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다급한 목소리... 고속도로 화장실에서

공공 화장실에 비상벨이 필요한 이유

by 진향림 최윤순



“도와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문이 안 열려요.”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나가서 도와드릴게요.”

나 역시 차멀미와 체기로 힘들어서 화장실에서 한참 씨름하던 터였다.

얼른 나와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문을 살살 흔들어 봤지만, 잘 열리지 않았다.



마침 화장실 들어올 때 청소하시는 분을 보았던 것 같았다. “청소하시는 분 찾아올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청소하시는 분은 나오지 않았다. 보통 화장실에는 담당하는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지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무슨 안내장 같은 것이 보였지만 당황하고 잘 보이지 않아 찬찬히 읽지 못했다. 전화번호를 찾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가 안내소 같은 걸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분이 얼마나 놀랐을까. 내가 그냥 가버렸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무작정 찾아다닐 수 없어 다시 화장실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그곳에는 우리 둘을 제외하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 계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분은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목이 쉬도록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사람 기척을 들은 그녀는 겁먹은 목소리로 간절하게 말했다. “문을 한번 발로 차 보세요.”

하지만 기물이 파손될 수도 있고, 안에서 어떻게 서 있는가에 따라서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선뜻 행동하지 못했다. 우리가 서로 문을 밀고 흔들며 애를 태우던 끝에 문이 간신히 열렸다.

나와서 보니 그분은 하루 종일 같은 버스 타고 여행을 다녔고 바로 내 앞좌석에 앉아 있던 어른이었다.

우리는 명절 전 여행사를 통해 안동 하회 마을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밤 8시,

경기 ○○ 휴게소 여자 화장실이었다.



보통 지하철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는 비상벨이 설치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긴급 상황이 일어났을 때 벨을 눌러서 연락하는데 이상하게 그 휴게소에는 그것이 없었다.

많이 당황했지만, 우린 무사히 문을 열고 나와 손을 꽉 붙들고 버스로 돌아온 것이 그저 감사했다.

버스 안에서는 우리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이드와 그녀의 동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여러 번 전화했지만 나는 무음으로 해놔서 제대로 못 들었고, 그녀는 전화기를 버스에 놓고 왔던 상태였다.




사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비상벨 설치가 의무인지 아닌지 나는 확실히 모른다.

어느 범위까지 의무적으로 설치되어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벨이 있었다면 그날같이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통화해서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날은 2월 12일 목요일 저녁 8시 늦은 시간. 명절을 앞둔 평일이었기 때문에 휴게소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만약 나마저 없었다면 그분 혼자 문이 열리지 않은 공간에 갇힌 채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물론 여행 가이드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화장실로 찾아오기는 했겠지만.

그분에게 그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은 공포였을 것이다.

우리끼리 문제를 해결하고 입을 꾹 다문 채 환하게 웃으며 버스에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엔 가시지 않은 놀람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휴게소나 지하철역 같은 곳에 분명히 안심 벨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볼 일을 보면서도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얼른 벨을 누르면 되는 참 안전한 나라구나!’

하며 마음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휴게소에는 그것이 없었다.

우리는 한동안 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한밤중에 혼자 이런 일이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까? 무작정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 지금도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갑자기 힘을 주다가 쓰러질 수도 있고, 지병으로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그동안 무심히 바라봤던 안심 벨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그런 장치를 설치해 놓은 공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나라는 복지 문화가 많이 발달했구나!’ 하며 안심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지하철역, 고속도로 휴게소에 비상벨이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꼭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설 연휴, 영화 보고 오는 길에 들를 필요도 없는데 화장실에 일부러 들렀다.

잔뜩 기대했는데, 지하철 1호선 ○○역 화장실에는 확실히 비상벨이 없었다.


다음날 파주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 갔을 때 들렀던 <파주 출판도시 자유로 휴게소> 화장실에 비치된 비상벨을 보고 ‘바로 이거야!’ 하며 들뜬 마음에 얼른 사진을 찍었다.



파주 출판도시 자유로 휴게소.jpg

(파주 출판도시 자유로 휴게소 화장실)



파주출판도시 자유로 휴게소.jpg

(광명시 7호선 지하철 철산역 화장실)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리 동네 지하철역 화장실에도 일부러 들렀다.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림과 글씨가 선명한 비상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즉석에서 손만 대면 비상 통화까지 할 수 있는 장치였다. 아하, 내가 자주 보며 안심했던 곳이

우리 동네 지하철역 화장실이었구나!


서울 교통공사에서 설치했다는 표시도 보였다. 무척 마음이 놓였다.

긴급 상황이 일어났을 땐 ‘골든타임’이 있다. 그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이용자가 많은 곳에

이런 장치를 구비해 놓은 것으로 안다.


이제부턴 화장실에 들르면 먼저 비상벨부터 찾을 것 같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한 작은 장치 하나가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비상벨은 단지 벽에 붙은 기계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와 연결하는 통로다.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이라면 그 통로가 당연히 열려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날처럼 문 앞에서 벌벌 떨며 막연히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더는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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