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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Mar 07. 2023

육아에도 임무인수인계가 필요하다.(1)

바깥사돈에게 임무인수인계하기

  대부분 직장인은 년 초에, 교육 공무원은 학기 초에 이동을 한다. 전보 발령이 나면 전임자는 후임자에게 임무인수인계를 한다. 임무인수인계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후임자가 편할 수도 불편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황혼 육아에도 양육자가 바뀌는데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다양하고 세세한 일정이나 특이 사항을 알려주면 도움이 될 듯하다. 작년 큰딸 삼 남매를 돌보면서 손주들과 할머니 사이에 꽤 많은 루틴이 있었다. 이번 2월부터 바깥사돈이 삼 남매 돌봄을 다시 시작했다. 물론 사랑과 정성이 돈독하신 사돈이라 정말 잘하실 거라 믿는다. 하지만 예전에 손주들 보는 것이 무한정 기쁘고 마냥 예뻐하시며 허구한 날 들어 안아주고 계셔서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어느 날 문득 너무 자주 안아주다가 허리가 아프셔서 몸져누우셨고 임무인수인계 없이 나는 무작정 모든 걸 끌어안게 되었다. 그래서 사돈이 한동안 못 오셨던 사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언젠가 직접 만나 소소한 일정을 알려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고민하고 있었다. 바깥사돈이 손주를 돌본다면 대부분 사람들이 왜? 할머니가 안 보시고 할아버지가 손주를 보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묻는다. 할머니는 전문직장인이라서 지금도 일을 하신다.


  며칠 전, 저녁 손주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데 언제 자기 집에 오냐고 삼 남매가 다그친다. 딸이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동안 억눌려왔던 답답한 감정들을 폭발시키듯 약속을 잡았다. 그동안 미루어 왔던 지인들과의 만남, 친구들과 3번의 짧은 여행 등 여러 종류의 약속을 잡아 쏘다니다 보니 손주들을 챙기지 못했다. 조금 뒤통수가 당기는 듯했지만 얽매이지 않으려고 무덤덤하게 대응했다. 작년 삼 남매와 동고동락했고 정도 많이 들었는데~~. 막상 보고 싶다는 손주들 전화에 부지런히 애호박 전, 버섯 전을 부쳐서 갔다. 이제는 더 이상 내 관할이 아니니 불쑥 들이닥친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바깥사돈께 전화를 드렸다. 집안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내가 간다고 하니 온 거실에 널브러져 있던 책을 잽싸게 꽂아놓으신 듯 집안이 깔끔했다. 내가 있을 때보다 더 깨끗하게 치워져 있어서 내심 놀랐다. ‘이렇게 진심을 다해 돌봐주시니 우리 딸이 시아버지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애들한테 생활 태도, 예절 교육시킨다며 핏대를 올리고 그들 스스로 치워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실랑이를 많이 했고 감정소모가 많았었다.


  얼마 후 큰손자는 학원에 가고 난 바깥사돈과 멀뚱멀뚱 있다가 노인 복지회관에서 2000원짜리 식사할 수 있는데 아시냐? 며 ice breaking(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것)을 했다. 나도 회원 등록해서 먹어봤는데 꽤 맛도 영양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광명으로 이사 오실 예정이어서 이사 오시면 이용하셔도 좋을 것이라는 정보를 주었다. 또한 노인복지회관에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광명시민만 해당된다며 나에게 카톡으로 온 프로그램도 보여줬다. 손주 돌보려면 사돈 건강도 신경 써야 하니 운동은 어떻게 하시냐고 걱정 어린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내 천을 걷고 거기에 있는 운동기구로 운동한다며 성실하게 대답해 주셔서 고마웠다.


  갑자기 알람소리가 났다. 사돈이 손녀 어린이집에 가신다기에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작년 잦은 감기로 손주들이 여러 번 입, 퇴원을 해서 힘들었던 것을 지켜봤고 간병도 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사돈은 걷기 좋아하는 손녀, 찬바람 쐬면 안 된다며 유모차를 이용하고 계셨다. 어린이집에서 손녀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덥석 안아서 들어 올린다. 당연히 손녀는 그런 할아버지를 좋아할 수밖에~~. 난 화들짝 놀라며 등을 살짝 스치며 "사돈 그러시다 다시 허리 아프시면 절대 안 돼요."  바깥사돈은 겸연쩍어하시며 엷은 미소를 지으셨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하원 준비가 끝나니 또 자동적으로 손녀를 안아서 유모차를 태우려고 하신다. "사돈이 몸 사리며 아프지 않으셔야 오랫동안 보실 수 있어요. 그러려면 유모차 바퀴가 굴러가지 않도록 고정만 시켜주면 된다. 바퀴를 다리로 걸어서 유모차를 고정시키고 손녀가 직접 올라타도록 안정감 있게 손잡아주고 엉덩이만 살짝 밀어주면 된다."며 시범을 보여줬다. 집에 와서 내릴 때도 절대로 안아서 내리지 마시고 바퀴가 미끄러져 굴러가지 않게 고정만 잘하시고 손만 잡아주면 잘 내린다고 또 시범을 보여주었다. 사돈! 3살짜리 둘째 딸 손자도 혼자서 유모차를 잘 탄다고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둘째 손자 하원시간에 맞춰 나가는데 다시 한번 유모차 태우는 걸 해보시게 했다. 익숙하지 않고 짧은 시간에 눈으로 직접 보고 자꾸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원 길에 손주들이 작은 도서관에서 뭐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어 두 손주를 데리고 작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순간 아이들이 도서관에 간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손주들이 직접 고른 책 읽어주고 두 권 대출해서 왔다. 처음부터 도서관 이용하는 것도 말로만 하는 것보다 실제 체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해 보였다. 다시 한번 더 유모차 태우는 걸 시범 보이려 했는데 손녀는 할머니 손잡고 걸어가겠단다. 말씀이 많지 않으신 사돈어른 극성맞은 안사돈 때문에 다른 때보다 엄청 피곤하셨을 것이다. 사돈지간에 미묘한 감정이 있을 수 있어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발 안사돈께 오늘 일어난 일을 자초지종 아무 말씀도 안 하셨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엇이든 상황을 직접 보는 것보다 말로 전해 들을 때는 나라도 극성맞은 안사돈이 정말 싫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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