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always
‘빛’은 어둠 속에서 길을 밝혀주는 존재이고 ‘소금’은 썩지 않게 지켜주는 존재야. 우리의 자아가 그러한 빛과 소금들 속에서, 또 그들과의 관계 곳에서 조용히 빚어왔다는 걸 문득 실감하게 되는 삶이다.
To.
잘 지내? 난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을 천천히 느끼는 중이야. 땀을 식히는 바람과 벗어든 셔츠가 오늘의 날씨를 말해주네. 이런 계절이면 유독 보고 싶어 지는 사람들이 떠오르더라. 엊그제는 좋아하는 작가님들을 만나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며 순간을 간직했어.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우렁차게 ‘감사합니닥!’ 인사하고 하차했는데 귀에 꽂은 이어폰이 무색하게 기사님의 ‘고마워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라고. 집 가는 길이 이유 모를 잔웃음으로 가득한 걸음이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최근에 탔던 택시 기사님에게도, 편의점 직원분도 내게 인사성이 밝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 그 따듯한 말들이 나를 더 용기 내게 만들었던 거 같아.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저자 마이클 센델 교수는 자신에게 공동체주의자라는 호칭을 선호하지 않았다고 해. 인간은 근본적으로 혼자 살 수 없는데 공동체주의라는 어떤 철학적 진영에 속해있다는 느낌에 비판적이었거든. 그는 도덕적 자아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자아는 공동체 속에서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즉, 자아하는 건 어떤 배경도 없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와 공동체 안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존재라 말했어.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집에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물품을 전달해 준 택배·배달 노동자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소를 하고 소독한 청소·방역 노동자분들, 물건을 정리하고 계산을 도와준 마트·편의점 직원분들이 그 대상이었어. 나의 감사와 친절함의 이유는 언제나 합당했다.
‘빛’은 어둠 속에서 길을 밝혀주는 존재이고 ‘소금’은 썩지 않게 지켜주는 존재야. 우리는 그러한 빛과 소금들 속에서, 또 그들과의 관계 안에서 조용히 빚어왔다는 걸 문득 실감하게 되는 삶이다. 자아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인정과 응답, 배려와 감사의 고리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니까 말이지.
서로의 다정함과 친절함 안에서 우리의 자아가 꽃피우길 하는 소망을 전한다 :)
From. 현충일, 카페에서
한결 :)
p.s 이름도 없이 희생한 영웅들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