었다.
광장 한편에는 기타를 든 중창단이 알렐루야를 합창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활 축제 기간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트롯 리듬의 흥겨운 템포에 구슬픈 가락이 올라타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고개를 돌리니 유적 터에 대여섯 살 난 꼬마들이 몰려있었다.
빵조각을 든 아이들 주위로 비둘기가 날아 내렸다.
날갯짓 소리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다녔다.
고대 건축물의 기둥 잔해를 골대 삼아 사내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오후 여섯 시의 나른한 햇살이 아이들의 머리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유적이 일상에 들어와 있었다.
보존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고, 이거 좀 많이 부러웠다.
역사가 생활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작은 도시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아니다. 이 도시는 꼭 들러갈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