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 아래로 시원한 강물이 흐른다, 삭 블랙50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들어가 일직선을 이루는 때를 '삭'이라고 부른다. 이 때는 달이 빛을 반사하지 않아 보이지 않으며, 어두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오늘은 이 '삭'을 술의 이름에 그대로 담은 작품이 하나 있어 가지고 오게 되었다. '삭 블랙50', 상당히 높은 도수와 함께 보통 '삭 50'으로 조금 더 알려져 있는 이 술은 어떤 풍미를 가져다 줄지, 기대와 함께 음주해보도록 하자.
달 아래로 시원한 강물이 흐른다, 삭 블랙50
일단 겉으로 보이는 외관은 비교적 단순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용량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병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블랙'이라는 프리미엄에 맞춘듯 색을 사용한 것은 오직 검정뿐이다. 병의 끝 부분은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고, 전면부엔 '삭'이라는 술의 이름이 묵색으로 크게 나타나 술의 캐릭터성을 돋보이도록 만든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긴 하지만, 이 무던함이 도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탓에 비슷한 가격대의 프리미엄 증류주들에 비하면 디자인적으로 조금 아쉽지 않나 싶다.
2024 대한민국 증류주 품평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삭 블랙50'은 '공사사양조'에서 100% 세종시 쌀로 조청을 일정 기간 발효하여 만든 발효 원주를 위스키 단식 증류기로 두 번 증류해 빚어낸 고급 증류주이다.
긴 과정을 통해 탄생한 술은 깊고 깔끔한 맛을 가져다 주며,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코 끝을 스치는 향과 한 입 가득 미각을 깨우는 환상적인 풍미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건 조금 TMI긴 한데, 공사사양조의 이름은 세종시의 지역 번호인 044에서 유래되었다.
작품의 용량은 370ML, 도수는 50도, 가격은 50,000원. 혼자 마셔도 좋고, 둘이 마셔도 나쁘지 않은 양에 한 입 머금는 순간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알콜 함유량, 엔트리급 위스키 정도의 금액을 가졌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정도 부담이 느껴질 수 있는 수준이다.
잔에 따른 술은 굉장히 맑은 자태를 뽐낸다. 이물감 하나 없는 깨끗한 표면이 돋보이며, 찰랑이는 것이 암반에서 막 길러낸 청정수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혀 흠잡을 것 없는 얼굴이다.
코를 가져다 대니 달콤한 향이 잔을 타고 흘러나온다. 50도라고 하여 강한 스파이스감을 예상했는데, 가장 위에 맴도는 것은 달달한 배의 향이 우선이었다. 배 과육의 시원한 단내와 약간의 철분기, 그 아래로 곡식의 고소함과 알콜이 다가오며, 위스키보다 높은 알콜 함유량이 무색할만큼 역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배밭 아래로 흐르는 차가운 강물이 떠오르는 내음으로, 코를 살짝 자극시키는 알싸함 역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고소한 감미가 부드럽게 혀를 안아준다. 배와 꿀, 조청이 가장 먼저 입을 채워가고, 곧바로 구수함과 함께 소금기, 철분, 알콜의 따뜻한 기운이 퍼지며 목 아래를 더듬는다. 조청을 이용해서 그런지 단 맛이 잘 만든 타 증류식 소주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매를 지니고 있다. 독특함 보다는 특별함에 가까운 향미로, 꿀보다 조금 더 강한 조청의 감미에서 곡식의 고소함으로 이어지는 방향 역시 꽤나 마음에 들었다. 뒤이어 찾아오는 철분끼와 적당한 함미는 코와 목 사이를 맴도는 작열감을 동반하고 있는데, 팍 쏘는 느낌 보단 촛불이 그을리는듯한 풍미를 선사한다.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간 후에는 앞서 말한 촛불의 일렁임이 코와 입에 꽤 오래 지속된다. 이 때 혀에는 단 맛과 알콜, 소금, 철분기를 코에는 구수한 알콜이 남아있다가 사라진다. 생각보다 단 맛이 오래 유지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여운이 꽤 긴 술이다 보니 눈을 감고 서서히 흩어지는 향미를 감상하기에도 좋아보인다.
시원한 향과 감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증류주에서 느껴 본 감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캐릭터까지 뽐내는 술이었다.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역함은 찾아보기 힘들며, 조청의 단 맛은 지나치지 않고 은은하게 혀에 남아 존재감을 드러낸다. 코와 입을 동시에 즐겁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니, 고도수의 증류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음주해보길 바란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유과, 흰살 생선 회 등을 추천한다. 유과 한 입과 '삭 블랙50' 한 잔은 생각보다 좋은 궁합을 보이며 입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삭 블랙50', 향과 맛의 조화가 만족스러웠다. 조청의 특별함도 계속해서 엿보이고, 시원한 매력을 지닌 술이었다고 여겨진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10% 정도 상이하다. 5000원 정도의 차이이니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에서 구매하자.
세종에서 태어난 '삭 블랙50'의 주간 평가는 4.2/5.0 이다. 늦은 밤 달 아래로 흐르는 시원한 강을 음미하자.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