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늘 정답은 아니다

by 책밤

“속는 이는 어리석다 평가받고, 속이는 이는 거짓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두 평가 가운데 더 무거운 책임은 언제나 속이는 쪽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진실을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 때로는 타인을 해치지 않기 위해 말하지 않는 선택 또한 지혜에 속한다.”

_《사람을 얻는 지혜》 아포리즘 181.


목숨을 건 전장에서 적을 교란하기 위해 간계(奸計)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닌 한, ‘정직’은 인간이 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거짓말하지 않는 삶의 자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모든 진실을 다 말하지 않는 지혜’이다.

진실은 때로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의 평화로운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그러니 아무리 참인 말도 오직 덕이 되고, 타인에게 이로우며, 혹은 아무런 영향이 없는 중립적인 상황일 때에만 밖으로 꺼내놓아야 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속는 자보다 속이는 자의 책임이 훨씬 무겁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진실을 반드시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진실을 은폐하라는 뜻이 아니다.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침묵의 미학’을 배우라는 의미이다.

영화 <올드보이>는 애써 꺼내지 않아도 될 진실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오대수는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목격한 동창생 이우진의 비밀을 친구에게 무심코 전한다. 그는 그저 목격한 ‘진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혀끝에서 시작된 소문은 누군가에게는 죽음보다 깊은 상처가 되었고, 결국 15년의 감금이라는 처절한 복수로 되돌아온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라는 영화 속 대사는, 함부로 내뱉은 진실의 대가가 얼마나 무거울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생의 품격은 입을 여는 것이 아닌, 입을 닫는 순간에 결정된다. 진실이 덕이 되지 못할 것 같다면, 가슴 속에 묻어두어라. 거짓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신뢰를 쌓고, 진실을 아낌으로써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세속적인 물음>

“진실을 담은 그 말의 모양이 혹여 송곳과도 같지 않은가?”

정직한 마음과 신중한 입술을 동시에 가질 때, 비로소 관계에 평화가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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