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를 보내며

by 윤재

2025년 6월부터 읽기 시작한 영어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이제 곧 덮습니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나는 하늘을 먼저 떠올렸지요.


개츠비가 죽고, 소설의 화자이며 참여자인 닉(Nick Carraway)은 동부를 떠나려 합니다. 그가 바라본 웨스트 에그의 밤은 맑지 않습니다. 공기는 눅눅하고, 달빛은 힘이 빠져 있습니다. 집들은 그대로 서 있는데도 어딘가 기울어 보이고요.. 파티가 끝난 뒤의 정적처럼, 음악이 멈춘 자리에는 텅 빈 잔과 흩어진 웃음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우울하게 내려앉은 하늘, 빛을 잃은 달, 현실 같지만 어딘가 비틀린 웨스트 에그의 풍경.

닉은 그것을 엘 그레코의 밤 풍경에 비유합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자연스레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의 그림 <톨레도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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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톨레도 풍경>, 1597-99, MET



그림 속 하늘은 곧 비가 쏟아질 듯 뒤틀려 있습니다. 구름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서로를 밀어내며 엉켜 있습니다. 도시의 건물들은 또렷하지만 어딘가 낯설게 다가옵니다. 땅은 단단해 보이는데도 금이 갈 것처럼 긴장되어 있고요. 현실의 톨레도가 아니라, 화가의 내면과 신앙적 비전을 반영한 영적인 톨레도라고 평가되고 있는 그림으로, 무겁고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꿈틀거리는 언덕을 통해, 이 이미지는 마치 꿈이나 환각과도 같은 어떤 변형된 상태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오래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숨이 조금 얕아졌습니다.



소설 속 동부의 풍경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샴페인이 넘치고, 자동차가 줄지어 서 있고, 음악이 밤새 흘러나오는 집.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소문을 흘리고, 누군가는 취한 채 계단에 기대 잠이 듭니다. 아침이 되면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모두 조용히 사라집니다.

화려했지만 단단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츠비는 그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잔을 들고, 늘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는 이미 많은 것을 가졌지만, 단 하나를 얻지 못했습니다.



데이지!


데이지를 다시 만나던 날, 그는 유리잔을 떨어뜨릴까 봐 안절부절못합니다. 비가 쏟아지던 오후, 개츠비가 데이지를 만나기로 했던 닉의 집 거실에는 꽃향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붙들고 싶었던 것은 향기도, 그의 화려하고 거대한 저택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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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IMDb



과거의 어느 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어쩌면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사람을 사랑했다기보다, 그 시절의 빛을 사랑했던 것 아닐까요.
그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또 그 말은 단호했지만, 어딘가 위태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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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이고 무책임한 “데이지”.

"목소리가 돈으로 가득 차 있다"는 데이지.

그녀는 선택의 순간에서 사랑보다 안정, 감정보다 구조적 안전을 선택하는 인물이지요. 남편 톰을 떠날 용기가 없는 그녀는 개츠비의 열정 앞에서 흔들리지만, 결국 과거의 질서로 돌아갑니다. 이는 단지 비겁함이라기보다, 체제 안에서 살아남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데이지는 욕망을 갖고 있지만, 그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일 힘은 없으며, 스스로 결단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그녀의 심리는 불안정하고, 외부의 힘에 의존합니다. 늘 “누군가의 세계” 안에 머무는 데이지는 악인이기보다는 공허한 시대가 만들어낸 불완전한 인간의 하나입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집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으로 붐볐던 잔디 위는 조용합니다. 물가에는 여전히 초록 불빛이 켜져 있지만, 이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난한 소년 제임스 개츠에서 “제이 개츠비”로 자신을 재구성하고, 과거를 지우고, 이상적인 자아를 설계한 개츠비. 그는 단순히 부자가 되려 한 것이라기보다 “다른 존재”가 되려 했을 것입니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믿지요. 시간조차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현실의 제약과 그의 대상인 데이지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데이지라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이상적 이미지를 사랑한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그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꿈을 사랑한 것이고요.

개츠비의 비극은 특별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현실보다 꿈을 더 사랑할 때 벌어지는 보편적인 비극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1920년대 미국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의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는 각자의 ‘푸른 불빛’을 향해 살아갑니다. 그것이 실재인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충분히 묻지 않은 채로.



엘 그레코의 <톨레도 풍경>이 폭풍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듯, 닉이 떠난 뒤에도 미국이라는 공간은 또 다른 개츠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화려하고, 위태롭고, 끝내는 상처 입을 또 다른 것을 꿈꾸는 사람을.



나는 이 소설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개츠비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에 남은 그 조용하고 묵직한 풍경 때문에.

사람이 떠난 자리의 공기, 식어버린 여름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바다.

폭풍 직전의 하늘처럼, 아름답지만 어딘가 금이 가 있는 풍경.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무리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그때의 나”일 수도 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물 위에 비친 빛처럼 멀리 있습니다.

그래도 노를 젓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눈은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노를 젓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정말 내 앞에 있는가, 아니면 이미 지나간 빛을 쫓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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