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

As always

by 한결


5층 분이 먼저 다가와 인사해 주는 건 처음이에요


D님은 나를 "5층 분"이라고 불렀다. 순간 낯선 이 호칭에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무더위가 살갗을 녹일 듯한 여름. 택배를 확인하러 1층으로 내려가면 늘 지게차를 모시는 D님과 마주치곤 했다. 목 뒤에 커다란 쿨링 파스를 붙이고 40도를 훌쩍 넘는 더위에도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 번은 땀에 절어 벤치에 앉아 쉬고 있던 D님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넨 적이 있었다. 이 더위에 정말 고생 많으시다고. 놀란 듯했지만 금세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받아주셨다. 나보다 어린 듯 앳된 얼굴. 왼손에는 커플링이 빛나고, 작은 체구에서 묘한 호감이 번져 나왔다. 그날 이후 종종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퇴근하고, 밥 한 끼 할까요?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꺼낸 제안이었다. 피곤해 보이던 얼굴이 환히 밝아지며 좋다고 답하던 모습을 보며 말 꺼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자리에서 주제가 된 건 뜻밖에도 ‘5층 분들’ 이야기였다. 1층까지 내려가기 귀찮으니 택배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들, 장마철 젖은 박스를 두고 무조건 책임을 자재팀에게 전가하는 태도들. 누군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괜히 들으면 더 실망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도 D님이 없으면 발주하지 못한다고. 그 물건을 상하차에 실어주는 D님이 있기에 우리도 안심하여 개발하고, 영업하고, 관리하고 있는 거라고. 배려와 존중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니 분명 내면이 곪아 있는 사람들일 것이며, 이 삶을 나만 잘나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오만한, 수준 낮은 생각인지를 모르는 거다 열변을 토했다.


점점 내 얼굴이 빨개져갈 때 D님의 얼굴 그늘이 서서히 걷혀감을 느꼈거든.




이런 건 입사해서 처음 받아봐요.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미리 챙겨 온 신제품들을 건네었더니 예상치 못한 선물에 눈을 떼지 못하던 D님의 첫마디였다. 가장 많은 물건을 옮기는 사람이 정작 그 안에 내용물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부모님과 여자친구, 지인들에게 꼭 드리라고 전했고 필요하면 언제든 나에게 말하라고 했다.


계산은 끝내 D님이 사겠다고 고집을 부려 다음 저녁은 내가 꼭 사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겨우 가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역으로 가는 그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한참 봤다. 술 때문인지, 감정 때문인지 원인 모를 가슴속 뜨거움 때문에 사실 움직일 수 없었다.



차가운 세상일수록

작은 온기는 눈부시다.

얼어붙은 마음에 닿는

미약한 불씨 하나가

공활한 가을을 두른다.


하루를 살아냈다.

그거면 충분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