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 급한 것일까요
봄꽃 상당수가 한꺼번에 우리들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차분하게 순차적으로 보면서 봄을 길게 바라보면 좋으련만...
꽃 보려는 마음을 바쁘게 만드네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조팝나무꽃 등이 한꺼번에 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산책길에 길가의 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제 이렇게 피었을까 싶을 정도로 가지마다 색이 가득했고, 그 사이를 오가는 작은 움직임들도 보였습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나비 한 마리, 그리고 벌 몇 마리.
나비의 날갯짓을 반갑게 바라보는데, 같이 걷던 옆지기가 다큐 영상에서 본 벌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벌은 태어나면 평생 하는 일이 정해져 있대.”라면서 “벌이 살아있는 가장 중요한 생명체”로 선언되기도 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흥미로운 벌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집중을 하게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 벌의 종류는 약 20,000 종 이상이고 우리나라에 생존하는 벌은 약 300~ 400 종이지만, 그중 사람이 채집 가능한 수준으로 꿀을 저장하는 벌은 사실상 2 종류밖에 안 된다는군요. 대부분의 벌은 꿀을 저장하지 않거나 저장량이 매우 적어서 인간이 채집할 수 없다고 합니다. 벌은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집단으로 각각의 역할이 정해져 있어, 예를 들어 벌집의 실질적 운영자라 할 수 있는 일벌의 경우 성장에 따라 청소, 육아, 건설, 저장, 외근(채집) 등의 일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자손의 성별을 조절할 수 있고, 먹이 차이로 운명이 달라지는 벌들의 세계.
일벌은 “단명하지만 헌신적인 존재”인 것 같습니다. 계절에 따라 일의 강도, 수명, 기타 행동도 달라지는데, 날씨가 좋고 꽃이 많이 피는 계절엔 하루에 8~16회까지 꿀을 따러 나간다고 합니다. 그 작은 몸으로 수많은 날갯짓을 하면서 꽃 사이를 오가면서 수분과 채집행위의 노동 강도가 높은 여름 일벌의 수명은 채 두 달이 안된다고 합니다. 반면 일이 많지 않은 겨울에 태어난 벌은 6개월까지 수명이 늘어나기도 하고요. 어떤 망설임이나 선택도 없이 벌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벌의 움직임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꽃 위에 앉았다가 금세 다른 꽃으로 옮겨가는 그 바쁜 날갯짓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정해진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저 “봄이 왔구나” 하고 있었는데, 그 작은 생명들은 이미 치열하게 각자의 일을 시작하고 있었던 셈이고요.
그러다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습니다. 그 책 속에서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그리고 앱실론으로 구성된 계급사회 속에서 인공 수정과 세뇌 교육으로 통제되고 있지요. 태어날 때부터 역할이 정해지고, 그에 맞게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단순한 기능을 수행하고, 또 누군가는 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거기에는 선택이 없고, 흔들림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과 역할, 감정까지 통제된 사회에서 ‘안정과 행복’(?)을 유지하지만, 그 대가로 자유와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세계를 보여준 책의 내용, 그 속에서 진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줄거리였지요.
예전에는 그 이야기가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벌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자연 속에는 이미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었던 것이고, 만일 우리들 세계에서 과학 기술, 인공지능, 대량 생산이 극한으로 발전하는 데 통제나 조율의 과정이 없다면?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선택하며 살아왔습니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누구와 함께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벌들의 세계에서 노동은 종족을,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숭고한 행위입니다.
지식 노동이 추앙되고 앞으로는 그 지식 노동마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 인간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