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었지, 오늘만 취해보자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여러가지 이유로 마음껏 취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타의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내가 취하고 싶어서 취하는 것 말이다.
상사한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어도,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 처럼 안풀려도,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단순하게 넘기고 싶을때도 우리는 취하지 못한다. 이젠 그러기 위해서 생각해야할것이 많아졌으니까.
어릴 땐 이러지 않았다. 내가 취하는 것에 있어서 그렇게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좋으면 좋은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가지 각색의 이유를 들이대며 술 잔을 기울였다. 그 때는 그래도 되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나뿐이었고, 가장 우선인것 역시 나의 감정이었으니.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술 한잔을 마시더라도 이제는 나만을 생각해선 안된다. 내일을 생각해야하며, 또 나의 주위를 생각해야한다. 내가 마시는 술 한 잔, 혹은 만취했을때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우선시 해야 하는 것이다. 취하고 싶은 것은 나를 위해서 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내가 느껴야할 감정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나이가 들수록 취하고 싶어도 취하지 못한다는 말이 굉장히 머리에 와닿는다. 물론 상사와의 술자리나 회식이라면 오히려 그들도 마음대로 취하는 것을 바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이 때의 술자리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이니까.
내가 말하는 취한다라는 뜻은 내 감정을 위해서, 내가 취하고 싶은 곳에서 나의 기분과 마음을 토해놓으며 당당해지는것을 말한다. 그 술자리가 끝나고 술에서 깨고 나면 '아, 만족스럽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당분간 술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최근에 정말 자신이 원하는 술자리에서 나의 기분을 마음껏 털어놓으며 취한것이 언제인지. 살아온 환경과 사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시간이 줄어든다는것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위해 술자리에 나가야 하며, 친하지 않은 친구와의 관계를 위해서 술자리를 나가야하고, 허례허식을 지키기 위해서 술자리를 나가야한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주체가 다르다.
나의 직장생활을 위해서 술자리를 나가며, 나의 체면을 위해서 술자리를 나가야하고, 남들에게 보이는 나를 위해서 술자리를 나간다. 순수한 내가 아닌, 나의 꾸며진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술자리를 가지는 것이다. 내 기분을 토로하는곳이 아닌, 오히려 쌓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럼 나는 언제 나를 위해서 취할 수 있는걸까. 사실 이 글을 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그 날을 만들기 위해서. '언제든 취해도 괜찮아'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만 취하자'로 끝나고 있는 부제.
내가 이런 제목을 쓴다고 해서 우리가 언제든 취해도 괜찮을리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든 각자의 나를 위해서 취해도 괜찮을리가 없다. 이제 우리는 그래선 안되고, 그래선 안된다는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이 글을 보는 지금, 나를 위한 하루를 정해보도록 하자. 지금부터 3주 이내로 나를 위한 하루를 정하고, 이 날 만큼은 오직 나를 위해서 취해보도록 하자.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나의 기분과, 나의 마음. 그리고 나의 감정을 위해서.
그리고 그 날이 되면 정말 마음껏 취해보자. 너무나도 기분 좋은 장소에서, 혹은 기분 좋은 사람과,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혼자서라도. 가슴에 쌓였던 응어리도 내뿜어 보고, 너무 힘들었던 이야기도 해보고, 기뻤던 감정도 숨기지 않으면서 내 안의 모든걸 쏟아내보자.
비록 그 다음 날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괜찮아. 다시 그 하루를 정하면되니까.
언제든 취해도 괜찮아, 이렇게 말해 주고 싶지만 그러기는 힘드니. 우리, 그 날만은 취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