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며칠 전부터 천정의 전등이 깜박거린다. 빠르게 깜박이길래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치미를 떼듯 전등은 원래의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내가 쳐다보지 않을 때만 불빛이 깜박거리는 것 같다. 낡고 오래된 물건에는 수호하는 정령이 있다고 미로가 말했다. 전등불은 내가 이 집에 오기 이전부터 이 집에 있었으니, 지금쯤이면 정령이 생길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동쪽으로 난 통 창 가득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바닥을 가득 채웠다. 나는 미로의 침대에 누워 햇빛 속을 부유하는 먼지들을 바라본다. 미로가 죽은 이후로 심장 아래에 있는 분노센서가 꺼지지 않는다. 깜박이는 분노센서가 천정을 빨갛게 물들였다. 손으로 센서를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빛이 온 집안으로 붉은 분노를 퍼뜨리는 것만 같다.
“저기야, 내가 말한 도토리나무, 잘 들어 봐 파도 소리가 들려.”
쏴아아~ 쏴아아~
몰려오는 여름바람에 도토리나무 잎새가 놀란 듯이 서로의 몸을 부대낀다. 미로가 말한 대로다. 도토리나무에서 바다의 소리가 난다.
“파도 소리를 내는 도토리나무는 소원을 들어줘, 너무나 오래되어서 정령이 많이 살거든.” 한여름에도 오한이 들어 겨울옷을 껴입고 휠체어 앉아서 나무를 올려다보던 미로는 파르르 떨리는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1. 미로 찾기.
TV 화면에서 처음 본 엄마의 얼굴은 생각보다 젊고 생기에 차 보였다. 국제 포럼 BOD에서 프레젠테이션 하고 있는 그녀는 전혀 8명 아이의 엄마로는 보이지 않았다. 미로는 금동 할머니가 잘못 알려주신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TV 속 그녀가 뒤쪽에 있는 관객들에게 돌아설 때마다 그녀의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은 어깨너머로 물결치듯 출렁거렸고, 그녀도 그런 행동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미로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엄마를 원망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미로에 어떤 유전병도 안겨줄 것 같지 않게 생긴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진우가 휴가에서 돌아오면 인터넷으로 엄마의 얼굴을 찾아 보여줄 생각을 하니 말려 있던 어깨가 펴지는 것만 같았다. 진우는 늘 자신의 엄마가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과시했기 때문에 미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엄마가 있는 진우가 내심 부러웠다. 진우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한 달째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다음 주에는 돌아온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으니 틀림없이 돌아올 거다. 진우가 없으니, 학교에서 미로는 다시 중학교 때처럼 외톨이가 되었다.
“엄마 얼굴을 본 소감은?”
“이쁘네”
금동 할머니가 안경 너머로 미로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이 미로는 목발에 묻은 흙을 털고 거실 구석의 휠체어를 스스로 꺼내어 앉으면 말했다.
“생각보다 젊네, 몇 살이야?”
“지금 네가 17살이니까 서른일곱 살이겠네.”
“20살 때 엄마가 된 거야?”
“젊은 생식세포일수록 수정 성공률이 높으니까, 서울대 생물학과 학생이었지.”
“남자들한테 인기도 많았겠네. 그런데 왜 그런 실험에 참여한 거래?”
“아마도……학점 잘 받으려고? 농담이야, 너희들이 태어나고 나서도 3살 때까지는 한 번씩 찾아왔었어. 대학교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발이 끊긴 거지.”
“그럼 나도 엄마가 한 번은 안아 주었겠네.”
금동 할머니는 준비한 주사기를 들고 미로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는 허벅지를 알코올 솜으로 닦아냈다. 미로는 아무런 저항 없이 주사를 맞고는 치마를 들추고 자신의 굳어가는 다리를 내려다봤다.
“한 번 뿐이겠어, 울면 얼러주고 했지. 기저귀도 갈아주고 다 했어.”
