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노의 미로_5

by 혜령

5. 미로 탈출


울퉁불퉁한 방지 턱을 열 개쯤 지났을 무렵, 버스는 고속도로 위를 내 달렸다. 몸이 흔들려서 반쯤 굳어진 미로의 몸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희노 위로 넘어지는 일이 더 이상 없어졌다. 미로는 창백해진 얼굴로 창밖을 보며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뭔가 미로의 탈출이 본궤도에 오른 듯한 느낌, 더 이상 매디아크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안심, 이런 여러 가지 마음들이 얽혀 한숨이 되어 나왔다. 희노는 창밖 하늘에 드론이 떠 있는 것을 바라봤다. 마치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미로의 왼쪽 옆구리를 손으로 다급히 가렸다. 미로는 희노의 손을 느낀 건지 희노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묘하게 초조하고 다급함이 느껴지는 표정이 스쳤다. 미로는 희노가 자신을 따라 화물용 버스에 올라타던 순간이 떠 올랐다. 로보휠체어를 실어주러 희노가 먼저 버스에 올라탔을 때, 버스 기사가 미로에게 말했다.

“인간은 화물용 버스에 탑승 금지야. 넌 안돼.”

무뚝뚝한 말투에 겁먹은 미로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팔이 굵은 버스 기사가 혼자 버스에 올랐다. 먼저 타고 있던 희노는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 뭔가 이야기를 한 후 기사는 미로에게 한 번 더 힐끗 눈짓을 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노는 미로를 부축해서 버스에 올라타 짐들이 없는 쪽의 의자에 앉혔다. 평소에 로봇을 배달하던 화물차라 놓인 의자가 인간이 앉기에는 몹시 딱딱했다. 아직 골반 쪽까지는 감각이 있었던 미로가 불편해하자 희노는 뒤쪽 의자에 걸쳐진 기사 옷가지를 구겨서 미로의 엉덩이 아래에 몰래 넣어 주었다.

“아까 기사 아저씨한테 뭐라고 한 거야?”

미로는 희노에게 몸을 기댄 채 물었다.

“그냥… 부탁했지. 태워달라고.”

“그냥? 아닌 것 같은데. 인간은 못 탄다고, 불법이라고 했는데.”

미로의 다그침에 희노는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그냥. 너도 헬퍼봇이라고 했어. 잠시 고장이 나서 고치러 가야 한다고.”

미로는 백미러에 비치는 버스 기사의 이마와 눈을 쳐다보았다. 붉은 얼굴과 이발 안 한 곱슬머리, 굵은 팔과 어깨를 가진 남자,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을 것 같은 무심한 표정. 로봇을 배달하는 기사가 희노의 말을 믿어 주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거짓말이라 곤 해 본 적 없는 로봇이 하는 떨리는 목소리를 그가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미로는 자신들을 싣고 가는 이 버스의 종착지가 고성이 아닐까 봐, 혹시 매디아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지 순간 마음이 졸여 오는 것을 느꼈다. 창밖에는 여전히 드론들이 날아다녔다.


희노에게 기댄 채 잠이 들었던 미로는 희노가 살며시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이 깼다.

“뭔가 이상해. 고성으로 가는 길이 아니야.”

미로는 눈을 비비며 희노가 내민 의료용 모니터를 내려다봤다. 버스는 고성으로 가는 길을 벗어나서 왼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미로는 심장이 버스 바닥에 내려앉는 듯했다. 목덜미를 훑고 가는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커튼을 열어서 창밖을 보니 정오를 갓 넘은 태양이 여전히 머리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로와 희노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정차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버스 안, 순진한 탈출을 감행한 한 개의 심장과 또 한 개의 분노센서가 제각기 두근거리며 버스가 가는 길 대로 흔들렸다.

두 시간이 더 흘렀다. 정류장이 아닌 어느 숲 앞에서 갑자기 버스가 멈춰 섰다. 희노는 미로를 로보휠체어로 옮겨 앉히고 버스 기사와의 한판 대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 기사를 먼저 한 대 때려눕히고 미로를 데리고 도망친다는 계획을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도 했다. 그러나 인간을 도와주는 본능으로 만들어진 그 로봇은 싸움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환자, 미로를 돕기 위해서 인간과 싸움도 가능하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지잉~

그때 버스의 문이 열리고 버스 기사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 지금 여기서 내려, 저 앞 대숲으로 들어가서 숨어, 계속 드론이 쫓아오는 거 보니까 너희 목적지도 알고 있는 거 같아. 우선 여기서 내려서 숨어 있다가 드론에게 들키지 않게 고성으로 가는 다른 방법을 찾아. 나는 여기까지밖에 못 태워줘”

희노는 꼭 쥐고 있던 주먹을 스르르 풀며 미로의 손을 잡았다. 팔이 굵은 아저씨는 여기는 담양이고 고성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안 걸린다고 했다. 대숲이 우거져서 드론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숲 속에 숨어 있다가 드론이 지나가고 택시를 타고 가라고 일러주었다. 미로는 눈 안으로 고인 눈물이 밖으로 흘러넘치지 못하게 입술을 꼭 깨물고는 머리를 숙였다. 감사의 말 따위는 감히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할 만큼 온몸의 신경이 희노와 마주 잡은 주먹으로 쏠렸다.

