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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탐정 김바다 Sep 27. 2024

도시 속의 자연 관찰자

8.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목화 씨앗을 심고 나면 잊어버려야 한다. 씨앗 껍질이 두꺼워서인지 2주나 3주가 지나야 흰나비 날개 같은 두 떡잎을 내밀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새싹도 있으니 좀 넉넉하게 심어야 한다. 올해는 고무통 하나에 씨앗을 두 알씩 여러 구멍에 심었더니 거의 다 나온 것 같다. 



목화 새싹이 자라기 시작하면 특히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목화의 새로 나온 여린 잎을 좋아하는 진딧물의 습격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새로 돋아나는 여린 잎의 수액이 맛이 있는지 진딧물이 모여들어 살지 못하게 한다. 이 시기가 목화의 생애에서 가장 큰 위기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직면하는 것이다. 


나도 갈등에 빠지게 된다. 불교도에게 불살생은 오계 가운데 하나인데, 농약을 뿌리느냐, 손으로 잡아서 죽이느냐 갈림길에 선다. 넓은 밭에서 목화를 재배한다면 당연히 농약으로 진딧물을 제거해야 하지만 손바닥만한 고무통 텃밭이라 손가락으로 살생을 하기로 했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다. 진뜩거리는 진딧물의 체액과 몸체, 넌저리를 치며 이 살생작업을 실행한다.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몇 번의 단호한 살생으로 목화는 자라는 속도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 자라면 진딧물의 공격을 이겨낸다. 아마 진딧물을 쫓는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물들의 잎은 자신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한다. 


진딧물을 이겨낸 목화는 곧게 뻗어서 잘 자랐다. 꽃이 피기 시작할 때쯤 비가 자주 내려 벌이 보이지 않았다. 목화꽃은 수줍게 살포시 아이보리색 꽃잎을 열고 있다가 저녁이 되면 연분홍 꽃잎으로 변하면서 진다. 꽃이 진 자리에 다래가 열리는데 그 속에서 솜을 키운다. 다래가 한참을 자라면 8월쯤 다래가 벌어지는데 몇 달을 숨겨온 하얀 솜을 내민다. 솜꽃이 핀 것이다. 그래서 목화는 꽃을 먼저 피우고, 꽃이 진 다음에 또 솜꽃을 피운다. 두 번 꽃이 핀다. 


한동안 목화솜을 모은 적이 있다. 미래에 태어날 손주에게 솜이불을 만들어주려고. 이 거대한 꿈을 이루려고 솜을 모으는데 안 모여지고, 모은 솜은 강의 나가서 실 만드느라 나눠주고 해서 진짜 안 모였다. 

어릴 때 온 식구가 덮었던 이불 한 채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목화솜을 모아야 했을까? 어릴 때 목화솜을 딸 때 마른 잎사귀 조각이 솜에 달라붙어서 그걸 떼어 내느라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강연 갈 때 보여주려고 인형에게 덮어줄 수 있는 작은 이불을 만들었다. 동물 그림이 있는 천을 준비해서 솜을 얇게 펴서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소청으로 솜을 쌌다. 솜을 탈 수가 없어서 손으로 펼쳐서 고르지가 못하다. 그리고 동물 그림 천으로 요 호청과 이불 호청을 만들어 완성했다. 너무 작지만 촉감이 폭신하고 부드럽다. 


목화 씨를 뺀 목화솜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아이보리색으로 단아하게 피는 목화꽃과 꼭꼭 닫고 있던 다래가 벙싯 벌어지는 하얀 솜꽃을 보면 꽃말이 지어진 연유를 알 것 같다. 

목화가 사라지고 편리하게 모든 걸 사서 사용하는 지금의 세대가 엄마 세대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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