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As always

by 한결



매년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단연코 환승연애다. 꺼져가는 연애세포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기에 이만한 시리즈가 없는 거 같다.


참가자들이 서로의 X에게 이별 택배를 건네는 장면에서 나를 대입해 봤다. 난 X에게 무엇을 넣어두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러다가 깨달았던 건 X에게 편지 하나 받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걸 바칠 만큼 사랑했던 그녀가 날 사랑하기는 했을까, 나 혼자만의 착각으로 그렇게 고군분투했었나 생각이 드니 비참했다. 밤을 새워가며 수십 개의 편지를 쓸 때마다 정작 난 받은 게 아무것도 없다니. 추억할 수 있는 그때의 기억이 없음에 슬펐고 그 슬픔은 X에 대한 미움으로 번져갔다.


잠 못 이루는 어둠을 박차고 전원을 켰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귀에 거슬리는 타이핑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원고를 복기했다.



내가 많이 사랑했나 보다.



그간의 글이 그동안의 마음을 증명해 주듯 든 생각이었다. X가 수줍게 편지를 받아 감동한 표정을 보면 나도 행복해 졌으니까. 그러니 말로 다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아 그 많은 종이 위에 올려두었나 보다.



너가 어떤 사람이었든 간에. 그런 널 사랑한 내가 중요한 거겠지.






왜 그동안 연애를 안 하셨어요?



두 번째 커피를 먹는 자리였다. 첫 번째 커피를 마시며 남산 주위를 2만 보 걷고 중간에 들렸던 카페. 쉬지 않는 대화와 지치지 않는 체력 속에서 본질을 꿰는 질문이었다.


그러게요. 새로 산 구두 뒤편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고 이내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지만 내면은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다음에는 어디서 볼까?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받은 연락이었다. 모델 같은 외모와 체화된 매너.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안온한 느낌을 줬던 사람. 캄캄한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새로운 감정에 끌린 건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내가 바뀐 건지 뒤늦은 혼란이 왔다.



그렇게 첫 만남은 마지막 만남으로 남겨졌다.






출근길, 뒤꿈치가 욱신거려 양말을 벗었다. 언제 생긴 상처일까 고민하다 대수롭지 않은 듯이 다시 신발을 신었다. 마치 무뎌지는 감정 같이.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