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고 요염한 유혹

by 윤재

위험하고 요염한 유혹과 게으른 방관자


크루즈 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과 새로운 문화 체험을 넘어서,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음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크루즈 여행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유혹은 바로 ‘음식'입니다.


다양한 국적의 요리와 고급 레스토랑, 그리고 매일 바뀌는 특별한 메뉴 등은 크루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입니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그 자체로 낭만적이고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만들어 줍니다. 저녁 식사를 즐기며 바다의 일몰을 감상하거나, 야경 속에서 고급스러운 코스 요리를 맛보는 경험은 크루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 중 하나입니다. 또한, 크루즈의 레스토랑은 종종 테마가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열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바비큐 파티, 이탈리안 나이트, 해산물 뷔페 등은 승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합니다. 크루즈의 각 식당과 뷔페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다양하고 맛이 훌륭합니다.


영국의 도버에 기항하는 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캔터베리로 갔습니다. ‘작은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로마 시대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는 도시입니다. 영국 교회의 정신적 중심추가 되고 있는 1,4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캔터베리 대성당은 회색의 웅장한 건물인데 입장료가 매우 비쌉니다. 제가 체감하는 가격으로는 성 오거스틴 수도원 역시 입장료는 높습니다.


16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였으며 셰익스피어에게 영향을 준 크리스토퍼 말로의 출생지이기도 합니다. 연극 공연이 상연되는 ‘말로 극장 Marlower Theater’는 잘 정비된 공간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기울어진 외관으로 유명한 책방도 캔터베리 대성당 근처에 있는데 이 지역에는 켄트 지방의 전통 건축물들이 예쁘게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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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로 드나드는 길목을 지키는 것처럼 우뚝 위용을 자랑하는 투박하고 둥근 모양의 웨스트게이트 타워 옆으로는 맑고 투명한 수로가 흐르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탄 작은 배들을 밀짚모자를 쓰고 빨간색 점퍼를 입은 젊고 건장한 청년들이 천천히 노 저어 가고 있습니다. 운하 제방 주위로는 작고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다양한 꽃들과 푸른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주변의 건물들과 함께 동화 속 그림 장면 같습니다. 인스타 사진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포토존으로 찾는 곳입니다.


중세 시대의 성지순례지인 캔터베리가 영국의 정신적 지주와 영국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것이 이해가 되는 곳입니다. 음식점과 기념품 상점, 오래된 사탕 가게나 카페, 갤러리 등이 켄트 전통 건물들에 위치하고 있어 거리를 걸으며 바라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걷다 보니 출출해졌습니다.

잔칫날이나 생일, 명절에 제공되는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지요. 장성한 자녀들의 혼사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언제 국수 먹여주는가? “라는 인사말이 오가기도 하고, 국수의 긴 가닥처럼 장수를 기원하며 생일에는 국수를 먹기도 했지요. 밀가루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우리는 쌀국수를 좋아합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베트남 국수 식당의 가격표를 보고 있는데 청소년 2명이 다가와 설문 중인데 잠깐 시간을 내줄 수 있는지 묻네요. “잠깐이라면 어느 정도?” 인지를 물으니 2초면 된다는군요.

오호 귀여운 녀석들.

어찌 아무리 간단한 설문이라도 2초가 가능할까?

여하튼 녀석들의 한 발자국 들어내어 밀기는 성공, “오케이”


설문은

멕시코 음식을 좋아하는가?

음식 가격은 어느 수준을 선호하는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가?

등의 질문이었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답변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둥하더니 “김치는 매운 것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하여 “white 김치도 있다”라고 말해 주었지요. 한국의 김치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고, 약 2,00 종이 넘는다고. 젊은 세대 중에는 매운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매운 음식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해 주었습니다. 김밥도 맵다고 하길래 무엇을 속 재료로 넣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주었지요. 그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한국 음식 = 매운 음식”으로 알려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music, K-beauty, K-drama & K-movie에 이어 K-food가 유행 중이지요. 최재천 선생님은 ”통증인 매운맛에 익숙해지는 세계“라면서 전 세계인들이 통증에 익숙해지는 경향을 주시하기도 했습니다.


크루즈의 뷔페식당에는 몽골리안 음식, 인디언 음식, 그리스 음식, 스페인 음식, 아메리칸 음식 등과 같이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이 제공되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아직은 우리 음식이 제공되지는 않습니다. 그중 아시아 음식 중에서 ”초밥 데이“는 저희가 기다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일본 라면과 초밥, 회가 제공되거든요. 정찬 식당의 애피타이저 메뉴에도 가끔 초밥이 나오는데, 김밥 3개와 김치 2조각이 나옵니다. 포장 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 김치는 많이 숙성되어 신김치지만 반갑게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초밥이라고 제공되는 김밥의 밥알은 고슬고슬하지 않고 질척하고 미끈거립니다. 우리는 초밥을 먹으면서 일본인 조리사한테 초밥 밥 짓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쉬움에, TV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오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초밥을 먹던 재벌 회장이 묻습니다.

