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뚝 선 여자다, 나는 무릎 꿇지 않는다.
나는 우뚝 선 여자다, 나는 당신들만큼이나 귀하다.
나는 우뚝 선 여자다, 그리고 너 역시 그러리라”
--《그녀를 지키다》p. 492~494 중에서,
이 소설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서두르는 소설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들을 씨실과 날실로 직조하듯, 소설의 줄거리에 흥미롭게 섞어 구성하고, 화자의 입장을 달리하는 다면적 시선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외딴 수도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여든두 살의 노인이 임종을 맞이합니다. 그는 수도사가 아니었고 서원도 하지 않았지만, 약 40년 전부터 이 수도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가 이 수도원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그가 제작한 피에타를 지키기 위함임을 소설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작한 피에타를 보고 난 관람객들이나 수도사들의 감탄과 동시에 묘한 불안, 아름다움 너머의 불편함 등의 반응이 문제가 되어 미모의 피에타는 눈에 띄지 않도록 숨겨져 있었습니다.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미모(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와 더불어 책 전반에 등장하는 비올라 오르시니는 여성 인권 옹호자이자 극도로 보수적인 귀족적 배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여성입니다. 예술적 창의성,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 20세기 이탈리아 여성의 역할, 부자/귀족, 교회와 파시스트의 결탁, 이탈리아에서 교회와 바티칸의 역할, 낭만적인 관계와 공동체의 복잡성, 소수자와 이방인,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어떻게 기능하지 못하는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아름다운 감성 지능과 직관력을 지닌, 자유롭고 섬세한 존재인 비올라의 마음속으로 가는 여정도 있습니다. 부유한 후작 가문에서 태어난 비올라는 당시 다른 서민들과 달리 굶주림이나 노농과는 거리가 멀고 권력의 억울함에 희생당할 일도 없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안전하고 부족함 없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독서로 지적 수준이 높고 상상력이 풍부한 비올라는 날고 싶어 합니다. 그뿐 아니라 비올라는 미모의 지적 성장을 주도합니다. 미모와 친구들은 날고 싶어 하는 비올라를 지지하고 조력합니다.
과연 그녀는 날 수 있었을까요?
주인공의 아버지는 조각가였고, 주인공이 태어나자 어머니는 아들이 조각가가 되기를 원하나 아버지는 반대합니다. 아버지는 ‘조각가는 욕설을 받으며, 손과 등, 눈이 돌보다 훨씬 빨리 닳는 더러운 직업이라며, 미켈란젤로가 아니라면 차라리 그런 직업을 갖지 않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그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입니다. 연골저하증(왜소증)을 가진 그는 미모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합니다. 미모의 성장 과정은 거칠고 비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의 생활은 때로 어둡고 부도덕하기도 합니다. 그의 천재성은 타고난 것으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역사의 예술적 혈통에서도 물려받았습니다. 궁극적으로 그의 삶의 모든 고통은 그의 존재, 판단력, 마음, 그리고 비올라와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킵니다. 신체적인 한계를 갖고 있던 미모와 자아실현과 성취에 대한 욕구를 가진 비올라의 관계는 강렬하고, 그들의 사랑과 우정은 강력합니다.
미모의 경력은 오르시니 가문의 도움으로 시작되었고, 이탈리아 파시즘의 부상은 그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파시스트들이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조각품을 주문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으며, 파시즘 하에서 고난을 받게 됩니다.
많은 문장들이 마음에 다가왔지만, 그중 일부, 소설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사제는 그 말에 담긴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놀라울 정도로 잘 지내고 있죠. 그녀를 볼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야.... p.47
“미모, 나는 네게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위로도 아래로도, 큰 것으로도 작은 걸로도. 모든 경계는 만들어 낸 거야. 마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 하고 하는지 알아. 내 가족조차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알고.
난 상관 안 해. 모두가 네게 반대하면 네가 올바른 길에 들어선 것임은 알게 될 거야 “... p.199
차츰차츰, 점점 더 많은 책이 쏟아졌다. 가끔은 그루터기 안에서 세 권이나 되는 책을 발견했고, 나는 그 자리를 지난주에 읽은 책들로 채웠다. 나는 해가 지자마자 그 책들을 읽어 치웠고 이름, 날짜, 수도, 이론, 개념들을 외웠으니, 햇볕 아래 내놓고는 잊어버렸다가 물에 담근 스펀지 같았다.... p.119
“넌 꿈이 없니, 미모?”
