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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ug 15. 2024

빈 식탁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거실 식탁에 덩그러니 앉아 소주 한잔 기울인다.

사진 속 아버지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아버지! 술 한 잔 하실래요?"

말을 건네도 엷은 미소만 지을 뿐, 아버지는 답이 없다.

    

  술은 아버지의 평생 친구였다. 평소 과묵하신 아버지는 술이 있는 곳에서는 늘 좌중을 압도했다. 누구도 아버지의 술잔을 피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겐 술이 곧 정이었고, 그 정으로 마법처럼 사람들을 묶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술잔에는 늘 정이 넘쳤다.     

  우리 삼 형제도 그 술잔 속에서 아버지를 알았다. 동생들이 결혼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린 후 가끔씩 우리 집에 모이는 날이면, 소주 한 박스가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밤새워 마시던 술잔에는 아버지의 정과 흥이 넘쳐흘렀다. 술을 마시다 지쳐 쓰러진 다음날 아침, 거실에 널브러진 술병들을 챙기며 흐뭇해하시던 아버지였다.     


  아버지 나이 여든을 넘기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그 좋아하던 술을 절제하다가도, 우리 삼 형제가 모이는 날이면 여전히 자식들을 능가하는 술 실력을 발휘하곤 하셨다.     


  어느 날부터인가, 수면제를 드시고도 잠이 오지 않는다며 한 밤중에 소주를 마시는 날이 잦았다. 나는 내성이 생길까 염려가 되어, 그런 아버지의 술잔을 말리곤 했다. 

그렇게 숱한 밤을 잠과의 전쟁을 하던 식탁 위에 아버지의 술잔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 밤, 아버지가 한숨의 잠을 얻기 위해 술잔을 비우시던 식탁에 홀로 앉아 잔을 기울인다. 

아들이 소주 한 병을 다 비우도록 사진 속 아버지는 말없이 지켜만 보고 계신다.


“아버지! 그때, 말리지 말고 소주 한 잔 더 드릴 걸 그랬습니다.”

“그래야 했습니다......”




이번 달 말이면 아버지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4주년이 됩니다. 세월 흘러도 잊히지 않는 그리움을 남기고 가신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주고 가신 정만큼 우리 아들 딸에게도 사랑을 듬뿍 주며 살아야겠다는 마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다음 주에는 익산 선영에 계신 아버지께 좋아하시던 소주 잔 듬뿍 드려야겠습니다.


그동안 "그리움을 그리다"와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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