미로는 금동 할머니가 자신을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안다. 엄마는 일 년에 한 번씩 배양캡슐 출생에 대한 보고서를 위해 연구소를 방문했었고 신생아실 유리창 밖에서 8명의 아이를 실험체로 보고 갔다는 것을 이미 13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실제 엄마의 모습을 보니 엄마에게 한 번은 안겨 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TV에서 생중계해 주고 있는 국제 포럼의 주제는 바이오리액터의 안정성 관련 보고다. 이제는 드디어 바이오리액터가 백 프로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17년 전에도 백 프로 안정성을 보장했었다면 미로의 다리가 굳어지는 일은 없었겠지, 하며 하릴없어 한숨이 새어 나왔다. 17년 전에는 배양캡슐로 출산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배양캡슐은 그저 난임을 위한 대응책으로 인공수정도 되지 않을 경우에만 사용하던 보조적 생식 술이었다. 배양캡슐, 즉 바이오 리액터로 생산된 생체 연구는 인간 태아에게는 윤리적 문제로 허락되지 않았다. 단지 부분 소실된 장기나 인체일부를 생산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207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이비드 게펜대학 의학과에서 시작된 연구가 시초가 되면서 해당 주법을 적용하여 인간 태아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로의 엄마는 그 실험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수정체는 8명의 태아로 갈라졌고 그중 유일하게 DNA 문제를 일으킨 것은 미로뿐이었다. 미로는 칼슘 부족에서 오는 소인증이 12세에 발병한 이후 15세에 파킨슨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8명의 실험아이를 돌보던 메디아크 연구동 수간호사, 금동할머니는 7명의 아이가 16세에 기숙사 학교로 독립한 이후에 미로만을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고성으로 내려왔다. 연구동에 미로를 더 두었다가는 미로가 또다시 유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실험체로 이용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죽어가는 미로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대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2. 기쁨과 분노.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다 말해 봐”
“삼 일간 수염을 안 깎은 김 팀장 얼굴이 보이고요, 눈 밑이 퀭한 것이 수면 부족인 듯합니다.”
“그래, 이제 인공안구는 이상이 없네, 잘 보이는 가보네, 내 수면 부족의 원인은 네 인공안구야, 왜 항상 니 안구만 고장이 날까? 너 안구 속에 자꾸 뭐 집어넣지?”
“… 아뇨,”
희노는 김 팀장의 말에 순간 당황해서 분노센서에 노란 불을 켤 뻔했다. 김 팀장은 가끔 CCTV처럼 말한다. 어디선가 희노를 보고 있는 걸까? 희노는 분노센서에 불을 켜지 않기 위해 늘 하던 대로 숫자를 1부터 세기 시작한다. 희노는 인간형 헬퍼봇이다, 희노의 주근무지는 병원,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요즘 희노가 돌보고 있는 환자는 126세의 할머니다. 고령이면 으레 보이는 알츠하이머 증상은 없으시지만, 문제는 늘 헐퍼봇이 할 수 없는 걸 희노에게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아침 회진을 마치고 대화상대를 해드리려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는데 할머니께서 대뜸 “희노야, 울어봐,”라고 하신다. 희노는 “할머니, 희노는 못 울어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내가 곧 죽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너는 슬퍼질 테니 그때를 위해 지금 우는 연습을 하자” 하시고는 테이블 위에 물병을 가지고 와서는 희노의 눈에 물을 부어버렸다. 희노는 얼굴에 물을 뒤집어쓴 채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냥 “엉엉엉” 소리를 내어 드렸다. 그 소리는 사람이 우는 소리라기보다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 가까웠지만 할머니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셨다. 가끔은 할머니가 버겁지만, 진료용 모니터에 할머니의 남은 수명이 7개월이라고 뜨는 것을 보고 그냥 웃어드린다. 할머니가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니 희노의 분노센서에 주황 불이 들어온다. 희노는 1부터 숫자를 다시 세기 시작한다. 희노는 감정 출력을 기쁨과 분노 두 가지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로봇이다. 모든 감정을 느끼도록 프로그램은 되어 있지만 출력할 수 있는 값은 기쁨과 분노 둘뿐이다. 이제까지 기쁨 센서에 불이 들어온 적은 없어서 기쁨이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지만, 분노 센서는 시도 때도 없이 불이 들어온다. 조금 화가 나면 노란 불, 조금 더 화가 나면 주황 불, 제일 화가 나면 빨간 불이 들어온다고 매뉴얼에 쓰여 있지만 아직 빨간 불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어떤 감정인지는 몰라도 출력값은 늘 분노센서라서 어떤 환자들은 희노를 분노봇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르셨어요? 김 팀장님”
“희노, 126세 순심할머니 담당을 비애96으로 배정했어,”
“왜요? 할머니 이제 7개월 남으셨는데 새로 바뀌면 적응하시기 힘드실 텐데요”
“비애96은 눈물 기능이 있거든. 고생했어. 네가 새로 맡을 환자는 내일 진료차트가 모니터에 뜰 거야. 가서 충전하고 쉬어”
김 팀장은 분명 CCTV기능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도 혹시 로봇은 아닐까? 하고 희노는 생각했다.
헬퍼봇 전용 충전소에 들어가 충전을 시작한 희노는 순심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물병을 챙겨서 병실을 방문하리라 다짐하면서 눈을 감았다.
메디아크 병원은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가로세로 10킬로미터에 정 사각형 모양의 정원은 가운데에 인공 수로를 파서 그 주위로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벚꽃나무 등 사계절 푸른 숲을 조성해 놓았다. 인공수로 옆으로는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 휠체어에 탄 채로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환자뿐 아니라 새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서 희노는 아침마다 새소리에 눈을 뜬다.
충전소를 나와서 진료용 모니터를 켜니 새로운 환자의 차트가 입력되어 있다.
이름: 미로, 나이:17세, 남은 수명: 4개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