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코드.
“삐-, 삼천 원입니다”
편의점 캐셔 로봇이 계산하는 동안 미로는 그의 손에 달린 바코드 리더기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버릇처럼 옆구리 뒤쪽으로 손을 가져다 대고는 왼손으로 목발을 옮겨 짚었다.
“기다리라니까 왜 혼자 왔어.”
편의점 안으로 뛰어 들어온 진우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진우는 미국에 갔다 온 이유를 여전히 말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미로가 삐진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채 한다.
“나도 네 일에 상관 안 할 테니까 너도 상관 마”
고성의 고등학교로 옮긴 후에도 미로는 배양 캡슐로 태어난 아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다. 미로는 부모님이 없었고 매디아크 연구소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었으니 아이들의 차별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미로의 편이 되어 주는 진우의 행동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몇몇 짓궂은 아이들은 미로를 ‘바코드’라는 불렀고 그 누구도 나서서 막아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캡슐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몽고반점 대신 옆구리 뒤쪽에 해당 정보를 새겨서 출생한다. 그 모양이 바코드처럼 생겨서 바코드는 배양 캡슐 태생들의 공통된 별명이기도 했다. 미로는 목발 전원을 켜고 진우를 뒤로한 채 편의점을 나왔다.
지잉- 지잉-
드론들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이번 주부터 집중호우에 주의하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드론들이 많아진 거라 진우가 말했지만, 미로가 보기에는 인구조사 드론들도 끼어 있는 것 같았다. 인구조사 드론들이 배양 캡슐 태생들의 바코드를 읽어가는 것은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해당 연구소에서 지정된 구역에 띄우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특히 요즘 들어 배양 캡슐 불법 태아 복제를 하는 지하조직들 이야기가 뉴스에서 자주 나오면서 인구조사 드론의 출몰이 더 잦아진 것 같았다. 미로가 습관처럼 옆구리 뒤쪽을 가리려고 목발을 놓쳤을 때 진우가 목발을 주워 주며 미로에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사실은 나… 바코드 제거 수술했어.”
미로는 들고 있던 목발도 마저 놓쳤다.
“뭐?”
“너한테 말 안 하고 간 건 미안해. 근데 엄마가 내가 인구조사 드론에 찍힌 메시지를 받고 수술하자고 하더라고…”
거짓말이다. 진우의 눈빛이 흔들리고, 미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미로는 알 수 있었다. 진우가 드론에 찍힌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엄마가 아니라 진우가 원해서 수술한 것이 틀림없다. 수술비용이 엄청나다고 한숨 쉬며 얘기한 적도 있었다. 미로는 폭풍 같은 배신감으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주저앉고 말았다. 진우와 서로의 비밀을 나누어 가진 이후 처음으로 진우가 남처럼 느껴졌다. 진우가 자신도 배양 캡슐 태생이라고 촉촉이 젖은 눈으로 고백했을 때 미로는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혼자가 아니다. 미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이곳에 한 명은 있다는 생각, 그런 그가 이제 혼자서 이 늪에서 빠져나가려고 미로의 손을 놓은 것만 같았다.
주저앉은 미로를 진우가 일으켜 세우고, 목발을 어깨 아래로 밀어 넣고는 꺼진 전원을 다시 켜주었다. 미로는 진우의 귓가에 흐르는 땀방울을 보면서 왠지 알 것도 같았다. 미로도 엄마가 있었다면 제거 수술을 해달라고 졸랐을지도 모른다. 진우처럼 엄마가 있었다면.
진우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미로는 침대에 누워 천장에 가득 찬 뿌연 안개를 바라봤다. 천장을 뿌옇게 흐리던 안개는 천천히 누워 있는 미로에게로 내려앉았다. 미로는 안갯속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안개를 뚫고, 미로의 눈앞에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어디서 많이 본 문양이었다, 할머니 반닫이의 자물쇠 모양이 이렇게 생긴 나뭇잎 모양인데...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미로야,”
미로는 ‘할머니’하고 불렀는데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천장에 떠 있는 나뭇잎을 보고 있는데 눈은 떠지지 않았다. 미로는 가위에 눌린 건가 싶어 입술을 깨물었다. 아프다. 감각이 있다. 꿈이 아니다.
“미로야, 피곤하니? 약 먹고 다시 자자. 어여 일어나”
할머니가 미로를 흔들어 깨운다. 미로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할머니 얼굴 위로 나뭇잎이 여전히 떠 있다. 멍한 표정의 미로에게 약을 챙겨주고는 할머니는 미로의 다리를 살핀다.
“어떻게 걸어왔어? 신발이 다 벗겨져서 마당에 나뒹굴고 있던데.”
“진우가… 부축해 줬어. 진우가.. 할머니.”
미로는 차마 진우가 수술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미로도 어릴 때는 바코드 제거 수술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면역 향상을 위해 투입된 유도체가 지나친 변이를 초래하여 발병하기 전까지는 그저 배양 캡슐 바코드가 부담스러웠던 아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바코드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진우가 아무 말없이 미로와 다른 사람이 되어 온 것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미로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인간 시스템 에러라고 여겼다. 미로에 세포를 제공한 사람만 존재할 뿐 누구에게도 사랑을 기대할 수 없는, 온통 열성인 유전자들만 몰빵 해서 만든 그런 사람.
금동 할머니를 따라 도착한 고성의 집에서 미로는 난생처음으로 언제나 발밑에 도사리고 있던 죽음의 공포가 안도감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찌그러진 창틀 사이로 자유로이 드나드는 바람, 한쪽이 내려앉은 천정의 기울기, 한쪽 다리가 짧은 빨간 플라스틱 의자, 그곳의 모든 것이 그녀를 닮아 있어 이곳이야말로 그녀가 죽어가기 최적에 장소라고 미로는 생각했다. 그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금동 할머니뿐이었다.
일기예보처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속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좁은 지역에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지는 현상이 잦아지고 있었다. 고성은 제4차 도시화 계획지역으로 선정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첨단 도시화는 진행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지역이었다. 그것이 할머니가 미로를 고성으로 데려온 이유이기도 하지만 개발이 덜 된 지역에는 여전히 한 번씩 폭우로 인한 피해가 일어나곤 했다. 할머니는 개발 사무소 옆에 병원이 지어진 이후로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비가 내리기 전에 미로를 보러 집에 왔다가 다시 병원으로 나갈 참이었다.
“할머니, 내일 아침에 가”
“왜 무서워?”
“아니, 그냥, 비가 내리기 시작했잖아.”
“괜찮아 윗집에 개발사무소 한 팀장이 태워 가기로 했어. 넌 집에 꼼짝 말고 있어”
“원래 꼼짝 못 하거든.”
할머니는 문 앞에서 미로를 한번 돌아보며 웃었다. 여전히 할머니 눈앞에 나뭇잎이 붙어 있다. 나뭇잎은 안개처럼 희미한 색이다. 할머니는 눈앞에 있는 나뭇잎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미로는 죽기 전까지 이 순간을 후회했다. 할머니에게 말해 줄 걸. 불어난 물에 휩쓸려 할머니가 미로보다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더라면, 미로가 정령을 본다는 것을 할머니가 알아차리는 것이 싫어서 말을 못 했던 그 순간을 미로는 할머니 장례식 내내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