미로와 희노는 화물버스가 돌아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숲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로의 머릿속에 어렸을 때 읽었던 거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거인의 정원에 아이들이 없어지고 봄이 사라졌던 이야기.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자, 거인은 더 이상 아이들을 내쫓지 않고 그들과 평화롭게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미로는 거인의 정원에서 뛰어놀던 봄의 아이들이 아니라 거인의 죽음이 더 마음에 들었다. 거인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던 아이가 다시 찾아와 거인을 죽음으로 데려간다는 내용이, 평화로운 얼굴로 정원에서 죽어 가던 거인의 그림이 어린 미로의 마음에 와 콕 박혔었다. 자신이 그 거인일 거라고 미로는 생각했다. 마치 지금 팔뚝이 굵은 첫 번째 아이를 만나 거인이 정원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들었다.


***


더 이상 하늘에서 드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대숲 속으로 들어간 후에야 둘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한낮에도 대숲 속은 어둡고 서늘했다. 미로는 온몸을 휘감은 혈관 속까지 한기를 느꼈다. 텅 빈 몸속에서 대숲의 바람이 공명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바람 한 점 없었다. 희노는 미로에게 담요를 둘러주고 물을 건넸다. 창백해진 미로의 얼굴을 보는 희노의 눈에는 걱정이 한가득 서려 있었다. 미로는 희노가 자신을 따라 고성까지 오지 않기를 바랐다. 고성은 곧 무덤이 될 것이다. 무덤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희노를 세워 두고 싶지 않았다. 몇 년 전 그날처럼 희노 혼자 세워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악-“

미로가 허공에 무언가를 뿌리치는 손짓에 휠체어가 뒤로 밀려서 옆으로 기울었다. 희노는 휠체어와 미로를 동시에 붙잡았다.

“무슨 일이야?”

“저기 새까만 거, 으악~”

미로가 가리키는 쪽으로 희노는 달려갔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희노는 주변을 샅샅이 찾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으아악~ 무릎에, 내 무릎에 앉았어”

희노는 다시 미로에게 뛰어와서 무릎을 살폈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미로는 무릎 위를 휘저으며 눈을 감고 소리 질렀다.

희노는 가만히 미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미로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여기 있네, 내가 잡았어. 이거 저리로 보내 주고 올게”

희노는 아무것도 없는 미로의 무릎에서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척하며 미로를 향해 웃어 보였다. 가끔 그런 환자들이 있었다. 환각을 보는 환자들, 그들을 위한 거짓말 보따리를 희노는 가끔 풀어놓기도 했었다.

미로는 희노의 맨주먹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무릎을 내려다봤다. 그제야 미로는 슬픈 눈으로 희노를 바라본 후 자신의 무릎을 향해 말했다.

“너 정령이구나, 후- 갑자기 달려들어서 놀랐잖아, 이 숲에 사는 거야?......... 말은 못 하니?”

미로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무릎에 앉아 있는 무언가를 손으로 만지고 있다가 희노를 올려다봤다. 희노는 미로의 모습에 순간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도마뱀이야, 온몸이 다 새까만 도마뱀, 눈을 뜨면 불타는 듯한 황금빛 긴 눈을 가지고 있어. 날름거리기도 하네. 자세히 보니까 귀엽다.”

미로는 두려운 듯, 한편으로는 당연한 듯한 목소리로 아무것도 없는 자신 앞에 놓인 길을 보며 말했다.

“나를 데리러 온 정령 같아. 할머니는 나뭇잎이었는데,”

미로의 정령은 둘을 대숲밖으로 안내하고 인가가 보이는 찻길에서 사라졌다. 희노는 미로가 안내하는 대로 대숲을 빠져나오고서야 왠지 안심이 되었다. 대 숲 속에서 미로는 마치 아픈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밝은 얼굴을 했다.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니면 무언가가 이끌리는 힘이 있는 것인지 희노는 알지 못했다.

“정령은 왜 생기는 거야?” 희노가 물었다.

