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은 사람이 있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뚱뚱한 애?
시 쓴다는 애?
철학책만 읽는 애?
긴장하면 말 더듬는 애?
또 다른 아무개와 사귀었다는 애?
또 다른 아무개한테 결국 차였다는 애?
아무개에 대한 말들이 아무렇게나 흘러나왔다
아무개가 아무 개라도 되는 듯이
개 잡듯 물어뜯고 헐뜯었다
뜯긴 자리는 비열한 웃음으로 채워졌다
웃는 얼굴에 서로 신나게 침 튀기는 동안,
아무리가 아무렴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빛바랜 동전들이 쏟아졌다
다보탑이 무너졌다
벼 이삭이 흩어졌다
이순신 장군이 엎드렸다
학이 곤두질했다
알고 싶은 사람이 모르고 싶어졌다
알고 있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같았다
동전의 뒷면은 보지 않아도 알지
아무개가 되기 싫어
얼굴을 가리고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오은, <유에서 유>, 문학과지성사, 2017
일상적인 언어 속에서 인간관계와 사회의 미묘한 감정을 유쾌하고 신선한 단어를 사용하여 섬세하게 표현하는 시를 쓰는 오은(1982~ ) 시인은 대화체와 질문형 문장으로 아무개를 아냐고 묻습니다. 무겁지 않은 말과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통해 우리들의 심리, 관계, 언어의 아이러니를 잘 묘사합니다. 그의 시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말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는 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는 피식 웃으며 가볍게 시작했지만, 읽고 나면 관계의 허무함이나 인간의 허약함이 드러나는 여운을 남깁니다. 아무개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현대 사회 속의 익명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서로를 소문으로 전해 듣고, 이미지로 소비하고 쉽게 아무개 속으로 들어갑니다.
누군가를 “아는가?”라는 단순하고 인간적인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시는 곧 그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들의 질감으로 들어가며 짧고 가벼운 질문으로 연속됩니다. “뚱뚱한 애?”, “시 쓴다는 애?”, “철학책만 읽는 애?” 같은 말들은 모호하고 희화화된 가벼움으로 진행됩니다. 개인의 특성을 묘사한다기보다 사람을 단순화합니다.
무책임한 표현들이 아무렇게 흘러가다가 “아무개가 아무 개라도 되는 듯이”에서는 그 아무개는 존엄을 잃고 쉽게 물어뜯어도 되는 존재 ‘개’가 되고 말지요.
“다보탑이 무너지고... 학이 곤두박질을 하는” 문단에서는 우리가 아름다움과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에 대한 붕괴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아냐고 묻던 방향이 전도되는 “알고 싶지 않다”는 문장에서 감정이 반전되고 확인하지 않은 이야기, 편리한 해석, 집단적인 웃음 속에서 너무 쉽게 누군가를 ‘아무개’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그러면서도 익명의 '아무개'를 존중하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읽힙니다.
큰 사건이나 구체적인 일화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시 속에서 화자는 “아무개가 되기 싫어 얼굴을 가리고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는 장면은 마치 군중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릴까 몰개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누군가에게는 ‘아무개’ 일 수 있다는 시인의 생각이 담겨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은 흔히 MBTI유형으로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자신과의 상호성을 찾고자 합니다. 시 속의 “아무개”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만들어내는 익명의 얼굴로 흔히 누군가를 알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중성을 꼬집는 것 같습니다. 마치 싫다고 주저하는 사람을 거의 강압적으로 무대에 세워 노래를 하게 하지만, 정작 그들은 노래를 듣지 않고 딴짓하는 것처럼........
지난 주말에 만난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아무개'로 묻는 대상이 아니라 '누구'로 지칭되는 존재이고 싶은 마음도 들다가, 뭐 이 나이에 그저 안개 걷히듯 언제인지 모르게 소멸되는 존재이고 싶다가........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