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노가 만든 아침을 먹기 위해 미로가 몸을 일으켰을 때, 미로는 더 이상 혼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순간 죽음이라는 단어가 현실화되어 집안의 모든 공기를 압도했다.
희노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 앉은 미로는 온 힘을 다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생존을,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아직은 이곳에 존재한다. 아침을 먹고 초록색 스웨터를 찾아 입은 미로는 거울을 들여다봤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거울 속에 서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 마치 3년 전 폐기된 희노42의 모습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울 속에는 두려움과 그리움을 간직한, 볼이 패이고 눈 밑이 까매진 겁먹은 소녀가 있었다. 미로는 그 소녀 위로 겹쳐 보이는 폐기물 상자에 담겨 있던 희노42를 지우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3년 전 희노와 미로가 지하의 처치 준비실까지 내려갔던 건 우연한 사고였지만 그곳을 빠져나오는 일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뇌회로 리셋에 반발하던 희노42의 다리가 폐기물 상자에서 빠져나와 흔들거리고 있었다. 미로는 휠체어에서 떨어져 엉금엉금 기어서 상자까지 다가가 옆 테이블을 짚고 일어났다. 그리고 상자를 덮은 시트를 들췄다. 희노42는 마치 골절 나무 인형처럼 온몸의 뼈들이 어긋난 사람처럼 뒤틀려서 상자 속에 던져져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희노42를 던져서 상자 속에 넣지 않고서는 저런 모양으로 상자에 담길 수는 없었다. 희노42는 인간도 로봇도 아닌 폐기물의 형태였다. 피를 닦고 버린 헝겊 조각이나 바닥의 굽이 떨어져 나간 신발처럼. 옆구리의 실밥이 뜯어져 안쪽을 가득 메운 솜들이 밖으로 삐져나온 인형의 삐뚤어진 형태 같았다. 완벽한 인간의 모양이어서 더욱 기괴하게 느껴졌다.
희노는 희노42를 알고 있었다. 희노에게 폐기물 상자 속 희노42는 거울을 통해 보는 자신의 모습으로 보였다. 희노의 머릿속에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리셋하지 않을 권리 따위는 없는 휴머노이드라면 어째서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느냐고 울분을 터뜨리던 희노42의 모습이 떠올랐다.
희노는 경험하지 않는 감정도 전염되어 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노의 가슴속 어딘지 모를 한 구석에서 리셋에 대한 저항이 깨어났다.
“이건 안돼 “
희노의 외마디 소리는 희노를 향해 기어 와서 입을 막은 미로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때 옆 처치 준비실 문이 열리고 건장한 남자 간호사 두 명이 들어왔다. 두 사람을 피해 바닥을 기어서 테이블 아래로 숨은 둘은 삐져나온 희노42의 다리를 상자 속에 집어넣고 폐기물 상자를 들고나가는 간호사들을 숨죽인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희노의 충격은 미로가 아무리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았다. 희노는 분노의 눈빛으로 김 팀장을 찾아갔고. 김팀장은 희노를 병실 배정에서 제외했다. 미로는 희노의 충전소를 찾아갔지만, 매번 출입 금지에 막혀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미로는 한 번도 자신을 위해서 해 본 적 없는 기도를 시작했다.
“제발 희노가 폐기되지만 않게 도와주세요. 제가 이제까지 욕한 거 다 죄송해요. 제발 희노를 살려 주세요. “
기도는 아무런 효험을 발휘하지 못했다. 평소에 신을 욕한 벌을 이렇게 받는 건가 하는 마음에 미로는 죄책감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희노의 소식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다. 오직 미로만이 희노를 기다렸다. 금동할머니가 고성으로 내려가자며 짐을 싸던 날 밤, 미로는 기다리던 희노의 소식을 들었다.
”뇌회로 리셋한 헬퍼봇은 일 년간 방전 상태를 유지하게 돼. 리셋 후에 바로 충전하면 이전 기억의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우들이 있어서 내려진 규칙이래. 희노가 없어진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
”일 년 후에 만나도 나를 기억 못 하겠네. 희노는.”
