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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하나, 추억 셋

by 윤기환


젊은 시절 기타에 대한 나의 동경은 미련만 남긴 채 긴 침묵 속으로 숨어 버렸다.


직장이라는 테두리에서, 삶이라는 굴레에서, 마음의 여유 없이 안에 매몰되어 살았다. 문득 돌아보니, 속절없이 흘러간 텅 빈 세월 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고, 내 나이 어언 쉰을 넘기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 후 직장에서 오랜 인연을 맺은 친구와 술 한 잔 했다. 그 친구는 젊은 시절부터 오랜 세월 기타와 낭만을 함께했, 당시 직장 내 기타 동아리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도 하고 있었다. 언젠가 덕수궁 돌담길에서 친구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거리의 악사로 변신한 그는 평소 내가 아는 친구가 아니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가, 그의 넉넉한 여유가 부러웠다.


친구와 허기진 술 한 잔 하다 보니, 가슴속 잠자고 있던 미련이 다시 깨어났다. 내가 기타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자, 직장 기타 동아리에 가입해 보라고 했다. 그때까지 그런 모임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곧바로 동아리반에 가입했다.

창고에서 잠들어 있던 기타를 흔들어 깨웠다. 놀란 토끼 눈을 하더니, 이내 반가운 듯 배시시 웃는다. 오랫동안 햇빛을 못 보게 한 기타에게 미안했다. 정성스레 먼지를 닦고, 내 방 한 구석 자리를 기꺼이 내주었다. 다시 가슴이 뛰었다.


바쁜 직장 생활 중 일주일에 한 번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행복이었다. 틈나는 대로 집에서도 연습을 하며 그 옛날 기타를 만지던 기억을 더듬었지만, 내 두 손은 체득화되지 않은 먼 기억을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새로 시작해야 했다.


나는 왼손잡이다. 글씨 쓰고, 밥 먹을 때만 오른손을 쓸 뿐, 모든 건 왼손이 우선이다. 왼손잡이로 살아오면서 그리 큰 불편은 없었지만, 기타는 달랐다. 왼손잡이가 기타를 배우기 힘들다는 건 왼손잡이 만이 아는 슬픔이다. 리듬을 타야 하는 오른손의 어색한 손놀림이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다. 왼손잡이의 설움을 안고, 기본 코드 몇 개로 더듬더듬 연주하던 어느 날, 그 어렵던 하이코드가 잡히기 시작했다. 기타를 배워 본 사람들은 안다. 초보시절, 하이코드를 자유롭게 잡고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큰 로망인가를....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초겨울, 동아리 발표회를 갖자는 선생님의 제안이 있었다. 각자 실력 차이는 있지만, 열댓 명쯤 되는 동아리 회원 모두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난 그 옛날 대학 축제 때 교내 가요제에 나갔던 자작곡 '고독한 방황'을 생각했다. 선생님께 얘기했더니, 내 기타 수준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그날부터 선생님의 지도 하에 열심히 한 곡 만을 연습했다.


발표회 날이 왔다.


30여 년 만에 내 노래가 청중 앞에 다시 섰다. 나는 노래를 시작하기 전, 흔들리던 젊은 시절 방황과 노래가 태어난 배경을 잠시 얘기했다. 나이 쉰을 넘긴 내가, 20대 초반 젊은 날의 어설픈 고독과 방황을 노래하기에는 다소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돌아서던 기억들 / 흔들린 망설임에 우울한 기억들이 고개를 든다/ 나는 저 언덕에 우울한 상념 기억하네.....(고독한 방황. 중략)


30년 만에 다시 선 무대


나의 젊은 방황은 오래전 끝이 났지만, 연습을 할 때도, 무대에서 노래할 때도, 30여 년 전 아득했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내 노래가 있다는 것은 작은 위로가 되었다. 또, 미련으로 남아 있던 기타와의 동행을 시작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기타는 나의 '또 다른 항해'에 동행하는 친구들 중 하나다. 지금도 기타는 늘 나와 함께 있지만, 늦게 배운 기타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기타를 손에 잡을 때마다, 친구는 여전히 날 초보라고 놀려대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여서 행복하다.


친구야! 나의 '또 다른 항해'에 동승해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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