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4월 초 어느 날, 때 아닌 눈이 펑펑 내렸다.
"와! 눈이 온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수업 중이던 강의실이 일순 술렁거렸다. 봄꽃이 한창 피어오르던 창 밖 캠퍼스는 금세 하얀 세상으로 바뀌었다. 그 해 겨울은 나에겐 혹독하게 길었다.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그랬고, 내 마음의 봄도 그러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좌절로 나의 방황은 길어졌다. 오지 않은 봄과 함께 가슴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무력한 내가 밉고 싫었다. 살아보니,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한 작은 사건이었지만, 당시 나에게 전부였던 그 좌절로 인하여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었다. 개학을 했지만, 좀처럼 정들지 않는 낯선 환경과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고, 교내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차츰 마음의 봄이 열리기 시작했다.
캠퍼스에는 청바지에 기타를 멘 친구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봄이 익어가면서 교내 여기저기에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축제 기간 중 가요제가 열린다는 공고도 함께 걸렸다.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했던 나는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같은 과에 기타를 잘 치는 친구 둘에게 가요제 출전을 넌지시 던져 보았다. 두 친구는 기타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특히 한 친구는 첫 과 야유회에서 당시 쉽게 볼 수 없었던 일렉트릭 기타를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준 친구였다. 교내 가요제 출전 요건이 순수 자작곡이어야 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내 제의에 시큰둥하며 손사래를 쳤다. 내게 자작곡이 있다고 했지만, 두 친구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오선지 위에서 완성되지 못한 어설픈 노래였지만, 당시 방황하던 나에게 나름 진심인 곡이 하나 있었다. 일렉 기타를 다루는 친구가 흥얼거리는 내 노래를 듣더니, 곧바로 오선지를 채워 갔다.
그렇게 나의 자작곡 '고독한 방황'이 오선지 위 음표로 완성되었다.
말없이 돌아서던 기억들/ 흔들린 망설임에 우울한 기억들이 고개를 든다/ 나는 저 언덕에 우울한 상념 기억하네/ 희미한 가로등 회색빛 그림자를/ 힘없이 바라보는 나는 쓸쓸한 방랑자라오
한없이 밀려오던 아픔들/ 내 마음은 어두움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어 버렸네/ 이젠 하염없이 멀리 떠나가야 하네/ 희미한 가로등 회색 빛 그림자를/ 힘 없이 바라보는 나는 쓸쓸한 방랑자라오 (고독한 방황 1ㆍ2절 가사 전문)
기타를 못 치던 나는 리드 싱어를 맡기로 하고, 두 친구가 기타 반주를 맡았다. 학보사 빈 공간 연습실에 날달걀과 간식을 사다 나르는 학우들의 응원에 힘입어 예선을 통과하고, 10개 팀과 함께 본선에 올랐다. 수백 관중 앞에 처음 서 보는 그 설렘과 떨림 속에서도 우리는 매일 밤늦도록 연습한 만큼, 나름 만족한 무대를 마칠 수 있었다. 경연을 마친 무대 위로 한 친구가 뛰어오르더니, 대파와 무 한 다발을 건넸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냐고 물으니, 꽃을 살 돈이 없었단다. 가진 건 없어도 꽃보다 아름다운, 대파처럼 푸른 청춘들이었다. 학우들의 환호와 한바탕 웃음으로 우리들의 축제는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비록 우리 팀은 가요제에서 입상을 하진 못했지만, 가요제는 나의 젊은 방황을 소리 질러 외치던 탈출구였다.
'고독한 방황'은 내 젊은 시절의 방황이 글이 되고 노래가 되어, 아득한 시절을 회상케 하는 흑백 필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