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미로의 기억
희노가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인구조사 드론에 찍힌 미로가 매디아크로 이송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반가워 내 이름은 희노야, 오늘부터 너를 도와줄 헬퍼봇이야.”
미로를 향해 익숙한 미소로 인사를 한 후 희노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손으로 미로를 들어서 휠체어에 앉혀주었다. 휠체어 뒤에서 매디아크병원을 소개해 주는 희노의 밝은 목소리.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한 낯가림과 미로와 무수히 연습한 매뉴얼 속 반가움에 알맞은 표정, 그 사이 어딘가를 맴도는 미소. 미로는 가슴에 손을 올려 쓸어내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났다. 꼭 그래야 한다.
희노는 3초 이상 미로를 빤히 쳐다봤다. 장족의 발전을 느낄 수 있었다. 낯가림하는 헬퍼봇이라는 오명은 이제 벗어버린 것 같았다. 미로는 마음 한 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장하다. 우리 간땡이. 미로는 소심한 희노를 종종 간땡이라고 불렸다. 간도 없는 휴머노이드에 간땡이라는 별명은 무척 차별적이라고 희노는 부루퉁하게 말했었다. 미로는 인간은 대범한 사람을 간이 크다고 한다. 그러니 간이 커지라고 그렇게 부르겠다고 엄포를 놓았었다.
“장미정원에 슈가밤이 활짝 폈어. 가볼래?”
미로는 희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다시 이 아름다운 장미 정원을 산책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금동 할머니가 희노를 보내 주신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눌러 놓았던 할머니의 기억이 울컥 대며 미로의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다.
“미로야? 왜 그래? 괜찮아?”
미로는 굳어버린 발끝부터 시작된, 오래된 고통이 울음이 되어 터져 나왔다. 희노는 미로의 휠체어 한 걸음 뒤에서 작은 어깨의 들썩임이 그칠 때까지 물러 서 있었다. 헬퍼봇 매뉴얼에 어긋나는 이유로 어깨에 손을 뻗고 싶은 생각을 물리치느라 희노의 주먹이 여러 번 쥐어졌다.
미로가 희노58, 즉 지금 미로 뒤에 서 있는 희노를 처음 만났던 3년 전, 희노는 시험 가동을 마치고 헬퍼봇으로 병원에 적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감정은 프로그램되어 있지만 감정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희노는 환자들에게 공감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환자를 돕는 본능을 가진 헬퍼봇으로써 공감 능력 불량이라는 딱지가 붙을 수도 있었다. 그건 헬퍼봇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중학생이던 미로가 금동 할머니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섰을 때 다른 희노봇들과는 다르게 희노58은 병실이 아닌 병원 데스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희노가 배정되기를 원하는 환자가 없어서 병실로 배정되지 못한 것이었다. 미로는 다리를 절며 희노 앞에 다가섰다. 자신 앞에 다가선 물체를 인지한 희노는 감은 눈을 살포시 떴다. 희노의 생김새를 가만히 지켜보던 미로는 희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도움이 필요해, 나는 다리가 아프거든, 네가 도와줄 수 있어?”
희노는 미로의 몸 전체를 스캔하듯이 훑어보고는 안으로 들어가 휠체어를 가지고 나왔다.
미로는 희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정원으로 나갔다. 데스크에서 간호사들과 얘기를 나누던 금동 할머니는 미로와 희노의 첫 만남에 무심히 눈길을 한 번 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입원 약정서를 마저 작성했다.
미로가 생각하기에 희노는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겁쟁이였다. 희노는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네기 전에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다, 한마디로 소심한 로봇이었다. 그러니 선뜻 먼저 나서서 상대방의 어려움을 챙겨주지 못했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기 때문인데 이것이 헬퍼봇으로써는 최악이었다. 헬퍼봇은 언제나 환자가 알아차리기 전에 환자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한발 먼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희노는 불량이 맞다. 그러나 미로에게는 희노의 그런 점이 맘에 들었다. 소심하지만 많이 생각한 희노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로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희노가 자신처럼 무언가에 위축되어 보이는 것이 맘에 와닿았다. 미로의 부탁으로 희노는 그날부터 미로의 병실에 배정되었다.
“또 재영이가 이런 거야?”
미로의 무릎에 난 상처를 발견한 희노는 화가 났다. 약통을 가지고 와서 까진 무릎에 약을 발라주었다.
“이번에는 재영이 아니고 민호가 그랬어.” 재영이 패거리들이 병원 앞까지 따라와서 바코드라고 놀리며 목발을 넘어뜨린 것을 희노도 알고 있었다.
“나쁜 자식들. 내가 혼내 주고 싶다.”
“안되는 건 알지. 그러면 너는 바로 폐기야. 인간을 혼내 주는 로봇은 없어”
“도대체 배양캡슐태생이 뭐가 어떻다고 놀림거리가 되는 거야. 인공지능 로봇도 있는데.”