”몇 개고? “

”밥알 말이다 몇 개고? “

조리사: ”생선과 밥알 모두 15그램을 정량으로 하고... “

”그래서 몇 개? “

”320개다, 훈련된 초밥 장인이 한 번 초밥을 쥘 때 보통은 이 밥알이 320개다 “

”점심 식사에는 뭐 320개가 적당하다 캐도 오늘 같은 날이나 술 하고 같이 낼 때는 280개만 해라, 어이? “ 라는 대사가 생각납니다.


전기밥솥에 물에 불은 쌀을 넣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기계적으로 밥을 짓고 그 밥을 뭉쳐서 초밥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여하튼 우리가 탄 크루즈의 초밥의 밥알은 질겼습니다.

사랑이 부족해서일까요..........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 김승희, <새벽밥>


고슬고슬한 쌀밥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영국 출신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가 83세 그 원숙한 나이에, “ 삶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음식과 사랑이며, 예술의 원천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먹을 기회가 거의 없지만, 크루즈 생활 중에 제가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가 랍스터 구이입니다. 주로 formal night에 제공되는 데 초기 formal night에 나오지 않고 테이블에 놓였던 아름답던 꽃도, 객실로 매일 제공되던 초콜릿도 없어서 코로나 기간에 어려움을 겪더니 프린세스 크루즈가 박해졌다고 그동안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크루즈 선사가 급해졌다고 농담 삼아 말했지요.



그런데 랍스터가 노예나 하인, 죄수들의 음식으로 제공되었다는 글들이 몇몇 책에서 제시되고 있어요. 과거에는 저렴한 식품이었던 랍스터가 현대는 고급 해산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랍스터는 지능지수도 높아 애완용으로도 기르기도 한다는군요. 랍스터 눈을 보지 않게 뒤집어 놓은 상태로 서빙되는 랍스터는 불 맛과 고소한 풍미가 더해져 촉촉한 속살이 쫀득쫀득하고 레몬즙 아래서 신선한 맛을 자랑합니다. 웨이터가 능숙한 솜씨로 랍스터 등 껍질을 벗겨주면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됩니다.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건강한 해산물인 랍스터를 만나는 날은 저는 더욱 음식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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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밥 속에도 사랑이 무르익듯이, 맛있게 담겨 있는 음식 앞에서는 제 연약하고 부실한 통제 기능은 무장 해제됩니다.

그렇습니다.



크루즈 내에서 제공되는 온갖 먹거리들을 자제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갈등하고 수없이 협상을 합니다. ‘조금이라면 괜찮을 거야. 지금은 휴가 중 그것도 크루즈니까, 먹고 나서 운동 열심히 하면 될 거야’ 등등 많은 달콤한 유혹의 말과 협상의 말들이 찰나에 오갑니다. 오늘도 점심의 경우는 1/2 파니니(온전한 파니니는 양심상 택하지 않고)를 먹었고, 저녁은 타이식 스프링롤, 메인은 관자와 초리조(스페인 소시지)에 후식은 살구와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점심도 저녁도 후식에 아이스크림이 빠지지 않으니 살이 안 찌면 이상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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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뿐만 아닙니다. 만나는 여자 승객들도 다 같이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너무 먹었다고, 맛있게 먹었다고. 이 뱃살을 어찌할 거냐고.’



늘어나는 옆구리살과 뱃살을 보며 김경훈 시인의 <운동 부족> 생각났습니다.


<운동 부족 1> 김경훈


당연히

운동 부족이죠

그 탱탱하던 탄력은 어디로 갔나요

나이 탓이 아니에요

운동 부족이라니까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운동은 또 뭐냐고요

변명은 쓸데없는 군살을 늘릴 뿐이에요

정확히 말해서

당신은 게으른 방관자예요

단식을 겁내는 아랫배의 식욕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하세요

모든 것 훌훌 털고

피를 짜 내는 긴장

탄탄한 짜임으로 살아

땀나는 노동을 하세요

살길은 이것뿐이라니까요

운동을 하세요



그렇군요, 살길은 운동뿐이라는군요.

진정한 욕구, 강력한 욕망, 식욕을 어찌하겠습니까?

맛나게 차려진 음식은 그 무엇보다도 위험하고 요염하게 유혹합니다.

오늘도

저는 졌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내일도 계속 후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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