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겁 없이 시작한 게임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를 이 시험으로 이끌었던 믿을만한 후배가 한 번의 실패 후 더 이상의 도전을 포기하는 것을 보았다. 또, 이 시험에 도전하고 두어 번씩 좌절을 겪었던 주위 동료들로부터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시험이라는 걸 누누이 들었지만, 시작하기 전까지는 내심 자신이 있었다.
책을 구입하고, 학원 등록을 하고,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점점 늪에 빠져드는 나를 보았다.
1차 객관식 3과목은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면 합격의 관문을 통과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주관식으로 치러지는 2차 두 과목이었다. 특히, ‘농작물 및 가축 재해보험 손해평가의 이론과 실무’ 과목은 짧은 기간 동안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생소한 용어를 암기하고 정리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또, 과수와 논·밭작물, 원예 시설작물 등 60여 품목을 비롯, 소, 말, 돼지, 닭 등 16개 축종에 대한 각각의 특성과 보험금 산정 및 기준 등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손해 평가를 위한 계산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서툴게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몇십 분 만에 겨우 풀어낸 문제가 오답이 반복될 때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계에 부딪히는 시간이 나를 괴롭혔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두드리고 두드리니 차츰 계산 속도도 빨라지고, 오답이 정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파면 팔수록 함정에 빠져드는 듯한 미로를 겨우 빠져나올 때쯤 되니 2차 시험 날이 닥쳤다.
희망을 안고 시험을 치렀으나, 한계선을 끝내 넘지 못하고 나의 첫 도전은 패배로 막을 내렸다.
시험 실패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구겨진 몸과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한 번 손을 놓은 책은 쳐다보기 조차 싫었다. 책상 한구석에 수북이 쌓여있는 책들을 바라보는 것이 민망해서 베란다 책장으로 치워버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삶의 출발점이자 지침서이셨던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신 지 2개월여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삶의 번민과 상실의 시간이 길어졌다. 방향을 잃은 삶이 나를 짓누르던 어느 날, 시험 일정이 발표되었다. 쉽게 포기하지 못한 자존심이 나를 붙잡았다.
다시 펜을 잡았다. 늙은 올빼미의 힘든 날들이 또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