“글쎄, 나도 정확한 건 몰라, 아마도 생명이 있는 어떤 힘이 몸을 잃어버리면 정령이 되는 게 아닐까? 할머니가 그러는데 사물이 오래되어도 그 사물을 수호하는 정령이 생긴다고 했어.”

“너도 몸을 잃으면 정령이 되는 거야?”

무심을 가정한 떨리는 목소리의 로봇이 무언가를 겁내고 있다는 것을 미로는 느낄 수 있었다. 희노가 느끼는 감정을 미로는 오랫동안 느껴왔기 때문에 너무나 환히 알고 있는 떨림이었다. 그 떨림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미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희노에게 그 절망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응, 정령이 되는 거야. 생명은 순환하는 거야. 저기 나뭇잎처럼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계속 뻗어 나가잖아. 떨어지고 나면 또 똑같은 모양의 나뭇잎이 생겨. 온 우주가 다 그래. 계속 죽고 생겨나고 죽고.”

“떨어진 나뭇잎이 새로 생겨난 나뭇잎이랑 같은 걸까?”

“…………….”

“사물은 얼마나 오래되면 정령이 생겨?”

“그건 왜?”

“나는 사물에 가깝잖아. 생명은 아니니까.”

그때 머리 위로 드론이 지나갔다. 희노가 순식간에 미로의 왼쪽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껴안았다. 미로는 고개를 돌려 희노를 바라봤다. 둘은 드론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서로의 눈 속에 비친 두려움과 설레임의 사이 어디쯤을 바라보고 있었다.


***


태양이 굿바이 인사를 위해 노을과 구름 사이에서 황금빛에서 다시 코발트 빛으로 물들어 가던 저녁이었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작은 절구에 낮에 따 두었던 봉숭아꽃을 담아 찧어서는 미로의 손톱 위에 얹혀 준다. 그 손톱을 긴 이파리로 감아서 실로 묶은 다음, 다른 손톱에도 똑같이 찧은 꽃을 얹혀서 주신다.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데”

미로는 방 한편에 서 있는 목발을 바라보다가 이제 더 이상 목발로는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본다.

“첫사랑 말고 소원은 안 이루어 준데?”

할머니가 꽃물을 조심스레 손톱에 얹으며 미로에게 묻는다.

“소원이 뭔 데?”

“할머니랑 여기서 오래오래 사는 거”

“그런 건 당산나무에 빌어야지. 연화 천 건너에 있는 몇백 년 된 나무에, 그런 나무에는 정령들이 사니까 소원을 이루어 줄지도 모르지.”

미로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자,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해 주듯 슬쩍 미소 지으며 말한다.

“원래 옛날에는 마을 어귀마다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가 있었어. 사람들이 거기에다가 천을 매달아 놓고 소원을 빌곤 했지.”

“천을 왜 매달아?”

“나무 정령에게 찜하는 거지. 정령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표식 같은 거?”

“오~ 아무거나 매달아도 돼?”

“누가 봐도 이건 미로 거네 하고 알아볼 수 있는 걸로 매달아야지”

“그럼 나는 이 걸로 할 게. 할머니” 미로는 여름밤에도 오한이 들어 입고 있던 초록색 스웨터를 가리키며 말한다.

“나중에 소원 빌 때 이걸 매달고 빌어, 그럼 내가 들어줄 게, 정령이 되어서”

할머니는 꽃물이 든 손을 잠시 멈추고 미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미로는 봉숭아 색 양 볼에 보조개를 들이며 웃고 있다.


“미로야, 미로야”

감은 눈 옆으로 길을 내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희노는 미로를 깨웠다.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어디가 아파?”

주인 없는 집 어두운 방 안, 은회색 달빛이 창문 모양대로 그늘을 들인 희노의 놀란 얼굴을 창백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미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할머니 꿈을 꾸었다. 미로는 자신의 손톱 끝을 내려다보았다. 꽃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워진 손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희노는 미로가 울고 있는 영문을 몰라 허둥지둥 약을 챙겼다.

“미로야 아파?”

“아니야, 아픈 게 아니고 할머니 꿈을 꿨어.”

“꿈?”

“꿈에 할머니가 내 손톱에 꽃물을 들여 주셨어. 그런데 할머니를 보고 나니까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희노는 본능적으로 미로의 야윈 등을 쓸어내렸다. 할머니와 파란 기와지붕집, 미로가 보고 싶은 것들을 미로가 보면 희노는 미로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미로는 오히려 슬픈 것 같아 보였다. 꿈속에서 보고 싶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희노에게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잠을 자지 않는 로봇은 꿈꿀 수 없으니, 이후에 미로가 보고 싶어도 자신은 볼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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