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안 06. 운명을 보는 사람
마당에 대추나무 있지?
아니요.
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듣는 이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이야기. 나는 이런 이야기에 활짝 열려 있는 사람.
신점, 사주, 타로카드, 심지어 커피점까지. 누군가 나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게 퍽 흥미롭다. 과거에 내 모습은 어땠고, 현재는 어떻고, 또 미래에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직선적인 이야기. 듣는 이의 믿음이 필요한 이야기. 천생 F인 나로서, 이런 이야기에 잘 몰입할뿐더러 무릎을 탁! 치고 마는 것이다. "맞아요, 맞아요."
사실 운명은 이렇게 '대놓고' 알게 되는 게 아니다.
#화려한 신당에 용하다는 무당이 앉아 있다. 친구 손에 억지로 끌려온 A는 시큰둥하게 앉아 있다. 친구는 무당 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던 무당이, 별안간 A에게 말한다. "교통사고 조심해" 어리둥절해하는 A. 그리고 얼마 후, A에게 사건이 일어난다. 물리적 교통사고? 아니.
교통사고가 날뻔한 현장에서 만난... 사랑의 교통사고
운명은 이렇게 '별안간' 들어야 하는 걸까.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지루한 날에 얼음물을 끼얹어줄 운명.
신점이든 사주든, 운명을 보는 장소에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향이나 조명, 또는 맞은편 사람의 눈빛 같은 거. 일상적이지 않은 그 분위기에 은근히 기대하고 마는 것이다. '별안간 제가 부자가 될 거라고 얘기해 주세요' 라던지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나타날 거라고요?' 같은.
운명에 대한 예언은 막상 '별것, 없이' 잊혀져 간다.
어릴 때 한 번 아파봤을 거라던 누구의 말은 딱 들어맞았고, 사실 어릴 때 여러 번 아파본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게 정답. 내년엔 큰 이동수가 있어서 이직이든 결혼이든 할 거라는 누구의 말은 날 꿈꾸게 만들었고, 그로부터 2년간 큰 변화 없이 지내는 게 현실.
어찌 됐든, 운명은 이 지루한 날에 얼음물을 끼얹긴 했다. '아 내가 요즘 지루하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 삶의 밖에서, 변화를 기대한다. 능동적이진 않지만, 이런 사람도 이런 때도 있는 거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일은 좀 다를 거라고 듣고 싶은 순간.
드라마에서처럼 '남쪽에서 귀인이 나타나 일생일대의 기회를' 가져다줄 수 없으니까
오늘 밤은 스스로에게라도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야, 그래도 내일은 또 다르다. 월요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