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 글에서 느껴지는 감수성과 통찰력은 깊은 여운과 감동을 준다. 문학 평론가 황현산은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고 했다. 김훈 작가가 지닌 현재의 폭은 얼마나 넓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의 현재는 일산 호수공원에서 바라보는 풍경부터 나이듦, 언어, 그리고 산업 재해로 죽은 노동자들과 사회적 참사 같은 당대의 문제까지이다. 나아가 시대의 모순과 단순하고 우직하게 맞부딪친 안중근 및 동서양 청춘들, 삶과 죽음, 불완전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에까지 닿아 있다. 거기에 바탕을 둔 그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1부 ‘새를 기다리며’ 14편의 글 속엔 작가가 ‘허송세월’하면서 지내는 최근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호수공원에서 보고 듣는 것, 70대 노인으로 병원에서 겪는 일들, 시간과 죽음에 대한 인식 등. 생활 속에서 길어낸 그의 생각들은 당위와 이념이 아니다. 그는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적대적인 언어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공허한 ‘정의’로 현혹하지 않는다. 다만, 말의 중요성, 즉 말이 소통의 능력을 회복할 때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 죽음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 물질과 생명 중에 무엇이 중한가를 지극히 상식적으로 묻기도 한다.
2부 ‘글과 밥’ 16편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밥을 먹는 작가로서의 일상이 더 자세히 드러난다. 저자는 ‘책보다 사물과 사람과 주변을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그건 추상과 관념이 아닌 몸으로 살아내는 생활을 귀히 여기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그 생활을 ‘웃자라서 쭉정이 같고, 들떠서 허깨비 같은 말’이 아닌 ‘삶과 시대와 사물을 향해서 정면으로 달려들’ 때 쓸 수 있는 말들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한다. 조사 ‘에’의 쓰임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형용사와 부사를 최대한 쓰지 않고 적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은 그가 언어를 부리는 일에 얼마나 치열한가를 보여준다.
3부 ‘푸르는 날들’ 13편의 글에선 사람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작가는 이 세계와 인간을 불완전하다고 본다. 시대의 틀로 자리잡은 약육강식의 폭력과 인간의 악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쉽게 정의를 말하고 이념으로 현실을 가리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그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폭력과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불완전한 방법으로나마 억압과 폭력과 악을 넘어가려 했던 안중근, 정약용, 정약전 같은 역사적 청춘들에게서 눈부신 아름다움을 본다. 그 아름다움은 한 시대의 모순과 대결하며 살아낸 박경리, 신경림, 백낙청 같은 인물뿐만 아니라 인천 교동도의 대룡시장에서 제비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명하는 젊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도 있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비관적이다. 그는 모호한 추상의 언어, 관념의 언어로 헛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겸손과 조심스런 마음으로, 생활을 통과한 언어로 자연과 인간의 생명력이 갖는 아름다움을 말할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세상과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작게나마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우리를 옥죄는 목줄을 헐거워지게 하려는 그를 따라 이 세상을 선으로 기울게 하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이런 힘들이 모일 때 생명을, 인간을 파괴하는 거대한 구조에 균열을 내고 단 몇 명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하루하루의 생활은 크고 숭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