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이 재미있어졌다. 노트북에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저장하고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 올리는 일을 한다. 글감이 여기저기 보이고 글을 쓰다 보니 특별한 순간이 쌓여가듯 풍요로움을 느낀다.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라고 홍세화 작가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지자체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질 높은 글쓰기 수업을 찾아 받는다. 점점 글이 정리되고 나만의 콘셉트가 정해져 카테고리를 넓혀가는 게 뿌듯하다.
어느 날 독립출판으로 시민작가를 모집한다는 프랑 카드를 보고 저장해 둔 원고를 열심히 정리해서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책 한 권은 내고 싶은 로망이 있다. 나도 그렇다. 혼자 기획해 책을 내려면 막막할 텐데 이번 기회로 또 하나의 새로운 작업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은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인연도 만나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도 있겠지!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도전했다. 60넘은 나는 한글 워드를 사용해 근근이 글을 써나간다. 그 어마어마한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단 10퍼센트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다. 네이버한테 물어보면 해결책이 보인다는데, 그걸 찾아 해결하는 사람은 문제점을 이미 아는 것이다.
월요일 저녁 7~~9시까지 4차시 수업으로 책을 만들어가는 강좌에 참여했다. 손주 돌봄을 끝내고 딸이 퇴근하면 빠듯한 시간을 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다녔다. 첫 시간 선생님이 하시는 독립출판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다가 프로그램도 제대로 깔아 가지 못해서 이해불가였다. 특히 컴퓨터 언어를 제대로 모르는 나에겐 오르지 못할 커다란 산처럼 더 갑갑했다. 남편과 둘이 산다. 젊은이가 가까이 없어서 물어보기도 어렵다. 손주들을 돌보고 있지만 퇴근하는 엄마 양다리 붙들고 반갑다고 방방 뛰는 손주들 보면 참 뿌듯한 광경이다. 거기에 나의 궁금증까지 해결해 달라고 엉겨 붙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예전엔 컴퓨터에 관한 것은 무조건 남편에게 물어보면 대충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남편도 나도 나이가 들었고 이번 독립 출판에 관한 프로그램은 남편에게도 생소한 것이라서 해결할 수가 없었다. 돈을 지불해 프로그램까지 샀는데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안 보여서 순간 당황했다. 다행히 as센터 원격 서비스로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 책을 만든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주말에 노트북을 들고 같이 수업 듣는 후배를 카페에서 만나 하나씩 해결해 갔다. 어쩌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 어느 정도 과제를 해갔다고 생각한 마지막 시간이었다. 오늘 끝내야만 내 원고로 직접 강좌 들어가며 손수 만든 책을 소장할 수 있다. 강사님은 순번을 정해 수강생 한 분씩 문제를 해결해주고 계셨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후배는 거뜬하게 끝내고 나도 도와주고 다른 사람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실타래가 엉켜 어떻게 해볼 엄두가 안 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결국 번 아웃이 되어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나는 포기하겠다며 오만상을 찌푸리며 짐을 꾸렸다. 남자 한 분이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자기는 한 페이지씩 인쇄해서 수정을 봤는데 그런 노력을 해봤냐고 물었다. 부끄러웠다. 나만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하나씩 해보라며 격려와 용기를 주었다. 1주일간의 여유를 주며 끝내서 제출하라고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공지했다. 마지막 수업은 끝났지만 열의에 찬 수강생들과 강사님의 열기는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그날 밤 1시 넘어서야 집에 돌아간 수강생도 있었다는 소식을 채팅창에서 봤다.
오픈 채팅창은 계속해서 묻고 대답하는 토론의 장으로 떠들썩했다.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고 번 아웃 상태라 컴퓨터 자체를 거들 떠 보지 않았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함께 하자던 말이 오랫동안 내 귓가에 울림으로 남았다. 딱 이틀 후 아쉬움에 그 파일을 열었다. 선생님이 수업 중에 말씀하셨던 힌트가 되는 한 마디가 기억났다. “이것은 하나하나 모두 다 작업하셔야 합니다.” 그땐 냉정하고 힘 빠지게 들렸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의 노동시간만 투자하면 해결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막혔던 숨구멍을 찾은 듯 힘이 났다. 그래 노동이라면 이골 난 나다. 강사님의 말을 생각하며 노동의 힘으로 한 페이지씩 해결되자 희열감이 느껴졌다. 내 머릿속의 무거운 돌덩어리가 하나씩 치워진 느낌으로 개운해졌다. 그렇게 몇 시간의 노동과 욕심을 버리고 단순화하자 내가 원하던 결과물이 탄생했다. 그래 처음이니까 다 담으려 욕심부리지 말고 걷어내고 덜어내자. 초보가 사진까지 다 담으려는 욕심이 과해서 엉켰던 것이다. 그때부터 채팅창에 모르는 것을 하나씩 물어서 해결해 나갔다. ‘이렇게도 작업이 되는구나!’ 정말 놀라웠다. 오픈 채팅방에 있는 30여 명이 자기가 알고 있는 해결책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모두 한마음으로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모르는 사람은 묵언으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는 느낌, ‘즉 소통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었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에 울컥하고 가슴이 찡했다. 어떤 분은 자기 전화번호까지 채팅창에 남기며 전화하라는 따뜻한 마음씀씀이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진심을 다해 어려움을 해소해 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 본 적 있었던가?’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이 들었으면 더 베풀고 나누어야 하는데 많은 정성과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는 것 같아 반성했다. PDF로 된 책 원고를 냈고 인쇄소에 보냈는데 수정 메시지가 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끝까지 수정하라는 문자는 오지 않았다. 이렇게 세상에는 자기 일이 아니라도 자기 일처럼 관심과 배려가 있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미력하나마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을 열어가야겠다. 이렇게 새로운 취미 수업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문으로 연결해 주었다. 그렇게 힘들 때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해 주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함께 하자고 말씀해 준 젊은이들이 더욱 정겹고 고마웠다. 채팅창에서 버벅거리는 질문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실제로 전화까지 해서 하나씩 짚어가며 자세하게 알려주신 분 감사합니다. 열의에 찬 강사님과 불특정다수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며 출간된 책을 출판 기념회 때 받으니 벅찬 감회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