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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탐정 김바다 Sep 14. 2024

도시 속의 자연 관찰자

7. 참외 먹고 또 참외가

   

유난히 참외를 좋아하는 나, 그런데 마음껏 먹지 못한다. 당뇨환자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당뇨약을 먹고 있어서 작년에는 참외를 거의 못 사 먹었다. 마트 앞에서 노랗게 웃으며 달콤한 향을 뿜어내며 유혹을 해도 몇 번을 들었다가는 놓고 돌아서야 했다. 


올해는 유난히 덥기도 하고 힘들어서 참외를 사서 맘껏 먹었다. 껍질째 와삭와삭 먹고는 씨앗은 옥상텃밭에 묻어주었다. 참외 씨앗도 발아가 잘 되는 씨앗 가운데 하나이다. 며칠 지나자 ‘우리 엄마가 나가랬어요’, 하며 얼굴을 내민 참외 새싹들!


‘너희들 모두를 키울 수는 없어’하며 솎아주고 두 포기만 남겼다. 마침 장마철이라 비가 날마다 쏟아졌다. 바닷물이 하늘 구경이 하고 싶어서 몰려 올라갔다가 내려오는지 날마다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 비를 맞고 참외 두 포기도 줄기를 뻗어나가고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아기참외를 달고 있는 암꽃을 보았다. 올해는 벌과 나비들이 거의 날아오지 않는데, 또 비가 날마다 내리니 ‘누가 수정을 시켜줄까’ 걱정되어 수꽃을 따서 암꽃과 뽀뽀시켜 주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할까 봐 한 번 더 해 주었다. 그러지 않으면 암꽃이 지고 나면 아기참외가 자라지 못하고 누렇게 골아 떨어진다. 


잊고 있다가 우연히 만난 아기참외가 제법 자라 있었다. 비가 오니 무럭무럭 자란 것 같았다. 그때부터 참외가 다 자라서 노랗게 익기만을 기다렸다. 물도 다른 곳보다 듬뿍듬뿍 주었다. 


어릴 때 참외밭에서 노랗게 자란 참외를 따서 바로 먹던 달콤하고, 아삭아삭 씹히던 그 맛이 되살아났다. 음식의 맛과 먹을 때의 그 느낌은 5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직접 키웠으니 이 참외도 어릴 적 먹었던 그 참외 맛이 나겠지. 은근히  기대를 하며 참외가 얼마나 자랐는지 살피곤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곤 했다. 

연일 기온이 34도를 넘기니 옥상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얼마나 더울까? 가끔 지나가는 소나기는 잎들의 목춤임만 될 뿐이었다. 


드디어 참외가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날마다 내가 하는 일은 얼마나 익었는지 보고 참외 향기를 맡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노랗게 익어가는데 참외 특유의 달콤한 향이 안 난다. 


며칠 지나 참외 두 개를 땄다. 노랗게 익어가서 더 두면 상할까 봐서다. 참외 향이 거의 나지 않아도 어찌 될까 봐 땄다. 물로 깨끗이 씻어서 시원하게 해서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저녁에 접시에 오른 참외 한 개, 떨리는 마음으로 칼로 자르니 씨가 덜 여문 게 보인다. 참외의 과육도 단단하지 않고, 그래도 썰어서 먹어 보았다. 역시 과육이 무르고, 단맛도 거의 없었다. 너무 일찍 딴 것 같다. 그래도 참외의 맛은 가지고 있어서 먹었다. 시원한 참외 맛이다. 아쉬운 하나가 빠진, 달콤한 맛이 없었다. 

    

 얼마 전에 암꽃과 수꽃을 뽀뽀시켜 준 참외가 또 두 개 자라고 있다. 이번엔 좀 더 달콤하고 향이 진하게 나는 참외로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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