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넘어 온 제 2의 사춘기.
사회 생활 7년 차. 대학생때도 휴학 한 번 한적 없고, 간호학과라는 특수한 전공 덕분에 졸업 후 3월, 바로 병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막 열심히 살았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래도 쉬어 본적 없는 삶을 살아왔다.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3년 간 잘 다니던 간호사를 때려치고 마케터, 인스타툰 작가, 커뮤니티 매니저 등 다양한 일에 도전해 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에 간호사를 그만 둔 나는 꽤 열심히 살았다. 안정적인 길을 택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으니. 그렇게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퇴근 후에는 내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주말까지 반납해 가며 일을 했다.
간호사를 퇴사하고 처음으로 낸 이모티콘이 운좋게 승인이 됐다. 마케터로 취직한 곳도 급여는 이전보다 줄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이드 잡으로 키우던 인스타툰 계정을 통해 난생 처음 그림으로 월급만큼 벌어보기도 했다. 그래 이거지. 하는 일마다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너무 즐거웠다. 나는 일의 성과로 부터 만족을 느꼈다. 성과를 통해 내 가치를 인정 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제법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더 멋진 사람들과 더 멋진 일, 더 많은 인정, 더 많은 돈.
성과가 나는 만큼 나는 만족을 몰랐다. 그렇게 또 2년.
더 큰 성장을 위해 두 번째 이직을 한 곳에서, 나는 한계에 부딪혔다.
성장은 계단식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성과는 내가 그간 쌓아왔던 것들이 한 번에 시너지를 내며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더 쌓아나가지 않으면 동이 나고 만다.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또 도약을 위해 발판을 준비하는 시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걸 몰랐다. 마지막 회사에서 그간 내가 해오던 것들이, 혹은 새롭게 부딪히는 것들이 성과가 나지 않으니 답답했다. 더불어 어느순간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에 집중하기 보다 부족한 것들에 시선이 쏠리곤 했다. 꼼꼼한 일이 나에게 쥐약이란 것이 알면서도 극복하기 위해 애썼지만, 나의 성향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수를 할 때마다 자책이 심해졌다. 가볍게 시작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즐기던 나는 어느 순간 행동동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불완전한 완벽주의로 꽤 고생을 한 것 같다.
열심히는 하지만 정체된 기분이었다. 매일 일을 붙들고 있었지만 답답했다. 이전 보다 '모르겠어'란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원인이 뭘까?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었기에.) 원래 같았으면 해결책을 빠르게 찾아 행동으로 옮겼을 나인데 이전과 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점점 일의 의미가 희미해졌다. 나 이거 왜 하려 했더라?
어느 순간부터 적당히, 하고 싶은 일들이 줄어가기 시작했다. 일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전보다 일은 덜 하는 것 같지만 계속 일에 얽매여 있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자리에서 벅차 일어나 뛰어 나가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 빈도 수는 계속 늘어갔다. 일을 위해 인풋을 채워보고 싶지만 그럴 에너지도 별로 없었다. 도대체 왜이러는 걸까. 좋은 환경, 보람을 느끼는 일, 만족스러운 보수 이전에 비해보면 내가 꿈꾸는 모습에 다가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마다 30분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상태가 왜 이런지,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면 일이 바빠지면서 나와의 대화는 점점 소홀해졌다. 글을 쓰지도, 마음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게 탈이 난거다. 내가 어떤 일이 맞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또 남들의 인정과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그걸 나와의 대화를 통해 차차 깨닫게 됐다. 나는 지금 쉬는 시간, 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두달을 글을 쓰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너무 좋아하던 회사였기에, 꽤 많은 보람을 얻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아직 시도하지 못한 것이 많아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는 과부화였다. 나는 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나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더 큰 방황이 왔다. 일로서만 나의 가치를 평가해 왔기에 일을 하지 않은 나는 쓸모가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매일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내가 싫었다. 독서도 해보려 하고,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해 보려도 해봤지만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 정리를 위해 홀로 일주일 간 여행도 다녀왔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니 그대로였다. 그렇게 두달을 침대에 누워 보냈던 것 같다.
불안했다. 이렇게 계속 무기력하면 어쩌지?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어쩌지? 건강도 계속 나빠지는 것 같은데..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몸은 가장 편했지만, 마음은 가장 무거운 시기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니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기도, 사람을 만나보기도, 조금씩 요리를 해보기도 하면서 무언가 하나 둘씩 변화가 생겼다. 예전처럼 완벽하게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머리가 멍한 것도 조금씩 사라졌고 하고 싶은 것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쉬는 것도 '멋지게' 쉬고 싶은 강박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마음이 가는 대로 나를 놓아주기. 그게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변화를 만화로 올리기 시작했다. 제목은 '백수가 될래요' 내가 퇴사를 마음 먹게 된 이유와 일보다 더 가치있는 것들을 찾기 위한 여정,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만화로 그렸다. (오랜만에 그려보는 시리즈물이다보니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완벽주의를 내려놓으니 편했다.)
완벽하지 말자. 무리하지 말자. 나를 사랑하자.
남들이 보기에 멋진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
만화를 올리고 나서 독자분들의 장문의 댓글을 많이 받았다. '저도 그런 상태예요. 너무 공감했어요.'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참 많더라. 그 분들은 내 툰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분들의 댓글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독자분들께 받은 위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무언가 하고 싶었다.
한국의 성인들은 80% 이상 번아웃을 겪어보았다고 한다. (사실 이보다 많을지도. 비교와 인정, 빠른 성장을 지향하는 문화때문이지 않을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번아웃을 만든다고 한다.
그럼 그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걸 알아야 번아웃이 오지 않게 나의 상태를 잘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들은 거창한게 아니라 오늘 하루에 대해 기록하고, 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나를 챙기는 하루를 보내다보면 조금씩 알게 된다. 나도 완전한 방법을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나의 과정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내가 받았던 위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 마음이 있던 찰나, 추상화 작가인 지인분과 이야기를 하던 과정 중..
'단발님 혹시 전시 안 해 볼래요?'
엥? 내가 왠 전시?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가슴은 두근거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프라인으로 위로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라니. 언젠간.. 생각은 있었지만 왠지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스토리에 전시 소식을 알렸고, 하이아웃풋클럽에서 아침마다 글을 같이 쓰던 모닝페이지 멤버들과 전시 팀을 꾸렸다.
그렇게 두 달 남짓, 나는 인생 처음 전시를 준비하게 된다.
그것도 '번아웃'을 주제로.
*2025년 3월 15일 - 16일 2일 간 - 성수에서
돌이켜보면 번아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아웃은 나의 밸런스를 몰라서 오는 하나의 '실패'다. 실패가 어감이 나빠서 그렇지, 사실 나는 살아오면서 '실패' 속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가장 깊게 나를 이해했다. 좋은 것들은 세게 다가오지 않지만 나쁜 것은 내 몸에 제대로 박히기 때문. 결국 나도 번아웃을 기반으로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게 되지 않았나...!!!! 어떻게든 잘 마무리 해보자.
나의 번아웃 극복을 위한 마지막 프로젝트.
번아웃 전시회 레쓰 고우 ~~
#ep2 예고, 다음 화는 어떻게 팀을 꾸렸는지 풀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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