“우리가 다시 매디아크로 돌아올 일은 없을 거야. 희노는 잊어야 해”
“한 번만 보고 올게. 할머니. 한 번만 보기만 할게. “
미로는 매디아크 9층의 충전소 안에서 잠든 듯 고요한 희노의 얼굴을 보며 들리지 않는 소리로 입을 뗐다.
‘미안해 희노야.’
미로는 충전소 창에 가만히 이마를 기대어 보았다. 희노의 체온보다는 뜨겁고 미로의 체온보다는 차가운 충전기, 그 속에 잠든 희노. 미로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별이 슬픈 일임을 이해했다.
“저기야, 내가 말한 도토리나무, 잘 들어 봐 파도 소리가 들려.”
쏴아아~ 쏴아아~
몰려오는 여름바람에 도토리나무 잎새가 놀란 듯이 서로의 몸을 부대낀다. 미로가 말한 대로다. 도토리나무에서 바다의 소리가 났다.
“파도 소리를 내는 도토리나무는 소원을 들어줘, 너무나 오래되어서 정령이 많이 살거든.” 한여름에도 오한이 들어 겨울옷을 껴입고 휠체어 앉아서 나무를 올려다보던 미로는 파르르 떨리는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희노가 저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게 해 주세요’
어느새 무릎으로 올라온 흑도마뱀을 향해 혼잣말하듯 미로는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서 행복했던 것만 눈에 담아 갈 거야.”
미로는 허리를 숙여 자신에게 담요를 둘러주는 희노의 진갈색 눈동자를 하염없이 눈에 담았다.
그 눈동자 속에 담긴 자신의 모습이 희노의 기억에 남지 않기를 바라면서 미로는 고개를 돌려 도토리나무를 올려다보며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희노야. 나를 기억하지 마.’
미로는 맘속으로 주문을 외듯 되뇌었다.
미로의 증세는 하루하루 나빠져 갔다. 손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후로는 점점 숨 쉬는 것도 어려워졌다. 가쁜 숨을 쉬면서도 미로는 희노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려 애썼다.
고성에서의 일주일이 지나가던 밤, 아무것도 삼킬 수 없게 된 미로는 할머니가 봉사하던 병원으로 옮겨졌다. 미로는 희노를 위해 익숙한 죽음의 처리 과정 속으로 자신의 주검을 맡겨 놓았다.
희노는 장례식장에 앉아 있었다. 미로의 마지막은 어떤 눈물도 대화도 없이 치러졌다. 미로가 아직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을 동안 희노는 조용하게 미로에게 고백했다.
“너를 처음 봤을 때 이해 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어. 너에게서 아마 나를 봤는지도 몰라. 나는 그냥 로봇인데. 만들어진 감정이고 느낌인 걸 아는데도. 왜 이 모든 감정은 생생하게 너에게 향해 갈까? 내 도움을 거부하는 네가, 나를 걱정해 주는 네가, 난 화가 나. 내 눈앞에 인간이 있다는 건 곧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걸 의미한다고. 나도 안다고. 인간은 사라진다는 걸. 미로야 정령이 되면 나에게 와줘. 난 잠을 자지 않아 꿈도 못 꿔, 그러니 네가 와줘. 제발. 난 너무 화가 나.”
미로의 장례식 후 도토리나무 아래에 반나절이나 꼼짝 않고 서있던 희노는 결국 매디아크로 돌아갔다. 김 팀장은 걱정과 안심이 교차하는 얼굴로 희노의 상태를 확인했다.
꺼지지 않던 희노의 빨간 분노센서가 김 팀장의 전구 제거를 통해 불이 꺼졌다.
“어디 다른데 불편한 점은 없어?”
“김 팀장님. 정령을 본 적 있어요? 저기 천장에 있는 전등이요. 저기에 정령이 있어요. 내가 보지 않으면 혼자 깜박여요. 저도 이제 정령을 볼 수 있게 될까요?”
김 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희노의 인공안구를 제거하며 물었다.
“언제부터 그랬어?”
희노의 인공안구를 제거하는 김 팀장 앞으로 희노의 눈에서 도토리 한 알이 굴러 떨어졌다.
“희노야. 너 눈에다가 뭘 집어넣은 거야”
“행복이요. 눈에 담을 수 있는 기억이요.”
희노의 오른쪽 눈에서 눈물처럼 또 도토리 한 알이 바닥으로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