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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pr 11. 2024

ep. 0

프롤로그



‘선생님은 한국에서 뭐였을 거 같아?’
‘음... 청소부?!’





나를 폭소케 만든 대답이었다. 과외가 끝난 후 밤늦게 일을 가야 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비쳤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스냅백을 푹 눌러쓰고 트렁크 나시를 입은 채 수업 중에는 배에 꼬르륵 소리가 나 아이들이 ‘선생님 배고파요?’ 물어볼 정도니까.

왜 과외만 가면 배가 고픈지. 한껏 긴장하던 몸이 가정집의 포근함에 녹아내려서일까.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집이 엄청 그립지는 않다. 가끔 생각나는 정도.




한국에서 안락한 삶을 살았다. 부유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돈을 저축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고 돈으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돈이 없어 무언가를 먹지 못했던 적도, 돈이 없어 가지고 싶은 걸 못 가진 적도, 돈이 없어 데이트를 못 해본 경험도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굉장한 부자이겠거니 생각할 텐데 그건 절대 아니다. 가지지 못하는 것과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분류가 굉장히 빠른 ‘주제를 아는 인간’이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호주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흘렀다. 광부부터 시작해서 일식 셰프, 청소부, 수학 과외 선생까지 참 여러 가지 직업들이 나를 거쳐갔고 거쳐가고 있다. 이곳에서 번 돈으로 방 세, 기름값, 생활비, 핸드폰 비를 내고 한국과 똑같이 저축을 한다. 태평양 너머의 타지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한다는 게 이리도 어려운 것이었구나 새삼 느끼는 하루들. 한국에서 당연시하게 누려왔던 것들은 이곳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닌 게 돼버렸다. 요즘은 기름값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 한 달에 50~60 만원 씩 나가는 기름값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변기를 닦을 때마다 기름값을 번다고 생각하고 닦는다. 내 차는 소중하니까.




저번주는 사장님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가 있었는데 술을 얼마 먹지 않았는데도 펑펑 운 날이었다. 정말 눈물이 주룩주룩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두들 당황했지만 자신들도 그럴 때가 있었다고 숨이 차 움직이는 등을 토닥여 주셨다. 아마도 내면에서 애써 외면했던 타지에서의 힘듦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 무너져 내렸던 거 같았다. 고독과 새로운 일을 마주함에 대한 낯섦, 그리고 새로운 관계들과 기대까지. 호주에서 처음, 실컷 울어본 경험이라서 기억에 남을 거 같다.




다니고 있는 청소 회사에서 인스펙션이 왔다. 한 달에 한번 첫 주에 그동안의 청소 상태를 검사하는데 매우 잘하고 있다고 연락을 받았다. 성실하다는 말도 덤으로. 처음으로 성실이라는 단어가 매우 낯설게 들렸다. 자기 객관화를 해봤을 때 ‘난 성실한가?’ 물었다면 내 대답은 ‘아니’다. 굉장히 게으르고 현실에 안주하는 듯한 경향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는 모험적이고,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고, 낭만을 아는 사람이라 평가한다. 긍정적인 평가라서 감사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나를 모르나? 싶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내가 이렇게나 다른가? 싶기도 하고. 도대체 나는 무엇일까.




한결이라는 이름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은 한결같지 못하지만, 내게 한 부분이라도 한결같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래서 그 이름을 애정하나 보다. 아마도 누군가의 대한 정의는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성실하다 ‘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 내게 건넨 진심의 말이라면 그것은 나를 향한 정의가 되고 그 정의를 지키려고 살아가려는 의지. 우리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에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는 김춘추의 시처럼 그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우리가 완전해지려고 하는 상호작용이 생긴다는 것.




두서없는 글들이 여백을 채운다는 건 다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열정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내 과거를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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