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인이라는 주장을 검증하려는 독일군 장교의 질문입니다.
독일 작가 볼프강 콜하제(Wolfgang Kohlhaase)의 소설 <언어의 발명, Erfindung einer Sprache>을 기반으로 한 바딤 페를만(Vadim Perelman) 감독의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Persian Lessons>을 보았습니다.
사진들 출처: IMDb
영화감독 바딤 페를만(Vadim Perelman)은 “이야기의 세부 사항은 허구지만, 당시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 실제 사례들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감독 바딤 페렐만의 이 영화는 배역들의 몰입도 높은 뛰어난 연기력과 영화 전반을 묘사하고 있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침잠된 색상인 회색·청색·갈색 톤이 감정적 공허와 절망, 억압된 인간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수척한 얼굴과 푸른 눈동자, 두려움에 가득 찬 멍한 표정, 생존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인물을 왜소한 체격의 나우엘 페레스 비스카야트는 완벽하게 구현해 냅니다. 영화 속 겨울과 추위는 생존과 인간성 회복이라는 내적 싸움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며 영화를 보는 내내 서늘하게 합니다.
1942년 랍비의 아들인 질(나우엘 페레스 비스카야트 분)은 스위스로 탈출하려다 붙잡혀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이송됩니다.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트럭을 타고 끌려가던 중에 옆에 앉은 배고픈 유대인이 주인공 질에게 샌드위치 반쪽과 자신이 가진 값진 페르시아 책 초판본을 교환하자는 제의에 마지못해 응합니다. 책의 카버 안쪽에 ‘레자 준에게 ‘바바’가 주었다는 서명이 있었고, ‘바바’는 페르시아어로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사살당한 위기에 처하자 주인공은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소리칩니다. 마침 독일군 대위 클라우스 코흐 (라르스 아이딩어)가 페르시아인을 찾아오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 군인들은 질을 살려서 수용소로 데려옵니다.
‘질’은 생존을 위해 페르시아어 단어를 조합해 내 ‘코흐’에게 매일 밤 거짓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야만 합니다.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에서 질이 만들어낸 언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페르시아어가 아니며, 어떤 민족의 역사도, 문법도, 문화도 갖지 않습니다. 조합한 가짜 단어를 ‘언어’로 저장한 게 아니라 ‘비상용 생존 장비’로 저장한 것으로 주인공의 전략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주인공 질의 행동은 단순한 학습이나 언어 암기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정보 처리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조합한 단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질은 처절하게 노력합니다.
왜 시험 공부한 건 금방 잊어버리는데 어릴 때 위험했던 순간은 평생 기억날까요?
왜 “이건 꼭 기억해!”라고 다짐한 것보다 “큰일 날 뻔했던 일”이 더 선명할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적응형 기억 이론(Adaptive memory:survival processing enhances retention, Nairne et al., 2007)은 “왜 엉터리 단어도 뇌에 강하게 각인되는가”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이론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페르시아어 수업〉에서 주인공은 인간 기억의 본질이 살아남는 것과 연결될 때 비정상적으로 강력해진다는 적응형 기억 이론을 극단적 상황에서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단어를 생존과 관련된 맥락에서 처리할 때(예: 야생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하다고 상상하며 평가할 때) 그 단어들이 다른 학습 조건(예: 이사, 의미 판단 ) 보다 훨씬 잘 기억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였습니다. 연구진들은 생존과 관련된 정보는 뇌에서 우선순위가 높게 처리되고, 이는 단순한 반복이나 의미 판단보다 기억 유지에 강력한 효과가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였습니다.
주인공이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기억과 공포를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죽음의 혼란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정신적 방어기제입니다.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이름에서 앞자리 또는 뒷자리에서 단어를 조합하고 기억하는 과정은 거짓말로 시작했지만, 기억과 언어를 통해 인간 존엄을 지켜낸 인물이며, 생존 그 자체가 저항이 되는 존재입니다. 음절을 조합하고, 기억하기 쉬운 방식으로 엮는데, 식당 메뉴, 죄수들의 이름, 눈앞에서 사라진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언어의 재료가 됩니다.
독일군 장교 코흐는 나치 체제의 전형적인 관료형 인간으로 등장합니다. 감정보다 질서·규칙 체계를 중시하며, 수용소라는 비인간적 공간에 잘 적응한 인물입니다. 부하들에게는 권위적이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페르시아어를 배우며, 코흐는 처음으로 타인을 ‘도구’가 아닌 ‘교사’로 대하는 경험을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점차 인내를 배우고 때로 실수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며 아주 미세하지만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남았지만, 내면에는 공허와 불안을 안고 있는 인물이며, 질을 통해 잠시 인간성을 스쳐 지나가지만 끝내 완전히 각성하지는 못한 인물입니다.
코흐는 언어를 ‘소유’하려 했고, 질은 언어로 ‘기억’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질이 만든 언어는 거짓이지만, 그 언어로 나눈 감정은 진실입니다. 공포, 희망, 외로움, 꿈—그 모든 것은 허구의 단어 위에서 피어난 진짜 감정입니다.
나치당에 대한 신념이나 지지보다는 절박한 가난을 벗어나 먹고살기 위해 입당한 ‘코흐’!
영화 속 코흐 대위는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나치즘의 광적인 신봉자가 아니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체제에 편입된 사람입니다. 그는 질에게서 배우는 언어—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통해 동생이 있는 테헤란에 가서 식당을 운영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시를 짓고, 잠시나마 인간적인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인간적인 공간인 수용소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은 둘만이 아는 언어로 마음을 나누는 순간에 발생합니다.
코흐 대위는 질에게 배운 새로운 언어, 그가 믿고 있는 페르시아 단어로 시까지 짓고, 페르시아어 과외 선생인 질의 칭찬까지 받고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는 결국 2,840개가 됩니다.
하루하루 쌓인 거짓말.
그러나 그 거짓말은 이상하게도 점점 ‘말’처럼 작동합니다.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제3의 언어로 적힌 문장.
가장 비인간적인 장소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진짜가 아닌 언어로, 진짜 감정을 말하는 장면.
매일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지긋지긋하다는 ”질“
질의 거짓말이 실패하면 결과는 곧바로 죽음입니다.
그에게 언어는 매일 검증되었고, 매일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반면 영화와 달리 현실 세계를 잠시 돌아보면, 정치인의 언어는 실패해도 곧바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생존을 위한 것인가, 성취를 위한 것인가?
오히려 더 정교한 언어, 더 감각적인 수사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거짓이 누적될수록 언어는 책임에서 멀어지고, 현실은 언어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질이 만들어낸 언어는 마지막에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완성됩니다.
그 언어의 어원이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거짓은 비로소 기억이 됩니다.
언어가 다시 인간의 것이 됩니다.
이처럼 정치의 언어에도 이와 같은 장면이 필요합니다.
언어가 책임을 만나는 순간,
약속이 기억으로 환원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