미로와 희노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 재영이가 또 놀리면 가까이 가서 말해.”
“뭐라고? 희노가 혼내주러 간다고?” 미로가 농담을 하며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겨 앉았다.
“아니. 재영이 한테 이렇게 말해. 불법 패치, 불법 패치, 너 지금 친구 괴롭히기 모드 켰네, 괴롭힘 명령어는 지원하지 않아, 네 입력은 자동 삭제 처리됨”
“으웩- 그게 뭐야. 무슨 40년 전 로봇 같아.”
다시 한번 미로와 희노는 서로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중학교에서 말썽쟁이로 유명한 재영이 같은 아이에게는 통할 농담이 아니란 걸 희노도 알고 있었다. 희노가 미로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미로도 알고 있었다.
***
고성 집 앞, 택시에서 내린 희노는 미로를 부축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녘에 체온이 떨어지면서 미로의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가지고 온 약을 먹고도 정신을 잃은 듯 잠든 미로에게 담요와 옷가지를 덮어주고 희노는 미로의 침대에 미로와 나란히 누웠다. 미로가 말한 대로 천장의 한쪽이 내려앉아 있었다. 침대 옆 창가에 닫힌 창문으로 바람이 넘나 들어왔다. 희노는 미로를 껴안고 체온을 나누고 싶었지만 희노에게는 나누어 줄 체온이 없었다.
미로의 탈출을 감행하면서 둘은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이미 예상했었다. 미로의 죽음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며 희노는 그것에 대한 어떤 대처도 해 줄 방법이 없다는 것, 그래서 미로는 기어코 희노에게 고성까지 따라오지는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저 탈출만 도와 달라고, 미로가 두려워한 것은 병원 바깥에서의 죽음을 희노의 기억에 남기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죽음은 의료진들의 사망 선고와 지하의 장례식장까지 곡소리로 이어지는 프로세스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이 진행을 벗어나는 죽음은 없었다. 희노에게 죽음이 일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실제가 은폐된 죽음 패키지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 프로세서 안에서 헬퍼봇의 역할은 말 그대로 도우미(헬퍼), 한 단어로 제한되었다. 그저 매뉴얼 대로 한 걸음 물러나서 환자의 고통과 죽음을 직면하는 인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거기까지가 그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이었다.
죽음 패키지에서 로봇이 배제되는 가장 큰 이유는 로봇에게는 망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망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일상에 발생하는 모든 일을 다 기억하지 못하며 또한 기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기억의 크기만큼 그들의 감정 또한 소비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효율을 중요시했다. 어떤 큰 사건 앞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효능은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그러나 로봇에게 망각은 지원되지 않는 기능이었다. 모든 사건과 경험을 있는 사실 그대로 기억함과 동시에 그때의 감정마저도 잊을 수 없는 로봇에게서 인간적인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료 분야에서부터 극명하게 보였다. 보호하던 환자와의 지나친 감정적인 유대가 죽음을 경험한 헬퍼봇에게 다른 환자를 받아들이는 것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했고, 불안과 고립 같은 인간적인 부작용을 자아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증상의 원인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의 과도한 인간화를 꼽았고, 이후로 생산되는 헬퍼봇에게는 감정표현에 관한 뇌회로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헬퍼봇의 감정처리 기능이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부터였다. 과학자들은 느껴지는 감정을 제한하기보다 감정 표현 방식을 제한함으로써 로봇을 대하는 인간뿐 아니라 로봇 스스로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방법이 경제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생산된 로봇에 한해서는 모두 뇌회로 리셋이 감행되었고, 해당 리셋을 감지한 몇몇 로봇들의 반발도 더러 있었으나 현재 모든 헬퍼봇은 감정표현 및 처리 기능이 리셋된 상태였다. 그리고 로봇 윤리위에서 권고한 대로 병원에서 로봇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죽음을 대면하지 못하도록 규정지어졌다.
희노는 병원의 모든 규칙을 어기고 미로의 무덤에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정말 네 말 대로 이 창 너머에 있는 달이 막대사탕 같아.” 미로가 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 것을 지켜보던 희노가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미로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고 싶던 고성 하늘의 달이 창틀에 끼여 누군가 먹다 만 듯 반쪽만 남은 막대사탕처럼 보였다.
“보름달이 뜨면 연화천 위에도 달이 뜨거든, 뜰에 나가서 보면 엄청 장관일 거야.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으면 같이 보자.”
“………..”
“연화천 너머에 200년 된 도토리나무도 있어, 한여름에도 그 나무 밑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그 도토리나무에서는 파도 소리가 나. 할머니가 도토리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어. 내일 같이 가 볼래?.”
“응, 같이 가자”
희노는 분노센서가 켜진 것을 왠지 미로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이불을 가슴까지 올려서 덮은 채 희노는 아픔으로 펴지지 않는 미로의 미간을 밤새 바라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