“아버지는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하셨어. 꿈은 실현되지 않아. 그래서 꿈이라고 부르는 거지”
“그런데 꿈은 있고?”
“그럼,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시면 좋겠어. 아름다운 꿈이지, 그건”
“그리고 또”
“위대한 조각가가 되는 것”
“그게 실현될 수 없다고?”
“날 봐. 난 주정뱅이 밑에서 일해. 그리고 짚 더미에서 잠을 자지.
돈이라고는 있어 본 적이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면 웃고 싶어 한다고”.. p.142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조각하는가가 아니야. 왜 그것을 하는가이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봤니? 그게 뭘까, 조각한다는 게?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 돌을 쫀다>라는 답은 하지 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잖니”
스스로에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던 질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었고, 나는 아는 척하지도 않았다. 메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조각을 한다는 게 뭔지 깨닫는 날, 넌 단순한 분수대만으로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할 거다. 그동안, 미모, 충고 하나 하지.
인내하라.
이 강, 변함없이 고요한 이 강처럼 말이야.
이 강, 아르노강이 화를 낸다고 생각하니?”... p. 258
“모리셔스섬의 드론테가 뭔지 알아?”
“아니”
“도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면?”
“오, 새지. 그렇지?”
“사라진 새지. 그리고 날지 못한다는 게 그 특성이고. 나는 도도 새야.
미모,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무덤에 눕고 허공으로 뛰어내리는 비올라가 아니라고 나를 원망하는 거 알아. 하지만 도도 새는 바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졌어. 너무 쉬운 먹잇감이었던 거지. 사라지고 싶지 않으면 나 자신을 잘 돌봐야 해”
... p.419-420
어머니가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렸고, 아직도 바래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보랏빛 불길로 내 눈을 삼켜 버렸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만약 전부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겠지. 미모, 네가 단 한 번도 틀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넌 신인 거야. 네게 품은 그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신을 낳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p.422
“잘 들어라. 조각한다는 건 아주 간단한 거야. 우리 모두, 너와 나 그리고 이 도시 그리고 나라 전체와 관련된 이야기, 훼손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그 이야기에 가닿을 때까지 켜켜이 덮인 사소한 이야기나 일화들을,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 내는 거란다. 그 이야기에 가닿은 바로 그 순간 돌을 쪼는 일을 멈춰야만 해, 이해하겠니?”... p.613
소설 속에서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대성당 한가운데 놓여 모든 이의 눈길을 받으며 신성의 상징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젊은 성모가 죽은 아들을 품은 그 장면은 인간의 고통을 승화해 기독교적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고전적 아름다움 속에 고통의 성스러운 차원을 담아냅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1498~1499), 성 베드로 대성전 (사진 출처: 위키피아)
반면,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속 미모의 피에타는 수도원의 차갑고 어두운 지하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금기의 성물처럼,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존재합니다. 왜소한 몸으로 세상의 조롱과 차별을 견뎌낸 조각가가 남긴 이 피에타는 인간의 기억과 사랑, 존엄과 자유를 증언하는 조각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구원은 신에게서 온다”라고 말한다면, 미모의 피에타는 “구원은 우리가 서로를 지켜낼 때 가능하다”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하나는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초월의 세계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상처 난 현실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한쪽은 신성의 질서 속에서 영원히 고요히 잠들어 있고, 다른 한쪽은 저항과 사랑의 흔적 속에서 불완전하게 살아 있습니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1971~ )는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해 네 번째 장편소설 《그녀를 지키다》로 2023년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콩쿠르 상 외 프랑스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소설은 조각가 미모의 성장과 비올라와의 관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시대의 고난과 억압과 역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길고 서사적인 작품이지만, 독자마다 호불호가 갈리고, 영화화 소식이 들려오는 만큼 “문학적 여백”이 영상 속에서 얼마나 구현될 수 있을지 기대와 궁금증을 낳습니다.
“그녀를 지킨다”는 말이 은밀하면서도 다양한 의미로 스며들며,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해석의 여운을 남깁니다. 그것은 마치 흐릿하게 인쇄된 표지의 그림처럼, 보는 이마다 다른 의미와 감정을 비추어내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녀를 지키다”라는 제삼자의 입장이 아니라, “나”라는 1인칭 화자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를 지킨다”라니.
무엇으로,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