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always
난 내가 떠나야 할 때를 정해놨어.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크고 작은 인연들과 마주하게 된다.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천안 형님은 그 인연들 중 하나였다. 긴 머리카락, 매서운 눈꼬리, 의미를 묻고 싶던 타투들. 겉모습만 봤을 땐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게스트 소개 시간, 호주에서 막 돌아온 터라 마땅히 내세울 말이 없어 글을 쓴다고 짧게 소개했다. 그때 형님은 유난히 진지한 눈빛으로 내 얘기를 들었다.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면서 여러 질문을 던졌고 결국 내 책을 읽고 싶다며 직접 구매까지 하셨다.
그 고마움 때문에 육지에 올라온 뒤에도 형님에게 종종 안부 연락을 보냈다. 최근엔 내 취업 소식을 듣고 회사 근처까지 찾아와 밥과 선물을 한가득 안겨주시고 돌아가셨는데 세상에는 이런 인연도 있구나 싶었다.
저번 주말, 친한 지인의 결혼식이 천안에서 있었다. 전날 미리 내려가 있으려 형님께 하룻밤 묵어도 되겠냐고 전화를 드리니 흔쾌히 오라 하셨다. 오랜만의 재회의 반가움에 얼굴이 화끈해질 만큼 초록병이 돌기 시작할 무렵, 형님은 진솔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은 결의에 가까웠다.
어떤 정신적 병의 흔적도, 비관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저 오랜 생각 끝에 다다른 한 인간의 평온한 확신처럼 느껴졌다.
저는요, 형 삶에 재미난 일이 더 많이 일어나서 계속 살고 싶기를 바래요.
삶은 스스로 택할 수 없는 시작이지만, 죽음은 어쩌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러기에 그 경계선에 있는 누군가에게 난 어떠한 설득도 감히 할 수 없다. 단지, 그가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속으로 독백하며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다.
사진을 찍자고 형님을 졸랐다. 최대한 우스꽝 스러운 포즈를 취하고서 이 날을 기억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