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문을 두드린 건, 나의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문 앞에서 가장 크게 자라난다

by 투잘개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이후, 점유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사를 갈 테니 강제집행만은 하지 말아달라.”


그 말은 얼핏 부탁처럼 들렸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법 앞에서만 약해지는 사람들이라는 걸.

그래서 조건을 달았다.

“합의서만 작성하신다면, 이사가는 날 이후로 강제집행은 미루겠습니다.”




황금 같은 주말 아침, 나는 물건지로 향했다.

합의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한 시간 가까운 운전 동안 머릿속은 복잡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가족들에게 미리 전화라도 남겨야 하나?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문 하나가 거대한 벽처럼 앞을 막고 있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스스로를 다독였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리고 노크를 했다.




문이 열리고, 60대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나를 바라봤다.
긴장된 눈빛, 말수 적은 표정.
나는 일부러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회사 대표님의 직원이고, 합의서만 작성하러 왔습니다. 언제 이사를 가실 건지, 약속을 어길 경우 법적 절차에 동의한다는 내용에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짧은 대화가 오갔다.
점유자는 힘든 사정을 얘기하려 했지만, 내가 ‘직원’이라고 말하는 순간 말을 멈췄다.
펜 끝이 종이를 누르는 소리만 방 안에 크게 울렸다.
합의서가 완성되자 나는 인사를 남겼다.
“이삿날 뵙겠습니다.”




집을 나서 차에 오르는 순간,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길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알았다.
두려움은 언제나 문 앞에서 가장 크다.
하지만 두드리고 나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그날 이후 나는 명도를 다시 보게 되었다.
명도는 단순히 법과 절차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집의 문을 두드린 건 내 손가락이었지만,
실은 나의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나온 순간,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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