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식 08. 음식에 관해 말할 때 삶의 감칠맛을 얻을지도 몰라
서울 은평구 은평로 32. 응암역 1번 출구에서 신사동고개 방면으로 350미터가량 직진하면 나오는 곳. 이름은 벙구갈비. 빙구 아니고 벙구갈비다. 증산역에 살아서 자전거를 타고 불광천을 따라 도착한 곳. 돼지갈비를 워낙 좋아해서 이사하자마자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마음에 퍽 드는 갈비집은 없었다. 고로 갈비 양념이랑 양파와 배, 생강, 사과 등 과일맛 혹은 꿀에 잰 맛이 나와 하는데 시판용 양념에 잰 매독 같은 맛이라니. 반찬이 은혜스러워서 간 곳은 반찬만 맛있었더랜다. 나무아미타불.
증산역에서 10분만 라이딩하면 나오는 곳
벙구갈비는 달랐다. 수제갈비 1인분이 17,000원이었는데 350그람이었고 나와 반려인은 2인분을 주문해 700그람을 숯불 위에 굽기 시작했다. 보통 비슷한 가격에 300그람을 주는 데 반해 그람수가 넉넉해 소식(小食)까진 아니더라도 고깃집에 가서 방 한 공기를 잘 나눠먹는 두 사람에겐 딱 맞는 양이었다. 고기도 두툼하니 구들방에 얹어놓은 할머니의 사랑방 솜털 이불 같았다. 할머니, 이불이 기분 좋게 익어요.
특히 감탄한 건 청국장이었다. 큼직큼직하게 썰어놓은 무가 뽀얀 국물에 잠겨 있는데, 설걱설걱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연희동 일식주점 희로에서 맛보았던 무조림만큼이나 양념이 얄밉게 배어(여기도 맛있다!) 밥 한 공기에 청국장 한 뚝배기로 충분히 근사한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 듯했다. 이곳 주방에 계신 이모님의 손맛이 유별나고, 그 유별난 재주 덕분에 벙구갈비의 품격이 높아졌다고 자부할 만큼. 반찬이 맛있다.
갈비를 굽기도 전에 청국장 맛에 감탄을 연발하다 보니 넓적한 무와 닮았을 이모님의 이마는 오늘 아침 어떤 공기를 만났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새벽에 일어나서 찬공기 가르며 담배 한 대 태우셨을까. 대파 몇 단, 김치 여러 포기, 도마와 칼을 너른 주방에 쌓으며 애태우는 사랑에 남몰래 빠지셨을지도.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사랑스럽게 맛있는 무가 나올 수 있을까. 이모님 만세. 아 이모부가 만드셨을지도 모르겠다.
썰어놓은 양파로 가득한 양념장, 파절임, 각종 견과류가 들어간 호박 샐러드, 쌈장과 마늘 등 다른 반찬들은 여느 갈비집의 메뉴와 비슷한 구성. 메인으로 나온 갈비에 입혀진 양념이 슴슴하니 순해서 고기 씹는 맛을 더욱 배가시켰다. 왼쪽 테이블에는 초등학교 동창 남녀로 보이는 커플이 고기를 씹는지 사연을 씹는지 모를 테이블을 구구절절 지난 시절로 닦아 나갔다. “너 그래서 그 사람한테 너 이혼한 건 말했니?”
왜 그걸 말하는 건데. 자기 맘이지. 뭔 상관이래. 생각하는데 남자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오른쪽 테이블은 부부임이 틀림없다. 한 톨의 말도 하지 않고 고기만 먹는다. 아니야 방금 만난 사이일 수도 있잖아? 벙구갈비에서 이 모든 물음을 아름답게 나눌 수 있다. 어쩌지. 이 갈비집에 빠진 것 같다.
