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As always

by 한결


잘할 거예요, 화이팅!



첫 시즌 피티를 나가는 날이었다. 지난 몇 주간의 밤을 쪼개며 준비했던 프로젝트라 긴장이 돼 아침부터 메스꺼움이 밀려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번 주부터 새로 들어온 H주임님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미팅룸에서 본인에게 연습을 해보라고 하셨다. 첫마디를 내뱉은 순간부터 손이 떨려왔지만 40분가량 되는 피티를 묵묵히 들어주시고 그에 관한 피드백까지 챙겨줬다.


그녀의 응원에 힘입어서일까. 나의 첫 피티는 다른 팀들의 칭찬과 함께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고객사의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서 풀려버린 긴장감에 저절로 눈이 감기며 생각했다.


내가 회사원이긴 하구나.





이번 제안서들 너무 좋았어



비가 무척이나 많이 내리던 날, 우산이 없어 도로변만 바라보는 나에게 팀장님은 역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손짓했다. 가는 동안 내 궁금증은 업무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잘 해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노력을 보상받는 듯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역 앞에서 멀어지는 차를 보며 말하지 못했던 고마움들이 입안의 이물감처럼 남는다. 출장 갔다 오시면 책상에 놓인 선물 꾸러미와 말없이 두고 간 사과, 고구마, 커피. 사람 냄새의 흔적들이 내 자리 위에 고스란히 배어져 있었다.


이 업계에서 최고라 입을 모아 칭송하는 리더 밑에서 같이 일을 하는 감사함보다 그녀의 고즈넉한 냄새에 더 큰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니까.





전 정민 씨 존재만으로도 너무 위로가 돼요



상담 가능해요? 퉁퉁 부은 눈으로 H주임님이 말을 건다. 쌓여 있는 업무 때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점심 시간에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말했다. 카페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며 북받친 감정으로 말하는 주임님의 고민을 묵묵히 들었다.


이제 2주 차 된 회사생활. 동종 업계도 아닌 곳으로 들어와 일을 새로 배우는 거라 무엇하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떠맡게 된 PT에서 S대리에게 혹평을 당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지난 나의 3개월이 스쳐가면서 안타까운 탄식의 말이 나왔다. 그리고 그간에 겪었던 내 일화들을 말해주니 흘리던 눈물은 온 간데없고 놀람으로 커져가는 눈망울과 입만 보였다. 익숙하다. 모두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런 반응이었으니.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나올 때보다 밝아진 표정으로 주임님이 말했다.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동안의 외로운 버팀이 누군가에게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일 수 있구나 생각하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