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쌍곡선

by 윤재

“3월의 교정은 희비쌍곡선이다.”


중학교였는지 고등학교였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기억은 3월 새 학기처럼 초기화되었어요. 아무튼 아침 조회 시간, 수필가로도 활동하시던 국어 선생님이 교단 위에서 말씀하셨지요.


“3월의 교정은 희비쌍곡선이다.”


그때는 솔직히 ‘쌍곡선’이 더 무서웠을지도 모릅니다. 수학도 어려운데 감정까지 곡선이라니.

인생이 왜 이렇게 기하학적인가 싶었지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3월은 정말로 웃음과 눈물이 한 그래프 위에서 동시에 춤추는 달이 됩니다.


전근 가시는 선생님, 새로 오시는 선생님.
교복이 아직 빳빳한 신입생들.
들뜬 얼굴과 울먹이는 얼굴이 같은 운동장을 공유하던 계절.


그래서일까요. 3월이 오면 나는 아직도 그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희비쌍곡선(喜悲雙曲線)”



지금 나에게 ‘희’란 어떤 것일까요?

무엇보다 무거운 겨울옷을 벗을 수 있다는 것.
패딩옷을 벗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인간으로 복귀하는 기분.
겨울 동안 나는 약간 ‘움직이는 이불’에 가까웠습니다.

우선 추운 것이 싫었거든요. 무거운 옷도 싫고.

이젠 웅크림 모드 해제.


어깨를 펴고 걷으면 괜히 보폭도 넓어질 것 같네요.
날씨가 풀리면 마음도 자동 업데이트가 되는 줄 알고 있는 저를 봅니다.


그리고 꽃.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피어나는 꽃들.

연초 계획표도 아직 다 못 채웠는데(하긴 무의미한 면이 많긴 하지만), 이미 만개를 준비하고 있겠지요.

조금 부럽지만 예쁘니까 봐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월의 가장 큰 ‘희’는
“이번엔 진짜”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 용기일 것 같습니다.

1월의 다짐이 조용히 실패했어도,

2월이 아차 하는 순간 지나가도,
3월은 다시 기회를 주니까요.


봄은 의외로 자비롭습니다.
인생이 한 번 더 리셋되는 느낌.

조금 더 회춘되는 듯한 이 엉뚱한 기대감.



그런데 ‘비’는?

이제 더 이상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

“추워서…”
“연초라서…”
“명절 지나고 나서…”

이 모든 방패가 2월과 함께 사라집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게으름은 갑자기 죄가 되기도 합니다.

두꺼운 옷 속에 숨겨두었던 뱃살도 은근히 심술궂은 존재감을 드러내겠지요.

여행 이후 게으름 모드였다 보니 이젠 얼굴도 완전 보름달빵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나...........


봄은 생각보다 솔직한 계절입니다.


그리고 미루어둔 일들.
‘곧’, ‘조만간’, ‘여유되면’이라고 이름 붙여 둔 계획들이 3월 햇살 아래에서 선명해질 테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희와 비가 함께 있다는 건 아직 내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아무 기대도 없으면 기쁨도 없고,
아무 애정도 없으면 낙담이나 슬픔도 없겠지요.


어쩌면 3월은 묻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또 시작할 거지?”


속는 셈 치고 또 믿어볼까요.

올해 3월은 다를 거라고.
이번 봄은 조금 더 단단해질 거라고.


아마 내년에도 같은 말을 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희비쌍곡선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분명 살아 있고, 조금씩 달라질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패딩옷은 다시 입지 않아도 되니까.

그걸로도
3월은 충분히 가볍고 기쁘겠지요.



시인은 3월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나,

한번 들여다봅니다.



삼월

- 오규원


삼월에 신은 남쪽

물결을 타고 온다.

봄에 일할 家僕들은

양 허리에 끼고,

해변의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의 서류를 갖춘다.

결재가 날 동안

나무들은 예산을 끝내고

들은 목책을 헐고

부드러운 바람은 방목한다.

아, 배태의 순간은

뜰 위에 방학이 내려와 노닥거리는

학동의 마을이다.

신이 웃고 있는 곳에

심상이 간지러운 보슬비는

내리고.


-- 오규원, 『분명한 사건』, 문학과 지성사,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