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에게 기억에 남을 ‘가장 큰 세뱃돈’을 주었습니다

by 진향림 최윤순


점심을 서둘러 먹고 장기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손주들! 몇 날 며칠 준비한 손주들의 장기 자랑이 모두 끝났다. 할아버지가 준비한 세뱃돈과 축하금도 덕담과 함께 전달되었다.


나는 이번에 손주들에게 특별 지원금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할머니도 설날엔 작은 마음이지만 세뱃돈을 준비했고, 그냥 한 장씩 주곤 했다. 이번만큼은 명목을 붙여서 주고 싶었다. 이름 하여 독서 특별 지원금!

“얘들아, 할머니가 이번 설에 너희한테 독서 지원금을 준비했어. 너희는 이 돈을 받아도 되고 받지 않을 자유가 있어.” 아이들은 고양이처럼 귀를 바짝 세우고 할머니 말에 집중한다. ‘뭐지? 또 할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이렇게 집중시키지.’ “작년, 2025년, 한 해 동안 너희가 일주일에 대충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생각해 보고 대답해. 2026년도에는 그보다 조금 더 읽을 수 있다는 마음만 있으면 받아도 돼.”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큰손자한테 먼저 물었다.

“작년에 일주일에 몇 권 읽었을까?”

“세 권이요.”

“올해는 몇 권 읽을 거야?”

“일곱 권이요.”

“야아…, 갑자기 너무 많이 읽는다고, 목표를 세우면 곤란하지. 목표치를 낮춰도 돼. 실천 가능성이 있는 약속을 하는 게 좋겠어.”

“할머니, 어차피 논술 학원에서 책을 읽어야 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일곱 권 읽는 것 가능해요.”

“그래, 약속했다.”


만화책을 자주 읽는 둘째에게 물었다.

“너는 몇 권 읽었어? 아니 올해는 몇 권 읽고 싶어.”

“두 권 읽었는데, 세 권 읽을게요.” “그래, 목표 한번 시원시원하니 좋다.”

사실 초등 2 학년이 되는 셋째 손주는 요즘 피아노와 발레에 관심이 쏠려있다. 책과 조금 멀어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이 이번에 독서 지원금을 생각한 이유다.


그런데 그녀는 양심 고백을 한다. 자기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단다.

“그러면 2026년도에는 몇 권이 목표야?”

“일주일에 네 권 읽을게요.”

“무리하게 계획을 세워놓고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 목표치를 낮추고 실천하는 것이 좋은데. 두 권도 되고 한 권 읽는다고 약속해도 괜찮아.”

그래도 자기는 네 권을 읽겠단다. 셋째는 한 번 약속하면 꼭 지키는 범생이 기질이 있어 기대가 더 크다.

그리고 넷째, 일곱 살짜리가 말했다.

“저는 세 권을 읽었는데요. 여섯 권 읽고 싶어요.”

“그렇게 많이 약속 안 해도 되는데…. 네 권이면 되지 않을까?”

“아니에요. 할머니, 저 일곱 권도 읽을 수 있어요.”

여섯 살 막내도 처음엔 다섯 권 읽는다고 약속하더니 한참 놀다가 목표치를 낮춘다.





“얘들아, 그런데 패드로 읽는 책이나 숙제로 하는 영어 원서는 제외야. 짧은 책도 괜찮아. 할머니는 그냥 종이로 된 책을 읽기 바란다. 그냥 자기 양심에 따라 읽었다고 생각하면 돼.”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목표를 또박또박 말한 다음, 내 손에서 지폐 한 장씩을 받아갔다. 손주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른다. 진짜 실천하는 손주도 있고, 까마득히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돈 받은 기억은 하겠지.


사실 이번 나의 독서 지원금은 광명시 평생 학습 지원금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이 지원금은 '1967년 1월 1일 ~ 1976년 12월 31일 출생한 50대 광명시민(광명시 1년 이상 계속 거주 또는 거주기간 합산 5년 이상)'을 대상으로, 1인당 평생 학습 지원금 포인트 30만 원을 지급한다.

신청 기간은 3월 3일부터 13일까지이고, 2500명을 추첨 지급하는데, 발표는 4월 9일로 예정되어 있다. 소득 성별 배경과 관계없이 배움의 기회를 보장하는 '보편적 교육복지' 정책이라고 한다. 포인트로 책을 사거나, 지역 내 평생 교육기관에서 문화예술 강좌, 자격증, 직업교육 수강료로 사용하고, 그 해에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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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지식의 보고, 창의력의 지지대, 창작의 자료’가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두 딸에게 실천하지 못했다. 애들한테 그런 기회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다섯 손주한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게 취지였다. 사실 큰딸과 큰손자는 그날 아침에도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토론했고 도서관에 가라고 채근했지만, 손자는 귀찮다고 안 갔다고 한다. 엄마한테 한참 핀잔을 들었는데, 때마침 할머니가 독서 지원금을 준다는 말에 둘은 눈을 홉뜨고 찡긋 웃었단다.


모든 창작은 모방으로부터 시작되고, 작가들도 책을 읽으면서 사유하고 좋은 글귀나 문장을 독서 노트에 끊임없이 필사한다. 요즘 독서의 중요성을 알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눈이 힘들고 빨리 피로해서 책을 읽는 데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읽어도 들어오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 빨라 머릿속에 남는 것이 적다. 경험자로서 인생 선배로서 우리 손주들에게도 어렸을 때 독서가 얼마나 가치 있는 활동이고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얘들아. 이 돈으론 책을 사는 데 사용하지 않아도 돼. 책은 곳곳에 있는 학교 또는 지역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이것은 간식으로 아이스크림 쫀드기 쥐포를 사 먹어도 된다. 단지 할머니가 ‘왜 설날 아침에 독서 지원금을 주었을까?’ 하는 마음을 새기며, 책을 읽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서울에 사는 작은딸은 깜짝 놀라며 “광명시에 그런 정책도 있어요? 서울에도 있나? 들어본 적 없는데. 광명시로 이사 올까 보다.” 조카들은 자기 동네로 이사 오라며 이모 팔을 붙들고 난리를 친다. 큰딸 손주들은 묻는다. “그럼, 엄마 아빠도 받는 거야?” “맞아. 엄마 아빠도 만 50세가 되면 광명시에서 평생 학습 지원금 30만 원을 받을 거야. 그렇지만 정책은 언제든 바뀔 수도 있지. 더 좋아질 수도 있고.”



설날 아침, 아이들 눈빛이 반짝였다. ‘배움’이 누군가의 인생을 다시 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표정이랄까. 평생학습 지원금 30만 원이 누군가의 인생 2막을 여는 씨앗이라면, 내가 오늘 건넨 이 작은 지폐 한 장은 우리 손주들의 생각을 깨우는 씨앗이 되기를. 돈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왜 할머니는 설날에 독서 지원금을 주었을까?” 그 질문이 오래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 세대에 살았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이육사의 「광야」, 「청포도」, 피천득의 「인연」,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내가 아는 문학의 전부였다. 독서가 사람의 생각을 키우고, 마음을 넓히고, 결국 삶의 방향을 세운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모든 창작은 읽는 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모방에서 출발해 사유로 깊어지고, 결국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게 된다는 것을.

설날 아침, 나는 손주들에게 돈을 건넨 것이 아니다. 생각의 씨앗 하나를 심어 주었다. 그 씨앗이 당장 싹을 틔우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아이들이 스스로 책장을 펼치는 날, “그때 할머니가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이제 알겠어.” 하고 웃는 날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그들이 받은 가장 큰 세뱃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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