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뜰아이들 Oct 16. 2023

당신의 불행이 나의 다행

#07. 방명록

여러 사람이 반나절에서 하루, 길게는 한 달을 묵고 가는 곳들이 있다.


게스하우스나 에어비앤비 또 대여 공간.

처음엔 주인장 취향대로 의자와 조명, 책이 놓이고

이후엔 방문자 취향대로 조금씩 위치가 바뀐다.


지난번 방문 때 맨 앞에 꽂아놓은 책이 이번엔 맨 뒤로 밀려나 있다던지,

지난번 왼쪽에 있던 조명이 이번엔 오른쪽에 가 있다던지,

하는 일들을 겪다 보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취향과 버릇"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사실 큰 노력 들이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방명록이 있으니까.

방명록엔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많은 이야기가 이런 방향으로 흐른다.

앓다, 이곳에 와서 오롯한 시간을 가졌고

얼굴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얻었습니다.


방명록을 보면 한 번씩 읽어보는 편이지만

훔쳐보는 기분이기도 하고, 어쩐지 낯간지러운 마음에 이내 덮어버린다.


최근엔 이런 글을 발견했다.



오자마자 타인의 힘듦으로 나의 불행을 위로받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방명록을 뒤졌다



그동안 본 글 중에서 가장 솔직한 이야기였다.


나의 불행이 작아지길 기대한 적 있다.

방명록에는 누군가 꾹꾹 눌러쓴 글씨가 있고,

어쩐지 힘들었던 상황을 꾹꾹 눌러 담은 것 같아서,

나는 이렇게까진 힘들지 않잖아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이번에 발견한 글에선 이런 말도 있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펑펑 울었다며


'응원한다' '괜찮다'라는 말이 필요했던 것, 이라고



전혀 새로운 말이 아닌데, 새롭게 보였다.

방명록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눈으로 훑고 지나갔던 많은 글들에 "괜찮아"라는 응원의 말들이 있었다.

힘들어서 꾹꾹 눌러쓴 게 아니라, 정말 힘내라고 꾹꾹 눌러쓴 글이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이야기를, 겉도는 이야기를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당신의 불행을 나의 다행으로 여길 생각'이었다 말하고

계산 없이 괜찮다, 응원한다 말한다. 그런 거였다.  


무조건적인 응원은 나와 당신의 다행.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방명록이라는 이름의 비망록을 채우는 걸지도 모른다.


괜찮아요. 힘내요.

하고 여러 줄 적고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당에 대추나무 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