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옆으로 거센 파도가 부딪히며 물보라가 튀었고, 귀를 스치는 바람은 마치 속까지 흔드는 듯했습니다. 바람 소리는 귀에 감기듯이 스치고, 그에 맞춰 배가 흔들리고 마치 깊은숨을 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배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파도의 리듬은 여행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파도가 평상시보다 강하게 부딪칠 때는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주위의 승객들도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긴장을 풀려했지만, 가끔씩 파도에 눈길을 주며 이 또한 여행의 한 부분임을 알아차리는 것 같았습니다. 바다의 힘이 온몸으로 전달되며, 바다의 움직임 속에서 나의 작은 존재를 실감하게 되었지요. 그동안 우리가 경험 한 크루즈는 얌전한 바다만 항해하던 것이었나 봅니다. 특히 우리가 좋아하는 노선인 지중해 크루즈는 아주 잔잔했으니까요.
모리셔스의 포트루이스를 거쳐 이틀간 케이프타운에 정박하는 날입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케이프타운 기항이 지연되었지요.
아프리카 대륙은 미국의 세 배 정도의 크기로 큽니다. 전체 지구 육지 면적의 약 5분의 1 정도를 차지합니다.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대륙의 남단에 자리해 무역이 발달하고, 해안평야도 있습니다.
남극해, 남극대륙과 가까이 있어서 신선한 기후를 지니고 있고,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한달 살기 좋은 해외 여행지 목록에 케이프타운이 선정되기도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내게 있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권과 평화의 아이콘으로 널리 존경을 받았던 넬슨 만델라와 구본형 선생이 쓴 <깊은 인생>에서 마하트마 간디의 일화가 기억나는 곳이었습니다. 27년간의 감옥 생활을 통해 인내와 용기의 상징이 되고, 민주화의 길을 걸었고,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을 하였으며 1994년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화해와 단합의 메시지를 전했던 ’ 아프리카의 아버지‘라 칭해졌던 넬슨 만델라.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893년 마리츠버그역에서 유색인으로서 심각한 인권 차별을 경험하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차 여행 중 1등석 티켓을 구매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에 의해 강제로 3등석으로 내쫓혔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켰습니다. 이후 그는 유색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인도인 보호 협회'를 창립하고, 다양한 법적 조치를 통해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에 나섰습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비폭력 저항 운동의 기초를 다졌고, 이는 후에 인도의 독립운동에서도 중요한 원칙이 되었고, 비폭력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철학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이 아시아로 항해할 때 반드시 지나가게 되는 길목인 케이프타운은 인종 차별과 심각한 빈부 격차의 문제를 갖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입법 수도인 케이프타운은 어머니 도시(The Mother City) 혹은 바다의 선술집(Tavern of the Seas)이라는 별명을 가지고도 있답니다. 행정, 사법, 입법 3개의 수도로 구분된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은 17세기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도착한 이래로 중요한 항구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바람의 끝’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는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역로의 중심지로,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곳입니다. 케이프타운은 테이블 마운틴이 상징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 그 경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테이블 마운틴과 대서양의 푸른 바다의 경관뿐만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원색적인 색들로 칠해진 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 흑인 거주 지역의 역동성이 보여주는 문화적 풍경은 다양한 인생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식민지 시대의 유산,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상징적 장소로 남아 있으며, 지금은 인종 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그 상처와 좌절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보입니다. 성장 과정의 고통과 상처를 극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현실은 가난과 폭력과 증오가 존재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코미디언이자 정치 풍자 뉴스쇼 진행자인 트레버 노아는 인종차별정책이 시행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스위스인 백인 아버지와 코사족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흑인과 백인 간의 결혼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시절에 태어난 트레버 노아는 그의 자전적 에세이 <태어난 게 범죄>에서 “세상은 나를 유색인으로 봤지만, 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살지 않았다.”라고 기술합니다.
어렸을 적 길을 갈 때에는 엄마와 나란히 걷지도 못했고, 집 밖에서 아버지를 만나도 아는 척을 못했답니다. 흑인 인구는 백인에 비해 거의 다섯 배나 많았지만, 백인들은 여러 부족을 분열시키고 서로 증오하게 조장하면서 백인들의 특권을 유지하려고 하였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흑인들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백인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책에서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흑인 구역에서는 백인으로, 백인들과 어울릴 때는 아웃 사이더로 지낼 수밖에 없던 그는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버티어 냅니다. 약자들끼리 서로 분열하고 증오하게 만드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하에서 트레버는 줄루어, 코사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상대방에게 다가갑니다. 넬슨 만델라는 “ 상대가 이해하는 언어로 말하면, 그 말은 상대의 머리에 전달된다. 하지만 상대의 언어로 말하면, 그 말은 상대의 가슴에 전달된다”라고 했습니다. 친화적이고 유연한 트레버의 대인 접근 태도는 그의 엄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엄마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며 매우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종종 매를 들기는 했지만, 아들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인 트레버에게 “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고통이 아들을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두거나 비통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현재 케이프타운은 관광, 예술, 음악, 음식 문화의 중심지로,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며 독특한 문화적 다양성을 자랑하고, 현지 민속 음악과 춤은 그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생동감 넘치는 표현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시로, 그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현대 사회는 여전히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률은 심각한 문제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변화와 희망을 갈망하고 있지만, 교육과 직업 기회가 불균형하게 분포되어 있어 사회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하게 되면, 그 지역 주민들이나 민속 악단이 환영 인사의 뜻으로 연주나 댄스를 공연하곤 하는데 여기도 알록달록한 전통 의상에 장식이 가득한 모자를 쓴 악단원들의 신나는 연주가 크루즈의 기항을 반기고 있습니다. 그들의 경쾌하고 즐거운 연주도 흥겹지만 그 옆에서 staff 이란 글씨가 새겨진 붉은색 조끼를 걸치고 하역 작업을 하려는 현지인들이 악단의 연주에 맞춰 댄스를 하는데 어찌나 유연하고 리드미컬한 상체와 히프 움직임이 흥겹던지요. 망원경을 들고 건너편 table mountain을 보고 있는 남편의 허리를 꾹꾹 찔러 저 청년들의 댄스를 보라고 알려주었지요.
