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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Feb 25. 2024

해산바가지 - 박완서 단편 소설 모음집

 



  박완서 작가하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판 작가다. 그분이 살았던 일제 강점기와 6.25 때 일어났던 사회현상과 인간관계, 생명 존중에 관한 글을 쓰신 점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이번에 읽은 단편 소설 중 <해산바가지>가 눈에 띠었다. 나는 처음엔 제목이 해산바라지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시어른들의 남아 선호사상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의 애달픈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 <해산 바가지>라고 정확히 알았다. 나도 딸만 둘 낳아 키웠고 이젠 둘 다 결혼해서 다섯 손주를 둔 할머니다. 이젠 건강하게 손주들 재롱 보며 살아가는 게 우리 부부의 목표다.

  나도 그 당시에 딸만 둘이어서 주변에 모르는 어른들조차도 “쯧쯧 남의 집에 줄 딸만 둘이군.” 하며 쑥덕거릴 때는 섭섭한 마음이 컸었다. 그렇지만 남편의 권유로 둘째 태어날 때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하는 수술도 같이했다. 만약 내가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양수 검사나 소파 수술을 했을 것이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아들을 가질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위해 골머리를 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 손녀를 내리 넷을 낳았어도 한결같이 정성스러운 마음과 모습으로 산모의 건강과 아기의 운과 명을 빌며 해산바라지를 하는 시어머님은 드물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박완서 작가님의 자전적인 실제 상황을 모델로 한 듯 보였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좋은 어른의 본보기. 실제 그 시대에 그렇게 하기는 드물었다. 누구라도 집안에 아들이 없으면 대가 끊긴다며 완전한 가정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전혀 신파적이지 않고 진심이 묻어났다. 작가님만의 특유의 쏟아내는 듯한 이야기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글 속에서 그 시대의 모델이었으면 하는 시어머니 상을 그려낼 수 있다니! 놀랍다. 소설은 허구라고 배웠지만 <해산바가지> 소설은 전혀 허구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진실 된 참으로 닮고 싶은 어른 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치매가 가장 무서운 병증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누군가 혼미한 정신으로 살고 해결책도 없이 까도 까도 답답한 상황이라면 온가족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신경 안정제를 삼키며 어머니를 위선적으로 대하는 화자처럼 치매 환자를 간호하는 분들의 지친 모습은 요즘에도 일반적인 상황이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남편은 어머니를 모실 적합한 장소를 찾아다닌다. 어머니를 모실 장소 찾기가 옛날 고려장처럼 생각이 들어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자식의 입장이었을 것도 같다.

  마지막에 부부는 스님이 운영하는 괜찮다는 요양원을 찾아 나선다. 그들은 끝도 없이 외진 요양원을 찾아가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낸다. 그리고 주인도 없는 가게에서 갈증을 달래는 막걸리 한 병을 들이키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때 화자는 시골 지붕에 자리 잡은 보름달처럼 크고 풍만하고 잘 생긴 해산바가지를 본다. 옛날 자기 아이들 출산할 때 시어머니는 웃돈까지 쥐어주며 가장 튼실하고 정갈한 곳에서 자란 해산바가지를 구해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시어머니 나름의 확고한 손자 사랑 법이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서 기쁨과 평화와 삶에 대한 믿음이 샘물처럼 흐름을 느낀다. ‘시어머님의 누추한 육체와 망가진 정신만 봤지! 한때는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어 있었나를 잊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다. 효부인척 위선을 떨지 않고서부터 숨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며 단숨에 가던 길을 되돌아선다.

  그 순간 손주 다섯을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해산바가지에 쌀을 씻고 미역을 빨아 산모 바라지를 하셨던 시어머님. 생명 존중하는 마음을 몸소 실천하셨던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임종을 맞을 때까지 진심으로 대한다. 아무리 힘든 일도 한 순간 이거다 싶은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 많은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괴력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을 짓눌러 왔던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과 태도를 견뎌낼 수 있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박완서 작가가 이 작품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마도 작가님의 가슴속 깊은 곳에 들어있는 응어리 아니었을까? 그것은 작가님 아들, 그 누구보다 잘 나고 든든했던 아들이 어느 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터지고 힘들었을까? 작가님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어느 날 형님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작가는 전화통에 형님에게 끝없는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형님은 절벽 같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자기 아들이 죽었을 때 쉬쉬하며 자기를 대하는 모습이 느껴지고, 너무 감추려고 하는 것도 힘들고, 너무 잘해주는 것도 힘들어 했다. 화자는 마지막 부분에 친구 명애를 따라가 목숨만 붙어있는 또 다른 친구의 아들을 본다. 평생을 몸져 누워있는 자식 병구완하며 “원수 같은 자식, 어서 뒈져버리라.”고 울부짖는 친구를 본다. 이렇게 친구를 힘들게 하는 아들도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 너무 부러워서 통곡을 한다. 그동안 감춰왔던 작가의 감정이 무너진다. 그곳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나서 화자는 살아남을 숨구멍을 찾고 그동안 감춰뒀던 감정에서 벗어난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손을 내밀어 친구 아들을 거들려고 하자 “여직껏 흐리멍덩 공허하게 열려있던 환자의 눈이 성난 짐승처럼 난폭해졌다. 그 흐리멍덩한 눈은 어머니에 대한 신뢰와 평안감에 극치였던 거죠.”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남의 아들이 아무리 잘나고 출세했어도, 부러워 한 적이 없는 화자가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날카로운 삼지창 같은 게 가슴 한가운데를 깊이 훑어 내리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한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평생을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산다. 아들이 죽은 후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지금까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이 하나도 안 중요해지고, 하나도 안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해진다.” 새로운 자기 자신의 변화를 겪고 살아가려 애쓰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전태일의 죽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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