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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한씨 Jan 22. 2024

24년 1월 생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23년 12월 말에 태어난 나의 딸

2024년 1월 생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2024년 1월 생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배냇짓도 잘하는, 아직 태어난 지 20여 일 남짓 된 나의 딸.

나보다는 남편을 많이 닮은 것같아서 처음에는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라고 믿기지가 않았다.

오죽하면 엄마가 "내가 너 신생아 때를 봤잖니. 확실히 너를 베이스로 나온 아이는 아닌 것 같다." 라고 말했을까.

의학적으로 만 35살 이상의 여성의 출산을 노산이라고 한다던데, 나는 노산의 기준의 시작점에 내 아이를 낳았다. 그만큼 귀하게 생각한 인연이었던 나의 딸.


배란일 테스트기 등을 이용해 계획적으로 임신을 준비했을 때에는 생기지 않았었는데,

선물처럼 아이가 찾아온 거 보면 아이는 정말 삼신 할머니가 점지해주는 게 맞나보다.





2023년 12월 말에 태어나다.



초음파 상으로는 3.3kg 정도로 추정되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작은 3.08kg로 태어났다.

총 길이는 50cm. 초음파로 볼 때에는 저렇게 작은 아이인 지 인지를 못했는데, 실제로 만나본 아기는 너무나도 작았다.


아이는 고집이 쎈 아이여서 그런지, 내 뱃 속에 있을 때부터 한 자세를 고집했다.

거의 20주차부터 머리위치가 변하지 않았던 아이.

그렇게 막달까지 단 한번도 머리 위치 변경 없이 역아인 상태였다.


나는 요가를 거의 매일같이 하면서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시작부터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만들어 가는 아이인 듯했다.

내가 원할 때 찾아오지 않고 어느날 찾아왔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분만 방식을 정해주지도 않았다. 

내가 계획하고 노력했던 것들에 대해 'Plan B' 세워야 한다고 말하듯이.

임신을 원할 때 찾아오지 않고 어느날 찾아왔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분만 방식을 정해주지도 않았다.

내심 이런 부분이 아이 관련해서 내 뜻대로 되는 게 없구나 생각도 되었지만.

시작점부터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아이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제왕 절개를 해야한다면, 좋은 날짜를 받아 기왕이면 2023년 12월 말 생보다는 2024년 1월 생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돈을 들여 출산 택일을 했으며 사주 카페 등에서 좋은 날짜인지 교차로 크로스 체크를 하기도 했다.

다니던 분만 병원에서 내가 낳으려고 한 시간에 수술을 잡을 수 없다고 강력하게 말해서, 35주 차에 회사 동료에게 추천받은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낳고 싶었던 날과 시가 있었다.



하지만 내 딸은 자기의 인생을 개척하는 아이이다.

2023년 12월 말이 되어갈수록 느꼈던 가진통을 참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초음파 상으로 쟀던 예정일은 2024년 1월 5일이었고, 초산이었기에 충분히 1월 생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새해가 되기 며칠 전 피가 비춰서 다니던 분만병원에 방문하자마자 나는 그대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담당 의사는 1월까지 버티기 어려울 거라고 하였고, 역아만 아니었어도 그냥 집으로 보내줬을 거라고 하였다.

나는 입원 당일이냐 그 다음날이냐 수술날짜를 가늠해 정해야만 했다.

택일을 하기 위해 쏟았던 돈과 에너지가 무색하게, 오롯이 나와 아이가 호흡을 맞춰 정해야만 했던,

우리 아이의 탄생일.


2023년 12월 27일.


(왼) 내가 낳고 싶었던 아이의 생년월일 / (우) 실제로 태어난 생년월일


내 딸은 엄마의 계획대로 살기보다는 자기의 인생의 가능성을 품고 개척하는 아이이다.

내가 택일로 만들어주려고 했던 사주 대신,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나는 한 분야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운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고 싶었으나, 아이는 재물을 보는 눈과 욕심을 택했다.


같은 검정색의 물의 글자더라도 내가 상징하는 글자의 키워드가 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나는 내가 리스펙하는 지인을 상징하는 글자처럼 초록색 싱그러운 풀을 상징하는 아이를 상상했지만, 

아이는 그 풀들을 담아내는 정원의 터가 되기를 택하였다.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늘 가능성은 계획을 뛰어 넘는다.

어떤 일에 대한 결과는 내가 마주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가능성들로만 남아있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었을 가능성도, 살았을 가능성도 50%의 확률로 존재하듯이.

나는 가능성이 있는 길들을 볼 때마다 아직 A냐, B냐 결정되지 않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슬퍼하기 보다는 'Plan B'의 다른 길의 걷는 즐거움을 가져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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