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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Jan 25. 2023

그냥 오빠 & 교회 오빠




 어릴 적 오빠한테 그것도 바로 위 오빠한테 맞아보거나 괴롭힘을 당해서 오빠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여동생들 많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바로 위는 언니고 바로 밑에 남동생이 있어서 그런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내 친구들 몇몇은 오빠한테 맞기도 하고 약 올리며 괴롭힘을 당했지만 힘으로나 날쌘 거나 입담으로 당해낼 수가 없어서 날마다 울며 다녔던 친구가 있었다. 그래도 다른 애들이 동생을 때리기라도 하면 자기 몸 사리지 않고 지켜줬던  친구 오빠가 생각난다.


 큰 손자는 이제 3학년이 되다 보니 비밀이 많아진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패드로 뭔가를 검색 중이다. 할머니가 가까이 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슨 일이냐며 벌떡 일어나서 밀쳐내는 느낌으로 도대체 빌미를 안 준다. 사실 큰 손자가 동생들보다 빨리 하교해서 아무도 집에 없으면 허전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큰 손자 하교 시간에 쫓기며 골프 운동, 라인 댄스, 글쓰기 동아리 활동도

빠듯하게 하고 서둘러 온다. 눈으로만 지켜봐 달라는 큰 딸의 간절한 소원으로 쫓기듯 딸집에 온다. 당연히 큰 손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데 소통하는 걸 꺼린다. 일단 할머니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할머니 생각과 계획에 휘둘리고 자기의 자유로운 시간이 줄어들까 봐 그런 영리한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유치원 다니는 둘째와 어린이집 다니는 셋째는 4시 30분이 되어야 하원을 한다.

손녀는 두 오빠들과 잘 논다. 7살 차이나는 큰 오빠는 막내 여동생에게 한없이 허용적인 교회 오빠다. 막내가 심통 나서 울거나 떼쓰면 거의 아빠 같은 마음으로 안아주고, 보듬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또한 동생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해결해 주고 마음까지 헤아려주려고 노력하는 부드러운 교회 오빠다.


 하루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부딪칠 일이 가장 많은 오빠는 둘째 오빠다.

일단 큰 오빠가 등교하고 둘이 등원 준비하는데 20분 동안 여유가 있다. 그때 둘째 오빠는 블록 놀이도 해주고, 공차기도 해주고,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가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신들린 듯 재밌게 놀아준다. 그런데 둘째 오빠는 유치원 차 타러 나가는 순간에 동생보다 먼저 유모차에 달랑 올라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자기 물건에 애착이 가장 강한 세 살 막내는 울며불며 내 유모차에 손도 대지 말고 타지 말라고 소리치고 난리를 치며 울어 댄다. 두 오빠들 사이에서 자라다보니 막내도 상당히 강하지만 그래도 4살 차이나는 오빠한테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둘째 오빠는 유치원 차 기다리는 10여 분 동안 또 동생을 울린다. 막내도 오빠처럼 유모차에서 내려 풀잎도 따서 관찰해보고, 기어가는 개미도 무자비하게 죽이고, 매미 껍질도 따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둘째 오빠가 자기 유모차에 또 올라탈까 봐 겁이 나서 내리지도 못하고 재밌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듯 보여서 측은하다.


 오늘은 심지어 유모차가 걱정돼서 내리지도 않은 동생인데 오빠는 그 틈에 유모차에 또 달랑 올라타니 나도 유모차가 부서질까 봐 내심 걱정이 되긴 했다. 막내는 오빠한테 유모차에서 내리라고 "안 돼, 안 돼"를 외치며 울어대는데 나는 그 상황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웃었다. 분명 둘째 오빠는 심심해서 동생 유모차에 올라타는 것이고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장면은 극히 일반적인 상황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내는 오빠한테 당하고 결국은 할머니한테 짜증을 내는 연쇄 반응이 일어나니 결국 이 할머니가 힘들다. 이렇게 둘째 오빠는 재밌게 놀아주지만 한없이 괴롭히는 그냥 오빠다. 언젠가 이 오빠도 동생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딸에게 둘째 오빠는 재밌게 놀아주지만 힘들게 하는 그냥 오빠이고, 큰 오빠는 한없니 허용적인 교회 오빠라고 말하니, 딸은 큰 오빠는 질척거리는 교회 오빠라고 해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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