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세컨드 1

by 윤재

나는야 세컨드 1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이 아니라 늘 다음,인
언제나 나중,인 홍길동 같은 서자,인 변방,인
부적합,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 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 김경미,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 2001



태연하게 "세컨드"라고 생각하라니........

겸손일까요

아님 비껴선 농담일까요

다층위의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겸손과 생존과 아이러니, 풍자가 포함된 시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시를 조금 읽다 보면 그저 ‘단순한 겸손’이 아닐 것이라고, 약간의 전략일 것이라고 애써 해석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통계 조사에 의하면 동메달보다 은메달을 딴 선수가 더 낭패감을 느낀다고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자리는 참으로 묘한 자리인데 자신을 '세컨드'라고 위치 정하다니요....


완전히 뒤로 밀려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앞에서 으스대는 자리도 결코 아니지요.

한 걸음 떨어져 있으면서도 상황을 다 보고 있는 자리가 될까요.


"삶이 본처인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이라는 세컨드의 법칙이라!

이 문장을 읽다 바람 빠지는 풍선의 헛김처럼 피식 웃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표현이 드라마 같기도 하면서 꽤 현실적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대개 그런 부분도 있지요. 드라마처럼 장엄하게 비열하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목을 조르기도 합니다. 월요일 아침처럼, 카드값처럼, 무릎 통증처럼.


시의 마지막 장면이 유난히 인상적입니다. 화자는 새끼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조용히 웃는군요.

이 장면을 상상해 보면 약간 비밀 결사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한쪽 눈을 찡긋거리면서 마치 “우리끼리만 아는 규칙 또는 동지 의식” 같은 것 말입니다.


세상은 첫 번째를 향해 달려가지만, 이 시의 화자는 살짝 웃으며 말합니다.

괜찮아. 나는 두 번째야.”

그 웃음 속에는 조금의 여유와, 조금의 장난기, 그리고 꽤 단단한 삶의 태도가 들어 있습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시 속의 화자는 마라톤의 출발선에서 1등인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뛰는 사람이라고 암시를 주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기대와 달리 대상과 상황에서 두 번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새끼손가락을 슬쩍 들어 올리며" 우리끼리 응원하고 지지하는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자기 객관화, 자신의 삶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태도.

첫 번째 자리가 경쟁의 자리라면, 두 번째는 생존의 자리.

삶을 끝까지 놓지 않는 자리.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살아갈 때, 인생의 첫 번째 주인공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화자는 전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역시 비슷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사회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빛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특히 여주인공은 세상이 정해 놓은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예쁜 사람에게는 유난히 친절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그녀는 마치 왕국에서 추방된 공주처럼 존재합니다. 그런데 박민규 작가는 그 공주를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복권시키는 대신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조용한 존엄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소설의 첫 문장은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로 시작합니다.

소설 속의 문장을 들여다보면 “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이 묻혀버리지”와 “살아 있으므로........ 결국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다 같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에 시선이 머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는 귀절도.


작가는 “저는 늘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경쟁력 없이 살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남자들을 위한 소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여자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전했답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이 - 김경미 시인의 시와 박민규 작가의 소설 - 모두 ‘주목받는 사람’이 아닌 주변인들을 등장시키면서도 그들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세계는 조금 웃기고, 조금 서툴고, 그래서 더 인간적입니다.


김경미의 시에서 세컨드는 마치 세상의 공식에서 살짝 벗어난 농담처럼 존재합니다.

그리고 박민규의 소설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습니다.


「나는야 세컨드 1」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묘한 위로를 건넵니다. 세상이 아무리 1등의 서사로 가득 차 있어도, 실제로 세상을 채우고 있는 것은 세컨드와 그 외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조용한 삶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혹시 세컨드는 1등이 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1등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버린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세컨드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패배의 호칭이 아니라, 어쩌면 세상을 조금 더 느긋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붙는 은근한 직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