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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밤 Dec 01. 2024

단색의 삶

같은 물체라도 단일한 색으로 채워진 물체의 형태가 더욱 또렷하다.

화려한 색의 무수한 조합이 때론 전체의 모습을 일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공간을 여러 가지 색이 아닌 단일한 색으로 채웠을 때 그 모습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형형색색의 모습을 하고 뽐내는 것이 온전한 하나의 색채를 띠고 드러내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와 한 행사장에서 만들기 체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색깔의 실을 여러 가닥 사용해 네잎클로버를 만드는 체험이었다. 아이와 함께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각자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네잎클로버를 만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색을 조합해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그려본 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네잎클로버의 잎사귀가 하나둘 완성되어 가기 시작하자, 점점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 상상으로 그려본 화려한 색깔의 네잎클로버는 온데간데없고, '이게 네잎클러버가 맞나'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실뭉치가 만들어졌다.

망했다.

반면, 아이의 네잎클로버는 노란 빛깔의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한 채 작은 손 안에서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시작 전, 한 가지 색으로 만들겠다며 자신만만해하던 딸아이는 자신의 작품과 나의 실뭉치를 비교하더니 더욱 의기양양이었다.


때론 일상을 단색으로 채우고 싶다.
알록달록 화려함에 눈길을 뺏기다가도,
단일한 색으로 드넓게 펼쳐진 초원에 마음의 쉼을 얻는 것처럼, 내 삶의 색을 한 가지로 채우고 싶다.


그렇게 또렷한 형체를 얻고 나만의 단단한 인생을 만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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