테이블 마운틴은 1,085m의 돌산인데, 케이프타운 어디에서도 보이는군요. 케이프타운 거주민들은 이 산을 바라보며 마을을 굽어살피는 자애로운 엄마로 인식하였으며 케이프타운의 별칭인 ‘어머니의 도시’로까지 불리게 되었답니다. 이 테이블 마운틴은 제주도와 함께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케이블카가 운영되고 산 정상에는 폭 3km의 평지가 마치 식탁처럼 펼쳐져 있다고 하는데 저희는 다른 투어 일정이 있어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크루즈 터미널에서 진행되는 남아프리카 입국 심사 과정은 매우 더디게 진행이 되어 지연된 기항과 더딘 입국 심사로 첫날 기항지 관광은 취소되었고 다행히 둘째 날에 사파리 투어를 할 수 있어 되어 케이프타운에서 왕복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이동해 푸르른 언덕과 모래 둔덕이 어우러져 있는 곳에서 사파리를 경험할 수 있었답니다. 투어버스 외부는 깔끔하지만 내부의 안전벨트는 고장이 나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팔걸이가 고장 나 있었고, 운전 중에 거슬리는 – 엔진이나 부품이 부서지는 파열음이 – 계속 들려 무사히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기를 기도했답니다. 국립공원이 아니고 민간이 운영하는 곳이라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보는 동물의 왕국 같은 야생의 역동적이며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지요. 동물들을 방목 사육하고 사파리용 지프 차량으로 관람객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이곳저곳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Game이었지요. 몸집이 큰 코끼리, 물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하마, 영양, 목이 정말 긴 기린과 타조, 코뿔소, 얼룩말, 들소, 우리를 멀리서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사자, 스프링복, 원숭이들 등을 볼 수 있었답니다.
코끼리가 멀뚱히 서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수천 년 전부터 코끼리를 길들여 이용했지요. 카르타고를 대표하는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제국을 공포에 빠뜨리기도 했고, 지금도 벌목장에서는 코끼리를 이용해서 무거운 통나무를 운반하고 있고, 서커스에서는 곡예를 펼치기도 합니다. 3살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성이 동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그룹에 속한다고 합니다.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코끼리들의 경우, 대규모 밀렵 이후 태어나는 암컷 코끼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상아가 없거나 매우 작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영국 켄트대 연구진들은 “밀렵꾼들이 큰 상아를 노리다 보니 내전 당시 상아가 없거나 작았던 소수의 코끼리들만 밀렵에서 살아남아 짝짓기를 할 수 있었고, 그 새끼들이 유전자를 물려받아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점점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크고 튼실한 상아를 가진 코끼리가 수십 년간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면서 최근 코끼리들이 상아가 없는 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저 코끼리는 선조들의 사연을 알고 있을까요?
생애 첫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로 기대와 설렘이 있었지만, 우리가 방문한 곳은 전통적인 사파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아프리카 현지에서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리조트 겸용의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웰컴 드링크로 와인을 제공하는데 와인 마시는 것은 건너뛰었고, 점심까지 포함된 고비용의 투어였습니다.
저녁 극장 show에는 남아공 악단과 민속 댄스 팀이 출연하여 아주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공연팀의 공연 뒤의 배경에는 원색적이고 토속적인 풍경, 그림이 배경으로 제시되어 한층 더 흥미로운 공연이 되어 즐거움을 배가 되었답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에 돌이켜 생각하니, 귓가에 둥둥둥 북소리가 들리며 그 소리가 심장 박동을 부추기네요. 북소리가........
민속 악단과 댄스 팀의 공연이 시작되자, 주변은 즉각적으로 생동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악단의 연주가 시작되자, 전통 악기들의 고유한 소리가 어우러져 리드미컬하게 퍼져나갔습니다. 드럼의 비트는 가슴을 두드리며, 각종 타악기들이 화음 속에 조화를 이루어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댄서들이 알록달록한 전통 의상을 입고 등장하자, 그들의 발놀림은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경쾌하고 유연했습니다. 강렬한 색감의 의상은 태양 아래 빛나며,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리듬에 맞춰 정교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발을 딛는 소리가 바닥에 울려 퍼지며, 주변 관객들은 그들의 에너지를 느끼고 저절로 박수를 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 댄서는 회전하며 손을 하늘로 쳐드는데, 그 순간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그의 미소와 표정에서 느껴지는 열정은 공연의 흥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그와 함께 다른 댄서들은 다양한 동작을 선보이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공연의 마지막에는 모든 댄서가 무대에 모여 손을 맞잡고 화합의 상징적인 동작을 하며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 순간, 음악과 춤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조화가 관객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았음이 분명합니다.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역사적 배경과 현대 사회의 복잡한 이슈를 갖고 있는 케이프타운에서의 이틀을 마무리하고 배는 떠납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철폐되었지만, 자본이 없는 흑인들은 빈곤의 악순환에 놓여있고, 실질적인 차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동시에 지닌 도시 케이프타운, 넬슨 만델라와 마하트마 간디를 생각하게 하는 이곳의 여정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장소로 기억될 것입니다. 도시의 좌우명이 희망(Good Hope)인 것처럼 어머니 도시 케이프타운의 미래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