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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Oct 16. 2023

제주의 감귤이 실바람처럼 퍼지다

- 산뜻하고도 달콤한 감귤을 담다, '제주탐라주'를 음주해보았다.

늘 우리에게 사랑받는 과일이 하나 있다. 바로 귤, 따뜻한 곳에 들어가서 간단히 까먹을 수 있는 것이 맛도 좋으니, 이런 과일을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이며, 철이 되면 한 두 박스씩 쟁여 놓고 틈이 날 때마다 먹는 것을 즐거운 낙으로 삼고 있다.


그럼, 이렇게 맛있는 감귤을 이용한 감귤증류주는 과연 어떤 맛을 보여줄까. 새로운 술을 맛보기 위해 다양한 곳을 방문하던 중 '제주탐라주'라는 상당히 생소한 술이 나의 눈에 떡하니 들어왔다. 이름만 보아도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감귤까지 이용했다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제주의 감귤을 그대로 담았다고 하는 이 술의 향미는 어떨지,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산뜻하고도 달콤한 감귤을 담다, 제주탐라주

화려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그리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제주도의 바다를 표현한 듯한 전면부 위에 '제주탐라주'라는 술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인 건지 그 이외에 특별한 사족들은 없는 듯하다.


병 모양 자체는 단순한 편이고, 안으로 비치는 모습 역시 보통의 증류주와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든 빛깔이다. 감귤 같은 몇몇 그림이 추가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나, 'Simple is Best'라는 말답게 확실히 깔끔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제주탐라주'는 '제주왕지케'에서 맑고 깨끗한 '어승생' 물에 감귤을 증류해 탄생한 술로서, 달콤하고도 산뜻한 향을 탱글 하게 담아낸 증류주이다.


참숯으로 여과해 불순물과 이취를 잡아냈으며, 이렇게 부드러운 목 넘김을 가진 청정 제주 그 자체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 술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20도, 가격은 9,000원이다. 사실 비교적 단순한 병의 모습 때문인지 일단 9,000원이라는 값이 비싸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 약간 더 저렴한 혼디주, 귤로만, 니모메 등 제주의 주류들은 병부터 감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기에 비교적 밋밋한 '제주탐라주'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번엔 그 말이 틀리길 바라는 중이다.

잔에 따른 술은 여타 증류주와 같이 투명하고 매끄럽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번번이 등장하는 소주와 같은 모습이다.


코를 가져다 대니 싱그러운 감귤향이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일반적인 소주보다 약간 높은 도수를 지니고 있지만 알코올의 역함을 잘 느껴지지 않고, 전반적으로 향 자체가 굉장히 연한 편이라 코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오롯이 향을 만끽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감귤증류주'라는 단어를 달고 있기에 어느 정도 진한 향을 기대했었는데, 너무 살금살금 퍼져 나오는 모습이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부드러운 술이 혀를 안아준다. 질감 자체는 소주와 굉장히 유사한 상태에서 미세한 단 맛과 알코올 특유의 맛이 입 안을 채우며, 감귤과 알코올이 반반 정도 섞인 향이 곧바로 코에 들어온다.

매끄러운 주감을 가지고 있는 술이다. 혀에서부터 목 넘김까지의 과정이 가볍게 흘러가고, 20도의 도수를 가졌음에도 알코올의 역함이나 독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가뿐한 바디감을 가진 채 목구멍을 넘어간 이후에는 알코올과 감귤향을 약간 남기고 사라지며, 산뜻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는 것이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상당히 심심한 편이다. 향과 같이 20도의 도수가 가진 알코올의 특징이 잘 느껴지지 않은 채 순하게 들어오는 것이 장점이지만, 알코올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맛 자체가 약한 편이기에 감귤의 풍미를 그대로 느끼기가 어렵다.

소주와 비슷한 맛의 방향을 가지고 있는 술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다만 일반적인 소주보다 매끄럽고 부담스럽지 않으며, 알코올의 이취는 거의 없고, 산뜻한 과실향으로 마무리된다. 아쉬운 것은 '감귤증류주'에 소주의 느낌을 더한 것이 아닌, 소주에 '감귤'을 담가 놓은 듯한 술이라는 것. 끝에서 퍼지는 향은 매력적이지만, 술 자체의 향미가 부족하기에 간신히 느끼는 것에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조금만 더 진하게 향이 흘러나왔다면 훨씬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


디자인에 대한 말은 약간 바꿔야겠다. 위에서 단순하다고 말했었는데, 술 병 안쪽에 해녀가 해루질을 하는 듯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술이 다 차있는 상태에서 보면 반짝거리는 디자인이 바다를 연상시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겉모습에선 아쉬웠지만, 이런 것을 숨겨놨다면 그 단순함이 이해가 간다.


혹여나 도수가 부담이 된다면 토닉워터를 섞어 하이볼로 즐기길 바란다. 보통의 탄산수보다 단 맛이 있는 토닉을 섞어서 마시는 것이 연한 '제주탐라주'를 즐기기엔 더 나아 보인다.


안주는 소주 안주라면 어떤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회나 매운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안주가 있다면 대부분 괜찮은 조화를 선사할 것이다. 나는 광어회에 매운탕을 추천한다.


'제주탐라주', 아쉬움이 묻어나는 증류주였다. 술의 본연의 느낌을 전부 즐기기엔 옅은 풍미가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감귤향이 짙지 않은 상태에서 알코올이 찾아오니, 알코올이 그리 진하지 않음에도 돋보일 수 있는 요소가 있었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10%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디서 구매할지 잘 고려한 후 선택하길 바란다. 그리 큰 격차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모이면 크다.


제주의 감귤을 담은 '제주탐라주'의 주간평가는 2.9 / 5.0이다. 제주의 바람은 실바람에서 멈추었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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