전쟁 같은 맛 다음엔 회복의 맛들
갈비 한 점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미음을 함께 먹던 시절을 기억하며 “잘 늙도록 하거라 야옹” 호명해 마지않았던 우리 집 막내 고양이 찌찌가 지난 8월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최근엔 침대 위에 올라오려고 버둥대는 모습으로 꿈속에 나왔는데, 무진장 애를 쓰고 있었다. 반갑고 무섭고 묘해서 “찌찌야!” 불렀다가 “너 임마 죽었잖아.” 타박했다. 언제나 내 다리 근방에서 잠들곤 했는데 보고 싶어서 꿈에 나온 건지 지금도 코끝이 시큰둥하다.
다음 갈비는 쌈에 싸서 먹어야지. 쌈장을 모자처럼 씌운 마늘을 쌈에 오도카니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난주 휘몰아치는 회사일(인사 관련)로 충격을 받은 건지 정말 책 읽다가 고개가 꺾여서 통증이 시작된 건지(복합적인 것일 테다) 목부터 정수리까지 이어지는 두통에 사경을 헤맸고 점심 휴게시간에 근육이완제 열 대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다음 날 링게를 맞고 겨우 업무 미팅을 다녀와 올해의 점괘에 고민이 많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과대망상에 빠졌다가 호로록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야말로 쓴맛이었다.
소복하게 눈 맞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정종을 들이키며 차창 밖을 보는 겨울이 오면 좋겠다.
잠잠무쉬 생각에 잠긴 나날들이었다. 평온한 연말을 원한다. 모두 눈곱 낀 얼굴로 방구 붕붕 뀌면서 “치킨 무 많이 먹었구나?” 농 때리며 닦지 않은 이로 아침을 열었으면 좋겠다. 전쟁 같은 맛 다음엔 회복의 맛이 찾아올 것이다.
영화 <패터슨>에 나오는 버스기사에 관해 종종 이야기하는데, 부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첫째, 매일 수첩에다 시를 쓰고 둘째, 저녁식사 후 개를 산책하며 갈 수 있는 동네 술집이 있고 셋째, 자기의 일상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타인에게 설교하지도 않고 어린아이가 쓴 시를 경청할 줄 알고 도시락도 맛있게 먹는다. 사실 그런 다정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인류 중 몇이나 있을까 싶다.
대다수 똥 덜 싼 강아지처럼 자신의 이상을 트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반짝 빛내고 싶은 욕망에 갇혀 계절을 보낸다. 그런데 비뚜룸하게 살펴보면 그 계절 모두 각기 맵거나 짜고 달고 칼칼하니 시원하다. 맛이 있다. 가시가 있으니까 생선이겠지. 바다처럼 흔들리고 망망대해 깊은 맛이 나겠지. 아, 생선대가리 들어간 해장국 먹고 싶다.
때깔 좋은 이웃들을 생각하며 달게 살아볼란다
청국장 국물에 폭 담가 놓은 밥 한 숟갈에 양파 절임 몇 개 올린 갈비 한 점 입에 넣는다. 맛있다. 올해 유난히 경조사가 많았다. 축하하는 자리와 위로하는 자리에 가면서 드문드문 노래방 화면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다와 찌를 듯한 샹들리에, 부고 소식에 신음을 앓으며 주고받았던 무수한 문자들. 소고기 다시다 같기도 몇 번이나 우려먹는 육개장 같기도 해서 코끝이 아리다.
인생은 딸기맛 춥파춥스 같기도 엎지른 피자 나라 치킨 공자 같을 때도 있지만 그것이 초가공식품 같더라도 나름 감칠맛이 있어서 우리의 혀는 오늘도 젖어 있다.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우는 기관이 몸속에 하나쯤은 있어야지.
찌찌야, 가기 이틀 전에 케이크 크림 먹고 싶다고 식탁 아래서 콩콩 뛰어줘서 고마워. 불완전한 저마다의 맛이 요일을 잘 헤쳐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 저는 요즘 청하에 빠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