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언어

by 윤재

65. 기다림의 언어


“갈잎나무는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해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나뭇잎을 떨어트리기로 한다. 어린잎이 움트는 봄부터 성장하는 여름까지 나무는 최선을 다해 나뭇잎을 보살폈다. 하지만 여름이 물어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무는 나뭇잎에 공급하던 영양분을 거두어들인다. 잎자루에 떨켜를 만들어 나뭇잎을 떨어트릴 준비를 한다. 버리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봄과 여름은 온 힘을 다해 키웠던 잎이다. 흔적 없는 이별이 있을 리 없다. 나뭇잎을 보낸 자리에는 잎자국이 남는다.”

--우숙영, <산책의 언어>, 목수책방, 2022중에서



기다림은 가을을 닮은 것 같습니다.

이 여름은 너무 뜨겁습니다.
햇살은 살갗을 넘어 마음까지 달구고, 바람은 그늘마저 숨 막히게 하는군요


마치 계절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어떻게 버티고 있나요?”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쩌면 한 줄기 그늘을 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눈앞의 열기 속에서도 저 멀리 오는 바람결을 느끼는 일.
마르지 않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언젠가 그것들이 낙엽이 되어
길 위를 부드럽게 덮을 날을 떠올리는 일.

지금은 지치고 덥고 무기력하지만,
그것 또한 지나가겠지요.


열기가 지나간 자리에
풍요와 선선함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을은 쉽게 오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 땅은 여전히 강렬하게 여름의 체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손끝에서부터 색이 번지고, 이 계절의 이름이 조용히 바뀌리란 것을.

나무는 여름 내내 최선을 다해 키운 잎들을 스스로 놓아 보내기 위해,
줄기를 흔들고, 영양분을 끊고, 천천히 작별을 준비하겠지요.
그 순간을 우리는 단풍이라 부르는데, 그 시간을 화폭에 옮긴 사람 중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계절의 언어를 색으로 노래한 화가, 김종학 화가가 떠오릅니다.


자연을 걷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김종학은 1937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서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한국의 현대풍 경화에 새로운 감성과 색의 리듬을 더한 작가로 ‘설악의 화가’, ‘꽃의 화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김종학의 부친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으며, 신의주를 비롯한 북한 지역에서 광산업으로 성공한 기업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한편 모친은 중국 난징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신여성이었지요. 그는 세 살 때부터 낙서를 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벽마다 낙서로 가득 채우는 그를 보며 부모와 조부는 어린아이의 장난으로 여기면서도 ‘나중에 자라서 화가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다고 합니다. 부친과 조부는 대부분의 일본 유학생이 법학 공부에 몰두할 때 “법학은 사람을 다치게 할 소지가 있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며 동시대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봤으며, 김종학이 화가의 길을 가는 데 확신을 심어 줬다고 하는군요. 조부가 남긴 “나이 사십에 재벌도 되고 장군도 될 수 있지만, 예순이 넘어야 화가가 되고, 일흔이 넘어야 시인이 된다”는 말씀은 긴 무명 시절을 비롯하여 한평생 그의 마음에 남았답니다. 경제적 성공을 이룬 조부 역시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을 살 수는 없다”라고 하며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고희동 화백과 어린 김종학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합니다 “ (김종학 홈페이지에서 인용)



“1979년 여름, 나는 설악산으로 도망쳤다. 나는 가족과 예술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진정으로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설악산의 자연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봄에는 봄, 여름에는 여름, 가을에는 가을, 겨울에는 겨울을 그리며 사계절을 산과 함께 보냅니다.“(김종학의 글에서 인용)



삶의 고통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소생하도록 한 힘은, 자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자연의 현상, 그중에서도 꽃의 아름다움은 생의 의미를 상실한 그에게 마지막 위안이 되어 주었고, 그의 꽃 그림은 이러한 배경에서 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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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꽃>, 198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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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중앙일보





그는 평생 자연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걷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설악산 아래 양양에 터를 잡고, 매일같이 산을 걷고 숲을 바라보며 그 변화를 직접 겪고 느끼고, 붓으로 기록했습니다. 그의 가을은 단순한 묘사가 아닙니다. 색이 쏟아지고, 잎이 흔들리고, 바람이 지나갑니다. 붉은 기운과 노란 선율이 휘몰아치다가,

문득 화폭의 한가운데에 멈춰 섭니다. 그 찰나의 정지된 시간, 그곳엔 “떨어지기 전의 떨림”이 “풍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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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가을>, 1992,



그는 말했습니다.

“자연은 한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 나는 그 다름을 따라가고 싶다.”

이 말은 마치 우숙영의 문장과 맥락이 같습니다.
잎을 흔드는 나무도, 떨어질 줄 알면서도 버티는 잎도,
모두 변화 앞에서 자신만의 흔들림을 안고 살아갑니다.


김종학의 그림 속 가을은 가을이 왔다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다만 조용히 기다림으로 물들어갑니다.
빛과 그림자의 결로,
바람이 스쳐간 방향으로.

그래서 김종학의 가을은 단순히 ‘가을’이 아니라,
기다림과 이별, 그리고 통과의 감정 그 자체입니다.


우숙영의 문장은 그 물든 길 위를 걷습니다.
떨어질 줄 알면서도 붙잡고,
보내야 함을 알면서도 흔들리는 마음.

여름이 너무 뜨겁다 보니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합니다.


가을은 기다리고 흔들리고, 조금씩 비우는 시간 끝에 찾아올 것 같습니다.
그 기다림을 아는 사람은 김종학의 그림 앞에서도 말없이 멈춰 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화폭 속에는, 자연을 걷고, 삶을 건너온 한 화가의 계절 전체가 살아 숨 쉬고 있으므로...

작품에서 계절은 붓끝이 아니라, 삶 전체로부터 물들어 나온 언어처럼 표현됩니다.


여전히 남은 여름의 열기를 가슴에 품고 있지만,
나뭇잎 하나마다 가을 준비는 시작하고 있겠지요.

두 예술가는 같은 계절과 비슷한 정서를 각자의 언어—글과 회화—로 직조합니다.

두 작품은 시간의 단면을 잡아내어,
자연의 움직임이자 내면의 감각인 기다림의 언어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입추(立秋), 가을이 처음 문을 두드리는 날입니다.

햇살은 여전히 강렬한 여름을 품고 있지만, 바람 끝엔 묘한 서늘함이 깃들어 있음을 느낍니다. 살랑이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조금은 친절하고 다정한 듯합니다. “이제 천천히 식히자. 숨을 조금 고르자.”라고 입추가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계절은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입추는 기다림의 시작입니다.
금세 낙엽이 지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공기가 바뀌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계절은 여름을 등지고 가을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입추는 마음이 먼저 바뀌는 날입니다.


한 해의 후반을 준비하고, 조금 더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

뜨거움 대신 차분함을, 속도보다 여백을 택하고 싶어지는 지금입니다.


이제는 천천히, 부드럽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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